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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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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3-06 14:00 조회 954회 댓글 0건

본문

사나운 맹수를 길들이는 사람을 조련사라고 하며 금을 연마하여 각종 보석의 기능을 주입하는 사람을 연금술사라고 합니

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사람에 대해 이 둘을 합치신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 모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압제에서 건져내는 구원자로 모세를 사용하셨습니다.

행7: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

라

아주 거룩한 일에 쓰임 받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이 구원받은 백성들답게 광야에서 조차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도록, 하나님께 율례를 받아 전한 이

사람도 모세였습니다.

행7:38)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

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영광의 일에 쓰임 받은 것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아주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위대하게 하여 거룩한 일과 영광의 일에 쓰임 받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오스트리아의 한 음악당에서 작곡가 하이든이 작곡한 ‘천지창조’가 연주되었습니다.

연주 후 청중들은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휘자는 “ 이 곡을 작곡한 하이든씨가 저 쪽에 계십니다.” 하며, 작곡가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이든은 뒷편에서 휠체어앉아 이 곡의 연주를 지켜보았습니다.

조명이 그를 비추자 관중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하이든은 말하기를 “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닙니다. 이 곡은 하나님이 하셨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했

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훌륭하고 위대해도 ‘사람’ 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6절, 첫 단어가 무엇인가요? “이 사람이”

38절, 마지막 단어는 무엇인가요? “이 사람이라”

맞습니다. 모세는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났고, 일했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그의 전생애에 개입되었기에 하나님의 팔에 붙잡혀 위대했습니다.

37절)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

세라

 

2) 사람

사람이 무엇인가요?

 

동물학적으론 영장류의 사람과에 속했습니다.

화학적으론 우리의 몸이 비누 한 장을 만든 답니다.

도덕적으론 양심과 종교심이 탁월하여, 사람만이 수치를 느끼고 정의를 찾으며 신께 제사합니다.

사회적으론 관계적이기에 ‘인간’이라 합니다.

신과는 수직적 관계를, 주변과는 수평적 관계를 끊임없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맺습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빚어진 으뜸창조물이기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존재로써 만물을 지배하며 다스립니

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기 중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미완의 사람이 아닌 완성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므로 비로써 생령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과학자의 의견대로 진화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애당초 완생이었습니다.

이때의 사람은 동물적 순기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시므로, 뼈와 살이 있는 영적 존재, 즉 천사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인격적

탁월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신앙은 타락으로 잃어버린 이러한 영적부분을 다시 얻게 합니다.

사람이 타락하므로 동물화 되었으나, 주님이 대속하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본래의 형상을 회복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회복을 거듭남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요3:5~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

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그러므로 이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거듭남의 열쇠이고, 세례는 그 시작이며 증표인 셈입니다.

 

거듭남은 실제적이기에 그 전에는 설명해도 모릅니다만 경험적으론 알 수가 있습니다.

요3:8)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

은 다 이러하니라

 

3) 하나님의 방편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기운으로 이 모든 만물을 운행하시지만, 그 통치와 섭리를 위해 시간이나 도구

나 방편을 사용하십니다.

 

발람선지자가 그릇된 예언을 할 때 말 못하는 나귀의 입을 열어 선지자를 책망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했을 때 새벽닭을 사용하셨습니다.

요나에게 큰 물고기와 벌레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선 선지자들을 대거 사용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과정이나 도구나 방편에 제한 받지 않으십니다.

1회용이 있고 영구용도 있으며 악인은 자기 죄에 빠지고 의인은 의로운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학문과 기질을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연약하고 죄 많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그냥 사용하시지 않고 길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합당하게 조련하신 것인데,

 

* 배웠습니다.

행7:22) 모세가 애굽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그 형 아론은 이렇지 않았기에 형은 동생 모세를 섬겨야 했습니다.

 

베드로가 쓴 성경보다 사도바울이 쓴 성경이 많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였다면 사도 바울은 이방선교사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드로는 어부였다면 사도바울은 지식인이었고 베드로는 로마시민권이 없었지만 사도 바울에게

는 로마시민권을 지녔고 헬라말도 능숙했습니다.

 

* 훈련받았습니다.

행7:30~31) 사십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시거늘 모세가 이 광경

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무엇인가요? 광야의 생활은 그의 훈련이 되어 예민하게 관찰하는 안목을 터득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음성을 보고 듣게 됐

습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세우셨기에 질서를 지키십니다.

이 질서를 이탈한 것이 기적인데, 하나님은 기적을 사용하셔도 질서를 지키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이 오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거룩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행7:33)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하고 마음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했기에 실력과 능력자라고 해서 쓰임 받질 않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으로써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많습니다.

도덕도 배우고 익혀야 하며 또 현대인으로써 평생 사는데 필요한 기술도 익혀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예수를 믿고, 믿었으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거룩함과 성결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연적이고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익히고, 거룩하면, 우리 개개인은 모세만큼은 아니더라도 모세 같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

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내게 소명을 주시고 배우고 익혔던 모든 것들을 사용하십니다.

 

결론)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찾습니다.

영등포의 밥퍼 목사는 일주일에 6번을, 정부의 지원 없이 노숙인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는데

벌써 16년째 하고 있어 안티기독인 조차도 그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지만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게 복음의 능력이고 믿음의 권세이며, 주의 위엄입니다.

 

애굽의 학문과 학술만 배워서는 자칫 자기를 내세우고, 하나님을 끌고 다니려 하여 사달이 나기 쉽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행7:24)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사람을 쳐 죽이니

라

 

그러나 이런 학문과 학술위에 하나님을 배우고 거룩에 성숙한다면 하나님이 내 안에서 그 소원을 이루워 나가십니다.

사람의 과거는 해석을 달리하거나 용서받을 수 있어도 미래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한갓 ‘이 사람’에서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준비 중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도 교회의 핍박자였지만 순교자가 되었고,

디모데는 이 사도바울로 하여금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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