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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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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6-05 14:27 조회 721회 댓글 0건

본문

하나님이 야곱에게 편지를 써서 이사야에게 배달시키셨습니다.

내용은 아주 단출합니다.

첫째단락은, “그동안 살면서 힘들었지? 원통한 것도 많았는데,,

내가 모른 체하니 많이 섭섭했지?” 그러므로 위로입니다.

둘째단락은,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반복된 하나님의 자기계시이고,

셋째단락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함을 얻으리니~”

새 힘의 비결의 보따리를 풀어놓으신 것입니다.

 

1) 야곱아, 이스라엘아

야곱은 누구인가요? 이스라엘은 누군가요?

야곱은 그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특별히 지명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평생에 고생이 많았지요.

오죽했으면 바로 왕이 나이를 물었을 때,

나이보다 “내가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살았나이다.” 했을까요?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의 고생을 꼽아보니 모든 사람이 한두 가지씩 겪는 슬픔을 종합적으로 당했더라고요.

어렸을 때의 출가, 머슴살이,,외동딸의 성폭행, 부인들의 갈등,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요셉의 죽음소식, 그러나 비로써 말

년에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죽었다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기 전에 지팡이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던 믿음은,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누군가요?

야곱의 나중이름이지만, 하나님의 약속 있는 이름이기에 민족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쯤되면 만지는 것마다 금이 되어야 할 텐데,

반대로 이들은 약소민족으로, 신민으로써 온갖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400년 애굽살이, 또 70년 바벨론 포로살이,,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한이고,,원통함인데, 참 많았습니다.

평상시에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하고 했겠지요.

그러나 저들이 구하는 대로 즉각적인 응답이 임하지 않았기에 한이 된만큼.

그 한과 원통을 하나님도 인정하신 것입니다.

사40:27)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이런 일은 참 많습니다.

지금도 성도에게 여전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아시나요?

 

2) 차이

하나님과 성도와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치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있듯이, 신세대와 쉰세대의 차이가 있듯이,,

부모자식 간에 차이가 있듯이,

애3:32~33)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그래서 방법과 때와 응답에 대한 차이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오래 기다려서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오랫동안,,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나중에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이 몸이 아파 간절히 치유를 구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가 바라던 치유가 아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는 말씀만 주셨습니다.

소원이 받아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성숙하여서 이 병을 약한데서 강해지는 역설의 은총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러나 훗날에 보면 결국 그 기도도 응답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죽음은 지병으로 말미암는 병사가 아닌 순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는 동안 심각했던 지병이 그를 삼키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구한 것이, 구한대로, 곧 응답되지 않는다 해도 놀라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살만

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돈을 구하여도 돈이 응답되지 않는다면, 그 일로 죽는 일은 없다는 반증도 됩니다.

또 100만원을 구하였는데 50만원만 임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필요한 것은 50만원이라는 의미입니다.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감당치 못할 쯤에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이든,,성도의 결핍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무엇이든 결핍은 찾게 됩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데, 자식은 부모께 나오고 성도는 하나님께로 나옵니다.

 

집 나갔던 둘째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독립을 원했지만 출가하여 다 탕진하고 돼지우리 간에서 쥐엄 열매를 먹을

때에 아버지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사울 왕이 소년시절, 아버지의 나귀가 집을 나갔기에 동무와 함께 찾으러 다녔습니다.

계곡, 광야,,고생스러웠을 때, 동무가 귀뜸했습니다.

“여기근처에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있는데 물어보자”

이들은 이 탓에 하나님의 사람을 뵐 수 있었습니다.

 

현대의 점이 판치는 것은 이러한 결핍과 불안 탓인데,

하나님을 모르니 허망한데 가서 허탄한 짓을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올 기회로 삼습니다.

 

* 소통의 재미를 더합니다.

잔디밭의 컵에 작은 공을 막대기로 쳐서 넣는 것이 골프입니다.

그냥하면 밋밋하니 여러 코스를 잔디밭에 만들었습니다.

모래구덩이, 호수, 숲 같은 장애물과 이리저리 치우치게 땅을 다진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연애입니다.

원하는 대로 다주고 다 받으면, 사랑의 묘미가 없고, 비밀이 없으며, 추억도 생기질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루셔서, 결국 주 안에 온전히 머물게 하십니다.

사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그렇다면 우리가 달라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우리는, 당장, 곧, 응답되길 바라며 완제품이 하늘에서 내려와야 은혜라고 여깁니다.

이는 하나님도 자신도 모르는 어리석음입니다.

만나를 입에다 넣어주시지 않고 매일 거두라하셨음은 수고하므로 성취도 얻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라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있으면 하나님을 등지며, 또한 현재만 알고 나중은 모르게 됩니다.

 

때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시곤 하시는 하나님,

“그러므로 내 사정은 숨겨졌고 원통함은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시기도 합니다.

이때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신다 하며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내 생각은, 항시 자기중심입니다만 하나님은 전체적으로 살피시고 유익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좀 더디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정말 화급한 것은 즉시 이루시고 앞서 준비도 하십니다.

시37:23~24)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

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그럼에도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영적점검이 필요합니다.

내 기도는 건강한가?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가? 정욕적이진 않는가? 살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면 기도 같아도 기도가 아니며,

정욕적인 기도 역시 응답을 바랄 수 없습니다.

약4:2~3)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란 영적와이파이를 주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소통하자심입니다.

소통의 방편은 기도입니다.

마21:21)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실제는 그런지 않은 일들이 많이 발생하기에 낙심되고 또 기도하는데 흥미를 잃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내게 흥미를 잃을 수 있습니다.

 

3) 기도의 발전

현대의 여러 장비들은 업그레드 하면서 사용합니다.

신앙도, 기도도, 업그레이드가 절대적입니다.

기술이 아닌 태도이고 믿음입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

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

신앙의 년 수는 있는데,,처음적 믿음과 자세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내용도 업데이트해서,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하며, 중언부언하기 보다는 그의 나라

와 의를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사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

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믿음으로 살며 기도하는 하는 성도는 낙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상한 일이 아니고 자연스런 일입니다.

마귀는 이 자연스러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다시 일어서게 하셔서 기도의 자리로 나가게 합니다.

 

결론) 위대한 기도자는 땅에 오래도록 엎디여 기도한 성도가 아닙니다.

오랜 금식자도 아니고 두 팔을 높이 든 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각과 마음으로 내려다보며 기도하는 자인데, 주님이 그러셨습니다.

눅22:42~43) ~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

나 힘을 돕더라

이들에게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했기에 새 힘을 얻습니다.

착각마십시오, 원하는 대로 된 것이,,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주의 예비하신 길을 가는 새 힘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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