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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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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6-19 13:52 조회 87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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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들이 모인 곳은 평화롭기는 한데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반면 큰 자들이 모인 것은 어떤가요? 일은 되는데 늘 시끄럽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국회이지요.

현대에 갈등이 많은 것은 국민들이 예전과 달리 큰 자들이 되어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1) 성경의 인물

성경에는 무수한, 2930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중 가장 작아서 가장 큰 자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주님입니다.

요5: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단순히 사람됨이 아닙니다.

출생부터 낮고 생애는 겸손했습니다.

말구유에 나셨고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고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십자가의 고난과 수치를 받으셨습니다.

이 보상으로 하나님아버지는 그를 부활로, 승천으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히우시고 훗날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권세

를 주신 것입니다.

지극히 높이신 것인데, 그 이유는 이처럼 낮아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이 자칭 큰 자요, 자칭 높아지기를 아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일갈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척하지 말아라

마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옳은 척, 잘난 척, 있는 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칭함을 받지 말라 입니다.

아비라 칭함을 받지 말고, 아비라 칭함을 받지 말고,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입니다.

칭함, 무엇을 의미하나요? 실제와 신분과 다른 경우입니다.

칭함이 되면 행위는 노릇이 됩니다.

 

이 둘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자칭 큰 자가 되려는 허풍과 허세입니다.

이것 때문에 세상은 골탕 먹습니다.

 

남해에는 죽방멸치가 생산되는데 전통적인 멸치잡이인 만큼 양이 작습니다.

이 죽방멸치를 알아주는 이유는 그물이 아니기에 멸치에 손상이 작습니다.

그리고 얇은 바다에서 잡기에 곧 삶아 처리를 할 수 있어 신선도가 높습니다.

당연히 값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를 아는 상인들이 박스갈이를 해서 죽방멸치로 팝니다.

돈벌이 상술이 기승을 부린 것입니다.

그 피해를 누가 입나요? 처음에는 소비자가 입어도 나중에는 생산자가 입게 됩니다.

아무도 죽방멸치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은 엄선되어야 하는데 다 선생이면 어찌되나요?

요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무릇 이런 일들은 교만에서 오는 일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반 복음적이고 비 성경적인 모습입니다.

요23:11~12) 너희 주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 낮추는 자

큰 자가 큰자리에 앉고 낮은 자가 낮추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문제는 그런지 못한 자가 그렇지 못하니 지적을 당하고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과거 유대교에 이런 인물들이 참 많았습니다.

요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알만하지요?

 

이런 신앙에는 역동적일 수 없습니다.

요23:3~4)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

만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 하며

또 이런 집단에는 형식과 위선이 충만합니다.

요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폐쇄성이 강한 보수집단 되고 결국 쇠퇴의 길을 가게 됩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 신앙은 어떤가요?

우리 자신의 신앙은 어떤가요? 비슷하지 않나요?

 

우리의 기도가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하거나

또 “섬김을 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여, 은혜 받은 자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 기도, 이 생각을 그쳐야 합니다.

집사가 장로가 되려는 운동도 멈추고, 목사들이 장자 들어가는 자리를 바라지도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엘리사, 다윗, 솔로몬, 한나, 에스더, 마리아 등만 훌륭하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성도들

도 위인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 어떤가요? “스스로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하며 충성했고, 순간순간 목례로 하나님께 경배했

던 경건했던 종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고 또 “갖다 주어라”는 말씀에 순종했던 가나잔치집의 종들은 어떤가요?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도록 자신의 도시락을 내 논 소년, 예수님께 나귀새끼를 풀어주었던 그 농부,

다 이름 없던 종입니다만 신앙과 삶은 컸습니다.

 

목회를 하니 성도들이 성경의 큰 위인들을 닮고자 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때 믿음이나 행동 보다는 이름부터 닮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작은 자가 되기보단 큰 자가 되기 위한 소망의 발로입니다.

 

목사님들은 요한이라는 이름이 참 많습니다.

바울이라는 이름도 심지어 에녹이라는 이름도 요셉도 많습니다.

그러나 말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진짜이든지 사기꾼이든지,

 

개인적으론 바돌로매인 나다니엘이 참 좋습니다.

그는 12제자였지만 훗날 사도행전에도 그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가를 보십시오.

요1:47) ~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사람이로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 모양을 보시고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큰 자, 잘난 자, 유명한 자 라는 세인의 평가보다는 언제라라도 이런 평가를 받아야 진정한 큰 자입니다.

 

지난 주간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찾았습니다.

이곳에 가면 교훈을 얻고 무딘 소명을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미국감리회에서 파송된 에펜젤러선교사님의 묘비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 ~ 선교활동 중 목포 앞바다 전복된 배에서 한국 소녀를 구하려다가 당신이 익사하시었다.”

그의 십자가는 목포바다였습니다.

 

빛은 자칭 큰 자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아서 큰 자로부터 옵니다.

 

저기 붙여놓았는데,,좋은 글을 소개합니다.

“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관건입니다.

높아지려는 사람이라면 높은 만큼 그 밑은 고통을 당합니다.

섬기려는 사람이려면 어떨까요? 그 밑은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수만이 회사가 판교에 있습니다.

왕복 4시간을 소비해야 합니다.

좀 가까운 강남 신사동 회사도 있었지만 이 회사로 결정한 이유는 복지가 좋답니다.

복지가 좋다는 것은 직원들의 배려이고, 그 배려가 성숙한 경영신념이라서 선택했습니다.

 

교회에서 조차 갑과 을이 있다면 믿으시겠나요?

담임목사가 부목사나 전도사에게 갑질을 하고, 교회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섬김을 받으려한다면, 그래서 일어나는 갑질인

데, 주의 몸은 아닙니다.

 

3) 거인증

우리는 약소민족 약속국가 출신들이라서 그런지 배고픈 것은 참아도 지고는 못사는 성향이 되었습니다.

계속 크려고만 한다면 어떨까요?

몸은 늙었는데 정신과 마음은 어릴 적 그 모양 그대로라면 어떨까요? 발달장애증에 걸린 것입니다.

 

큰 것보다는 건강해야 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작은 자가 되기 위한 노력, 기도, 신앙은,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입니다.

요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마어마한 일들이 발생해야 하는데,, 성도도 많은데,, 어떤가요?

어떤 일들만 발생하고 있나요?

법이 약해서 인가요? 무식해서 인가요? 자칭 큰 자들이 많아서 인가요?

우리는 반칙하는 우등보다 최선을 다한 꼴지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지지해야 합니다.

 

결론) 주님이 지금 누구에게 말씀하셨나요?

세상의 뭇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온유하거나 겸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된 이들에게는 이미 본성이 바뀌고 성령이 계시기에 온유하여 겸손하고 낮아질 수 있습니다.

자칭 높아지기 보단 낮아짐을 즐거워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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