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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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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2-21 14:02 조회 83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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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후보생이 신학교 입학면접을 치르는데, 면접관이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후보생은 자신 있게 쏘크라테스, 공자. 부처와 같은 인류의 성현이라고 말했다가 떨어졌습니다.

세상에선 예수를 성현이라지만, 기독교에선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목사후보생으론 신앙고백이 틀린 것입니다.

 

1) 내가 누구냐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었습니다.

평판이나 이미지를 물은 것이 아닙니다.

정체를 물은 것입니다.

제자들은 들은 대로 엘리야, 혹은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났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라 고백했는데, 바른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바른 고백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현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불신자가 많은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 불신자가 많아졌기에 교회는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 하나님존재,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바탕위에 세워진 교회이기에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 고백은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그러나 쉬운 고백이 된다면 복된 것입니다.

요1서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도다

 

기독교는 이 가난한 나사렛동네에서 자란 예수를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존귀하신 메시야로 믿는 신앙입니다.

이 신앙은 불가불 예수를 즐거워하고 자랑하며 높이는데 삶의 목적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요?

그냥 좋은 분인가요? 돕는 분인가요? 병 낫게 해주는 분인가요?

이보단, 그리스도,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이 나와 평화를 맺기 위해 보내신 화목제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많이, 밝히 계시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나는 ~이다.”하여

“부활이요 생명이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등

심지어는 “내가 행하는 그 일을 보고 나인 줄 믿으라“ 하셨습니다.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부활의 그 예수님을 뵈온 후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기록해 놓았습니다.

 

2) 예수님의 모습

* 인자 같은 이

이 말은 주님이 종종 자신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셨건만 어마어마한 모습이 아니라 그 외모가 우리와 같아 우리 곁에 계시기에 적합한, 가까이 모실 수 있는 분입니다.

 

*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제사드릴 때 입는 예복이 에봇입니다.

그 옷이 발에 끌립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

친히 제물이 되셨지만 영원한 대제사장도 되어 영원한 제사를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지금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끌린다.”는 대제사장으로서의 모든 일에 넉넉하다는 의미입니다.

 

*가슴에 금띠를 띠고

왕의 복장이 상기되지 않나요?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만국을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개인의 왕도되시기에 “주님”하는 것입니다.

 

*그의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흰빛은 영원성과 순결성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영원하시며 처음부터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세우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 없으시기에 구속자가 되시고 심판자가 되십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예수님의 전지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는 모르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을 모르기에 속고 삽니다만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속일 수 없습니다.

주님은 마음의 생각은 물론 혼자 꾼 뇌의 꿈도 아십니다.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주석은 불에 잘 견디는 단단한 놋쇠입니다.

제물을 태우는 번제단을 놋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셨고, 심판에 관한한 예수님은 악을 용납하시지 않을뿐더러 짓밟아 버리시고 악과

악인에 대한 심판은 철저하여 완전합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큰소리를 의미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소음이 많기에 예수님의 음성을 놓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복입니다.

심판의 때에는 예수님의 음성에 눌리어 세상 여타소리는 잠잠해지고 모든 사람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됩니다.

 

*그 오른 손에 일곱별이 있고

계시록을 보면 일곱별은 모든 시대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들은 예수님이 붙잡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능력의 보호하심에 있으니 안심보장이고 든든보험인셈입니다.

현재 남과 북이 얼음 정국입니다.

그러나 행여 위기가 와도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를 지키시기에 승리는 북에 있을 수 없습니다.

 

*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히브리서 4장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여 우리 심령의 골수를 찔러 쪼갠다.”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판단하지만 심판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심판합니다.

 

* 그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예수님의 신성입니다.

변화산에서 이 모습이 보였는데 땅위의 모습과 상반된 모습입니다.

영광의 모습에는 사람들은 눌리어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인도된 성도는 말구유의 아기예수께도 경배하며 영광의 모습에도 찬양합니다.

어떠한 예수든 이 예수께 경배와 찬양이 없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신앙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이 죽은 자처럼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오른 손을 그에게 얹고 “두려워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왜 두려워 말아야 할까요?

 

3) 두려워 말라

믿음의 반대는 두려움입니다.

최근 죽고 싶어 하는 성도에게 한 말씀을 보내주었습니다.

눅12: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그러므로 두려워 말라는 “믿으라.” “신뢰하라.” 입니다.

사도요한이 듣고 본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말씀합니다.

 

첫째,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영원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시고, 통치자시고, 심판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두려워하되, 그 안에서는 두려워 할 일이 없습니다.

 

둘째, “나는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의 구주라” 하셨습니다.

해산의 고통은 엄마가 잘 알고 군대 간 아들의 힘듦은 아버지가 먼저 압니다.

왜? 경험자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우리 인생들의 마지막 원수이기에 그 세력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후 다시 사신 분이기에, 우리의 그 두려움을 알고 그 세력에서 다시 살리십니다.

 

셋째, “나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다시 산 예수님은 다시 죽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그대로입니다.

이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같이 계시기에 우리는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넷째,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지만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자신을 영접할 것인지 아니지를 결정할 선택권은 남겨놓으셨습니다.

 

결론)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구인가요?

비록 엘리야 같고 세례 요한 같아도 그들은 아닙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요? 어떤 관계로 있나요? 나의 구주, 그리스도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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