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오직 구원 > 설교말씀

오직 구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3-13 13:43 조회 750회 댓글 0건

본문

3.1만세 운동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대거 주체가 된 일은 잘 아는 일입니다.

그 후 독립운동과 건국과 민주화에도 성도들의 역할은 컸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교회는 힘을 잃고 세상의 조롱과 염려를 받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신뢰받는 종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중에서, 꼴지가 기독교이랍니다.

왜 그런가요? 예수를 잘 못 믿어서 이런 경우가 된 것입니다.

잘 믿으면 윤리가 빛을 발휘하지만, 못 믿으니 윤리가 없어진 것입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 예수를 믿는 일,

예수를 믿는 일이 무엇인가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일도 되고, 의리를 지킨다, 원어나 영어 성경을 배우는 일도 되지만

무엇보다도 예수님 말씀을 잘 따르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나의 희생감수가 필연적입니다.

책임과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왜곡 되었습니다.

자기위로, 행복, 이득, 편리 추구가 마치 구원인 냥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당시의 엉망진창을 하나님께 아뢴, 그 답을 찾는 선지자였습니다.

합1: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합1: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하니이다.

 

그 결과도 알고 있었습니다.

합2:17) 대저 네가 레바논에 강포를 행한 것과 짐승을 두렵게 하여 잔해한 것 곧 사람의 피를 흘리며 땅과 성읍과 그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

 

세상이 망가진 것, 산천초목까지 다 황폐해 진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이었습니다.

그 근본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나 부류가 아닌, 나,, 성도 개개인이 잘못 믿는 이유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은 남 탓으로 돌리고 영광은 내가 취합니다.

개인적으론 요조숙녀요, 1등 신사지만 다수와 대중 속에서는 숨어서는 못된 망나니가 되는 경우와 흡사합니다.

악풀은 누가 다나요? 익명인 경우입니다.

실명이면 다를 것입니다.

아니 다릅니다.

 

예수 믿는 일, 언제나 사회의 일이나 현상이 아닌 개인의 일입니다.

내가 잘 믿으면 사회도 맑고 깨끗해져 부흥이 일어나지만 잘 못 믿으면 쇠퇴가 됩니다.

살전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2) 우리를 향하신 뜻,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살전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개인구원이 있습니다.

곧 나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더 자라면서, 아니 자라기 위해선 또 다른 구원을 이룩합니다.

가정, 직장, 지역, 국가, 시대 등

마침내 사회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가장 큰일로 여겨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나는, 우리는, 이 구원을 헛투루 여깁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먹을 수 없고, 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이상적으로만 여긴 나머지 현실과 그 문제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그에게 남는 것은 훗날 후회뿐입니다.

 

이 구원은 죽어 천당 가는 일만이 아닙니다.

놀라운 삶이 전개되는 일부터 시작되는 일입니다.

살전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구원이 죽은 후 천당에서 구주와 함께 하는 일이라면, 영생은 이 땅에서부터 깨든지 자든지 구주와 함께 사는 일입니다.

 

세상 즐거움은 곧 식상해 집니다.

꽃은 시들기 전에, 새 자동차도 3년 안에, 식상해 집니다.

그러나 주와 함께 사는 날은, 언제나 꿀맛입니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찬송가 85장

왜 순교를 하는가요?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석호필이란 선교사를 들어보셨나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의료선교와 독립운동을 한, 영국태생의 케나다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입니다.

 

3,1 만세운동과 제암리교회 양민 학살 사건을 현장에서 사진 찍어 그 필름을 구두 뒷굽에 넣어,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고, 우리나라 현충원에 1호로 묻힌 외국인입니다.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에 비해 얼마나 다른가요?

이들의 구원은 주의 사랑에 기인하여 타민족까지 사랑하는 큰 품을 내준 것입니다.

 

사랑은 내주는 사랑 있고, 받는 사랑이 있습니다.

큰 사랑은, 받기 보단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 부모 사랑이 해당됩니다.

그러나 받는 사랑은 작은 사랑입니다. 자기만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허약하고 사랑이 없다는 것은, 주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해서입니다.

이제는 받는 사랑을 계수하기 보단 주는 사랑을 계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피차

살전 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신앙도 배워야 하고, 믿음도 배워야 하고, 사랑도 배워야 합니다.

유감되게 이 배움이 없어졌습니다.

이론가는 많은데 실천가가 없습니다.

*주께 배워야 합니다.

요7:37) ~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내게 배우라” 했습니다.

 

*성경에서 배워야 합니다.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업가인데, 술에 중독되었던 사람입니다.

주를 찾고자 해도 결국 술을 이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미션스쿨을 다녔고 부인은 권사였지만, 그는 자기의 구원도 이루지 못했고,

부인도 남편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결론) 우리 모두는 항상 핑계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핑계가 통하지 않는 날이 죽음의 날입니다.

구원만큼 진지하고 시급한 게 어디 있을까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