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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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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4-24 14:21 조회 7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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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나라 일본은 지진으로 난리가 났습니다.

같은 불의 고리인 남미의 에콰도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상자가 나고 부상자가 있고, 큰 부상자가 죽지도 않고 낫지도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 고통과 불행은,, 그런 경우 뭐라 하나요? 산지옥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예비 되어 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1) 열정과 체념

우리는 살면서 열정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닭 가공업체인 (주)하림의 회장은 나폴레옹 모자를 비싼 값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에게서 포기를 모르는 열정을 배워 지금의 사업을 일구었다 합니다.

그러나 이는 됐을 때 얘기이고, 안됐을 때는 어떨까요? 포기를 모른다면 평생 후회만 남습니다.

사법고시를 10년 동안 치뤘기에 폐인이 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이어령 박사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책 인세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에 ‘민아의 방’으로 명명한 방을 제공했습니다.

이 박사는 과거 글쓰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어린 딸 민아에게 굿나잇 키스를 못한 자책과 후회를 가졌었는데, 이제는 그 딸

을 충분히 애도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밧세바에서 낳은 자식이 죽기 전에는 7일 동안 몸부림치며 기도했지만 막상 죽으니 그는 씻고 일어나서 공무에 들어섰습

니다.

주변사람들이 의아해서 물으니 삼하12:22~23) ~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며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

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분명한 포기요 체념입니다.

 

우리의 삶의 두 기둥은 포기를 모르는 열정과 때론 내려놓을 줄 아는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죽은 딸을 살리겠다면서,,또 죽은 딸을 잊지 못해 자책하고 후회한다면 어떨까요?

반대로 숨 있는 사람을 갈 사람이라고 해서 이른 포기를 한다면 어떨까요?

낭패를 겪습니다.

 

금번 총선 때 기독자유당이 3%가 못된 2,65% 얻어 비례대표를 못 얻었습니다.

국회입성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땠는지 아시나요?

잘되면 감사예배와 국립묘지 참배를 하기로 한 것을 즉각 포기했습니다.

최소한도 기독인들이 모인 자태는 아니었습니다.

성도로써 예배와 국민으로써의 참배는 사는 날 동안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인데, 즉각 포기했던 것은 아쉽습니다.

 

열정과 포기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내 인생일지라도 내가 주관자가 아님을 상기시켜주는 구절입니다.

전9:1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

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이 믿음 안에서 열정과 체념을 구하시길 바라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어 이루게 하시고 때론 주변을 막아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도바울에게 선교의 마음을 주어 열심이 있게 하시고, 아시아로 가는 길은 막아 선교의 물꼬를 유럽으로 돌리셨던 것입니

다.

 

2) 삶과 죽음

우리들은 삶과 죽음을 보면서 삽니다.

살아야 할 삶이 죽고 죽어야 할 삶이 산다면 억지스럽게 여겨집니다.

젊은이들이 자살, 이유가 무엇이든 안타깝습니다.

100세를 넘긴 어른들이 더 살겠다고 바둥바둥하는 것도 안쓰럽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태어난 날이 딱 한 번 이었듯이 죽는 날도 딱 한 번 있을 것입니다.

이 날을 생각해 보셨나요? 많은 나의 날들이 이 날을 위해 존재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은 무엇 때문에,, 평생을 믿었나요?

잘 죽기 위해서인데, 그 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고통이나 두려움 없는 죽음 때문인가요?

호사스럽고 안락한 죽음인가요?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이가 손잡아 주는 그 죽음인가요?

 

잘 죽는 죽음은 간단합니다.

예수 안에서 삶을 마치는 일입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

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니라 하시더라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답니다.

놀랍지 않나요? 이 말씀을 믿던 아니 믿던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생들이고 연습생들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사람이 하루아침에 거지가 돼서 거리에 나 앉질 않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내몰린 것입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아침에 벼락 부자된 이들이 얼마나 되나요?

우린 그것을 부러워하고 꿈꾸는데, 그야말로 벼락 맞을 일입니다.

모두의 습관이, 생활이 그처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주 안에 죽는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을 막살던 이가 죽을 때에 주를 찾고 주 안에서 죽을 수 없습니다.

야곱의 죽음을 보십시오.

히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죽을 때에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

하였으며

평생의 훈련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그처럼 이룩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처럼 인도하고 계십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김치가 갑자기 익질 않습니다.

주 안에 죽는 신앙도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도 그렇게 하시질 않고, 성령의 항아리 안에서 평생 숙성시키십니다.

 

3) 그 날

오늘 성경은 이상한 그 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계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죽을 때 죽을 수 있다면, 그 죽음이 주 안의 죽음이라면 얼마나 좋겠나요?

그런데 이상한 이 날은 괴롭기만 할 뿐, 이상스럽게 죽음은 되레 피해갑니다.

삶의 마침이나 포기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열정적인 치료도 없습니다.

아주 곤란한 지경입니다.

소설속이나 영화 속이 아닌 실제의 역사속의 날입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모릅니다만 시간의 흐름은 그날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가 종말의 때인 줄 믿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의,, 어느 날, 그렇다면 종말의 때를 알면 됩니다.

그 징조입니다.

계6:12~14)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여러분이 스타워즈 영화를 보고 아프리카사람들에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코끼리 같은 사람들이 나오고, 접시 같은 날개 없는 큰새들이 날아다니고 거기서 불이 토해지고, 철 허수아비가 말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세상 마지막 때의 일부모습입니다.

죽음이 피해가는 그 날에는,

계 9:1~2)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

더라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와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어두워

지며

 

화산폭발인지, 원자탄인지, 화학탄인지 모호하지만 큰 구덩이가 생기고 거기서부터 연기와 함께 황충이 올라오고 그 황충

이 고통을 준답니다.

계9: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이런 때가 먼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 생애 다음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린 어때야하나요? 다행이다 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준비하자 할 수도 있습니다.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는, 사람이나 자연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손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열심히 주를 섬길 수 있고 삶을 이룰 수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고통이 있거나 없거나 열정이든 포기든 오늘이 또 얼마나 큰 선물인지요?

설령 고통은 내 죄를 포기하라 하심은 아닌지요?

 

결론) 그러므로 열정이나 포기나 이런 의지활용은 은혜입니다.

주 안에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죽음이 피해가는 그 날에는 어떤 은혜도 사라진 때입니다.

오직 고통만 있는 그 날, 지옥의 모형인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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