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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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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3-20 14:04 조회 85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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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려주일이고 월요일부터 고난주간입니다.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한 주님의 특별한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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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님은 고난 받으셨나요?

죄인의 고난이 있고 의인으로의 고난이 있는데,

주님의 삶의 고난은 의인적 고난이었다면, 고난주간의 고난은 죄인적 고난이기에 나와 상관이 있습니다.

그 고난의 최종은 죽음이었던 만큼, 내가 나의 죄로 인하여 받아야했던 그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1) 죄의 삯은 죽음

하나님의 대원칙이 있습니다.

죄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랑하시기에 살려야 합니다.

죄만 죽고 사람은 살리는 방식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만 하나님께는 있습니다.

 

구약에는, 한 동물이 한 죄인을 대신해 죽었다면,

이제는 단번에 완전한 대속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로 하여금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때의 범위는 무한대입니다.

모든 죄인을, 모든 죄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이는, 영혼은 즉시살고 육체는 죽었다가 다시 삽니다.

 

사도바울은 이 진리를 몰랐기에 초기의 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계시로 깨달아 안 후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가 교회들에게 이 내용을 편지했습니다.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섬겼기에 하나님의 능력에 익숙합니다.

헬라인은 어떤가요? 철학적인 만큼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을 살리심에 있어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라는 진술입니다.

왜 그럴까요?

롬4:25)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하나님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대원칙을 이루셨고 사람사랑도 이루셨습니다.

그 현장이 십자가입니다.

공의라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이라는 성품이 충돌치 않고 참 만족을 이루신 것입니다.

또한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로움과 사랑이 증명되었고, 그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 선언하신 구원방편입니다.

 

2) 구원자

하나님은 예수님탄생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이 구원자를 예언하셨습니다.

 

구원자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지체가 높으신 분이고 위풍이 당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누군가요? 하나님 곧 자신이었습니다.

사63:1)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으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하고 안전합니다.

더 이상의 추가적인 구원이 필요 없고, 받은 구원은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오직 내가 이 구원을 소중히 여겨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건강을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건강을 소중히 여긴 만큼, 건강중심으로 삽니다.

산속에서 사는 이들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좋다는 약초를 챙겨먹고 나쁘다는 음식은 일절 삼갑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는 어때야 하나요?

구원 받은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 날마다 살아야합니다.

의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닌, 죄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는 보호하시지만 죄에 대해선 공격하시기 때문입니다.

 

3) 구원 모습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나요?

그냥 죄는 죽고 의는 살아라하시지 않았습니다.

실제적으로 구원하셨는데, 세상에 오셨고 죄인처럼 되셔서 죄인과 함께 고난 받고 죽으셨습니다.

우리 인류는 이 사건을 소설이 아닌 역사라고 평가합니다.

사63:3)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포도주 만드는 광경을 보셨나요? 손질한 포도를 큰 나무통에 넣고 장인이 들어가 짓밟습니다.

자연 붉은 포도즙이 얼굴과 옷에 튀는데, 그 비유로 주님은 십자가에서 달린 죄인된

그리스도를 향해 하나님의 분을 다 쏟으신 것입니다.

 

그때 하늘은 3시간 동안 어두워졌고, 땅은 진동하여 잠자던 성도들의 무덤이 터졌습니다.

이 광경을 본 주님을 처형한 로마군병들 조차 심히 두려운 나머지 죽은 그리스도를 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했을까요?

사63: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사63:6)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하고 그들의 선혈을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믿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시며, 죄에 대해선 가차 없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의의 하나님으로 더 빛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무조건적인 사랑고백이 아니라 의의 행위로 증명해야 합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국가든, 민족이든, 개인이든, 의로우면 삽니다만 불의하면 망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의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의가 하나님이 세상을 운행하시는 기준입니다.

사랑은 무엇인가요? 고치시는 방편입니다.

 

이때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없다하거나,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숨길 수 있다고 여깁니다.

 

4) 그는 내니

하나님은 천지창조도 혼자 하셨습니다.

우리의 고난도 혼자 지셨습니다.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나타나 이루시고, 성령은 드러나 성취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즉흥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진실을 아는 이들은,

“갈1:15)~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나를 은혜로 부르신 이가~”의 고백하여 그 경륜에 감읍합니다.

 

주님이 하졸들에게 붙잡히던 밤을 생각해 보세요.

하졸들이 나사렛 예수가 누구냐 했을 때 “나다.” 하신 말씀에 저들이 엎드려졌을까요? 이 위엄은 무엇인가요?

 

빌라도 앞에서,

“요18:37)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셨을까요?

 

결론) 이 분이 세상에 오셨을 때 천군천사가 찬양했습니다.

이 분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며 부활 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임받은 우리의 구원의 과업을,

죄는, 고난을 주고 죄는 죽음을 이룹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진실을 말씀하셨고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주적 심판을 위해 왕으로써 재림하실 예정입니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아들로써 우리를 위한 수난과 죽음을 치루셨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고난이 아닌 이 분을 묵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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