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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없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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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5-15 13:52 조회 79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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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백성은 광야 40년을 지나 이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새 명령이 하달되었는데 곧 신명기입니다.

구원받으라는 율례가 아니라 구원받았기에 새롭게 살 율례인 것입니다.

 

1)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지난 40년 동안 부족함이 없도록 광야생활에서 인도하셨습니다.

만나로 매일 먹이셨고, 의복과 신발은 해지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출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과연 그렇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시게 그 백성을 책임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최선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백성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원망과 불평이 그 증거입니다.

애굽에서 3일이면 당도할 가나안을 왜 40년이 되어서야 도착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원망 때문이었습니다.

왜 애굽에서 나온 1세대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2세대들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나요?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감사치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의 전매특허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백성들 간의 괴리, 언제나 있습니다.

부모자식 간에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 사랑 안 하는 부모가 얼마나 있나요? 형편이 안 돼서 못해주는 것이지 사랑이 없어서 못해주는 경우는 별반

없습니다.

그런데 효자는 “낳아주신 것만도 고맙습니다.” 하는 반면, 불효자들은 “부모가 무얼 해주었어요?” 하며 오히려 대들기도

 합니다.

이때 부모들은 꼭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도 이담에 결혼해서 자식 둬 봐라” 혹은 “너도 너 같은 자식이 둬 보라.”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몸만 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일이요.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철났다.”하는데 여러분은 철났나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2) 신앙

신앙이란 무엇인가요? 영적으로 철나는 일로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괴리를 좁히는, 즉 인생이 주님을 닮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괴리를 좁히시기 위해 저들과 함께 광야생활을 하셨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먼지 길을 함께 걸으시고 함께 장막에 머무셨습니다.

그 증거가 훗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중에 오시고 함께 계신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그 백성과 함께 동거동락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주의 뜻, 주의 마음을, 이런 율레를, 자기 인격과 생활 속에서 책임지는 일입니다.

우상숭배와는 다릅니다. 우상숭배는 자기 책임은 없이 오직 자기 소원성취만 있지만

기독신앙은 자기 소원성취보다는 주의 율례를 앞세웁니다.

그래서 우상에게는 계명이 없어도 우리 기독신앙에는 시대 따라 새 계명도 오는 것입니다.

 

기성복은 옷 따라 골라 입습니다.

그러나 맞춤복은 내 몸에 맞춥니다.

우상숭배는 기성복을 사 입는 모양이라면, 우리 기독신앙은 하나님이 디자인한 맞춤복에 내 몸을 맞추는 일입니다.

이 일이 쉬울 리 없고, 쉬울 리 없으니 단시간 안에 이루워지질 않아 중도 포기자가 있으며, 세월 지나가도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스타일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스타일 개조를 위해 몇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 삶에 일어나는 고난입니다.

이때 무슨 고난이든 고통은 동반됩니다.

병, 실패, 사고 등, 우연인 것 같아도 하나님께는 이 우연도 사용하시기에 필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에서 불순종할 때 마다 원망하고 불평할 때 마다 찾아온 것은 이 고난이었습니다.

신명기의 주된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리라 (신28:6)

불순종 하면 어떤가요? 반대의 일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를 정금되게 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인도하는 투박한 아버지 손길입니다.

어머니 손길은 무엇일까요? 깨닫고 돌아왔을 때 싸매시고 고치시는 사랑입니다.

 

* 인격적 모멸입니다.

인격적 모멸감은 참기 어렵습니다.

수치감도 포함됩니다.

 

요즘같은 인터넷시대에서는 그 소문이 일파만파로 번집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궁궐을 떠나 도망갈 때, 시므온이란 사람이 돌을 던지며 조롱했습니다.

왕의 호위무사가 그를 죽이고자했으나 만류했습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은 이 모멸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낮과 밤을 사용하십니다.

흑암에 앉는 경우 낮을 생각하며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가? 나의 영혼은 건강한가? 이 상태를 살피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오해 마십시오. 완전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잘해서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통회하고 자복하는 상한 심령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여야 합니다.

 

3) 족하도다.

사도바울에게는 어떤 지병이 있었습니다.

그 병 때문에 괴로워 하나님께 3번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병은 낫지 않은 가운데 마음에 세미한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즉 “너는 부족함이 없느니라.” 는 의미입니다.

이때 사도바울은 어땠나요? 낙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기뻐했습니다.

약한데서 강해지는 하나님의 비결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얘기인가요? 이 지병이 자신을 찌르는 가시가 되어도 오히려 자신을 겸손케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래서 강해지

는 힘으로 역작용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성숙입니다.

사도바울도 여러 고난 속에서 이 믿음이 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 믿음에서 최고봉입니다.

 

우리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한 두 개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누구는 돈이 없고, 누구는 병이 있고, 누구는 자식이 없고, 있어도 걱정꺼리가 되고 등,

그 부족함으로 컴플레스를 가질 것이 아니라,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즉 ‘약한데서 강해지는 비결‘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서 “부족함이 없도다.”가 아닙니다.

조건의 충족욕구는 또 생깁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훌륭한 고백인가요?

다윗은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입니다.

자기 나라 유다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시대는 불레셋이 자주 쳐들어와 전쟁 통이었고, 자신은 이름 없는 가난한 집안의 막내였고, 목동이었습니다.

비관할려면 얼마든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달랐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믿었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을 보았습니다.

 

결론) 기독신앙의 우월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래나 우주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하나님이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물으신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나요?

“ 네, 주의 은혜가 과분합니다.” 하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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