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배반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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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훌륭한 믿음과 선행을 가진 자는 물론 믿음의 배반자와 악한 자도 등장합니다.
당대의 저들은 이러한 평가와 기록을 몰랐을 테지만 성경은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의 평가와 기록, 세상 끝 날까지 이루기에 특별한 교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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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옥 가는 자
지옥은 누가 가나요?
믿음을 배반한 자요, 곧 불신자입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특별한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 씻음 받지 못한 모든 자들입니다.
이들은 곧 불신자들입니다.
여기에는 가롯유다 같은 믿음을 배반한 자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궁극은 지옥이 아닌 천국입성입니다.
그럼에도 성도가 지옥행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게 나라면 어떨까요?
건강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병원에서 후회 하던가 죽을 때 후회합니다.
이처럼 천국을 잃은 사람들은 지옥에서 후회하기에 다른 구원의 기회가 없습니다.
여기 세상에서 부자로 살다 죽은 이의 절규와 고통이 있습니다.
눅16:27~31)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지옥 가는 이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심판, 천국, 지옥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헛되이 여깁니다.
삶에 진지함이 없이 쾌락을 추구합니다.
말세에는 쾌락사랑하기가 하나님 사랑하기 보단 더 한다고 했는데, 지옥의 다수는 말세의 사람들이 많이 있을 듯합니다.
중세에는 그나마 진지함이 있어 철학이 발전했는데, 이 말세에는 그렇지 않고 쾌락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2) 불신자 보다 더한 자
불신자는 지옥을 따 논 당상이어도 성경은 그보다 더 악한 자가 있다는데 그들이야 말로
지옥에 등급이 있다면 최상위 급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인가요?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 입니다.
이가 누구든지, 성도라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직분이 무엇이고 얼마를 믿었든 간에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동물도 어미 새끼 간에 사랑하며 삽니다.
코끼리나 고래는 이웃까지 돕고 삽니다.
‘동물농장’ 프로를 보면 엉뚱한 새끼를 기르는 일이 허다합니다.
사람은 어떤가요? 이웃은 물론 타민족까지 돕고 살기에 부모 형제를 존경하며 사랑하는 일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런데 믿노라하면서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이게 무엇인가요?
여기에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변명에 그칩니다.
믿음은 여러 모양으로 읽혀집니다.
하나님께는 경외, 공경, 충성, 경건으로, 사람 간에는 의리, 사랑, 섬김으로, 사회에 대해서는 봉사, 정의 실현 등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봄이 되면 기온이 따뜻하고, 꽃이 피고 잎이 나듯이 참 믿음은 이처럼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없다 크다작다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열매를 지녔나요? 어떤 향기를 내나요?
오스카 쉰들러는 폴란드인이었고 나찌당원이었지만, 유대인들을 1100명을 살려냈습니다.
전쟁막판에는 전시사업가로서 번 돈 모두를 드려 가스실로 갈 이들을 사왔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했습니다.
요19:26~27)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주님은 죽어가는 십자가 위에서 조차 어머니를 챙겼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예수님도 동생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 요셉도 생존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왜 죽어가는 자신이 모친을 챙겨야 했나요?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러 제자 중 요한에게 부탁한 것은 무엇인가요? 요한의 형편이 좋아서가 아니라 믿음이 좋아서였을 것입니다.
이 요한에게 친어머니가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순종했습니다.
무엇인가요? 역시 믿음입니다.
믿음은 이런 모양이입니다.
3) 시대의 구조
세상구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장수시대가 되어 늙은 자식이 늙은 부모를 모시는 일이 되었기에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달라진 풍속이 무엇인가요?
부모는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겠다 하여 죽기까지 일하는 셀프노후가 되었고, 자식은 이런 힘든 세상살이에 결혼 포기, 출산포기가 되었습니다.
부모나 남편이 죽어도 얼른 사망신고를 못합니다.
연금받기위해서,,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원칙이 있습니다.
딤전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유심히 보십시오,
저희로 먼저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효가 예배요,
효는 보답하는 것인데,, 배워야 하며 가르켜야 합니다.
즉 내가 함으로서 또 가르키고 그 효를 받는 멋진 일입니다.
늙은 부모들이 하시는 말씀이 시대를 말해줍니다.
“자식이 하나면 방콕으로 죽고, 둘이면 길에서 죽고 많으면 요양원에서 죽는다.”
“유산 다주면 안 되니 남겨두고 잘한 자식에게 주어라.”
그래서 인지 어느 할머니는 큰 다이아반지를 끼고 돌아가셨는데, 장례 치루고 보니 큐빅이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과시가 아니라 자녀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효를 얻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입니다.
시대가 똑똑해서 인지 부모자식 간에도 무조건이 아닌 조건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고 효가 아닙니다.
그냥 거래일 뿐, 이것은 피차의 불행이고 불신입니다.
성도들은 이 불신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서울 사는 며느리가 시골 시어머니께 휴대폰을 사드린 후, 축하 첫문자를 보냈습니다.
“어머니 오래 사세요.“ 한다는 것을 ”어머니 오래 사네요.“
결론) 자녀들아 너의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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