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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서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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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6-26 14:08 조회 80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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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 신앙을 집짓는 일에 비유하셨습니다.

집짓는 데는 어떤 집이든 3가지가 주요공사입니다.

터 다지기, 기둥세우기, 인테리어하기 등,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공사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신앙을 운동경기에 비유하여 법대로 하기를 바랐습니다.

1등을 했어도 약물이나 반칙을 했으면 1등이 취소되며,

집짓는데 불량자재, 불법건축기술은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 말세의 특징

말세의 특징은 몇가지가 경고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징조가 있고,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불법이 성행하며 초급해집니다.

신앙적으론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며 이단과 철학이 판을 칩니다.

이때 사람들은 자기귀가 가려워 스승을 많이 두는데,

자기마음에 맞으면 아멘해도 틀리면 설교가 틀렸다 하는 경우입니다.

“ 목사님이 ”부자되세요,“ 하면 좋아합니다.

“저축 많이 하세요.” 해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모은 돈을 좀 나누세요,” 하면 거부합니다.

 

곰팡이가 요즘 같은 장마철에 무성하듯이, 신앙의 곰팡이는 계시된 말씀과 삶의 괴리가 클 때 생기는데 지금이 그런 시대

입니다.

영적곰팡이가 많이 피어나 이단도 많고, 가짜능력도 많고, 그럴싸한 신학과 철학도 등장했습니다.

 

지난주일에 한 노 철학자 예를 들었습니다.

자신은 교회를 나가지 않아요. 그러면서 기적도 믿지 않고 재림도 의미적으로 말해요.

교리보다는 예수님의 삶, 정신을 따르자고 설명을 해요.

좋은 것 같아도 잘못된 거지요.

이를 “주지적주의”이라 합니다.

지성, 이성, 합리성을 중히 여기는 신앙경향인데, 기적을 인정 안 하고 인본주의적 태도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소위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의 신앙태도입니다.

이들은 사랑을 최고로 여깁니다.

맞습니다. 사랑은 최고입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이고 완성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터전은 아닙니다.

나중해야 할 인체리어로 터를 먼저 다지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럴싸하고 아름다워도 불법이기에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2) 믿음, 소망, 사랑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니 “너희는 사랑을 믿으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먼저 “오직 믿으라.”했고, “회개하라.” 했습니다.

믿음은 사실적인 모순이 있을 때 요구합니다.

주의 십자가의 대속은 믿음의 내용이지, 소망이나 사랑의 내용이 아닙니다.

고전15:2~4)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

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는 구원의 모형인 출애굽사건에서도 증거되었습니다.

출애굽은 유월절 어린양 피 흘림을 믿은 사건이지, 하나님의 사랑이나 소망을 믿은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 믿음이, 반석위에 지은 집의 기초가 됩니다.

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

심을 입었나니

 

현대인들의 신앙 실패는 주로 여기서 일어납니다.

믿었기에 다된 줄 압니다.

그러나 믿었기에, 믿음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기초를 다졌으면 골조가 오릅니다.

소망인데, 믿음으로 말미암는 소망이어야 합니다.

이 소망을 튼튼하게 하는데 절대적요소로 시련입니다.

튼튼한 뼈는 어떻게 만들고 유지되나요?

칼슘을 보충하고 운동을 해야, 부실 뼈 즉 골다공증을 방지합니다.

초대교인들의 신앙이 좋았던 이유는 환난 중에서 믿음의 소망으로 인내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제일 불행한 사람이 누군가요?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자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출애굽을 한 이들이 가나안을 믿음으로 소망했기에 광야를 견뎠던 것입니다.

언제나 성도는 천국을 소망해야 합니다.

 

믿음의 구원과 믿음의 소망은 인내를 이루고, 마침내 믿음으로 사랑의 수고도 이룹니다.

신앙의 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 이타심을 번져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갖고 삶에서 빛으로 나타나는 일입니다.

 

3) 믿음이 결국

벧전1:9)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의 결국이란 믿음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우리 신앙의 완성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죄에서 구원,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면 육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세상에서의 구원, 세상은 악의 구렁텅이고 영적전장입니다.

세상에서 편하고 무탈하며 살기보다는 거룩함을 추구하고 성취하는 일입니다.

큰 화상사고를 입었던 이지선씨가 복지학박사가 되었습니다.

인간승리이기도 하지만 신앙승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음에서의 구원, 지옥과 천국은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적인 장소입니다.

 

주지적주의자들은 절대적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셨을 리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모순이라면서,, 그럴 듯합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담하와의 타락도 못 막으신 것이 되며, 이 타락을 알지 못했으니 전지하지 못하신 하나님으로

비하하기도 하여, 그 방점이 “신은 죽었다.”입니다.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직 계시대로 계시만큼 믿고 순종해야 할 대상입니다.

 

여늬 종교는 죄인된 사람이 깨달음이나 혹은 선행으로 의인이 되려합니다.

이것이 불가능하기에 “나 구원받았다.” “하나님과 화목되었다.”

“천국에서 만나자.” “찬송하리로다.” 할 수 없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그러나 계시된 말씀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통해서 이 모든 일을 이루셨기에 믿으라 하며,

믿는 성도에겐 충분히 고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보적인 믿음에 머문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믿음의 성격이 다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죄사함의 대속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일입니다.

지옥에서 구원받습니다.

그 다음의 믿음은 성도로써의 환난과 시련을 인내하며 소망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구원입니다.

그 다음의 믿음은 사랑입니다.

최고의 믿음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냅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수학만 검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도 검산할 수 있습니다.

열매인데 인격이고 행동과 행위입니다.

사랑 있느냐? 소망 있느냐? 주에 대한 고백이 있느냐?

약2:18~20)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

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인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 인줄 알고자 하느냐

 

결론) 우리는 믿음에서 사랑으로 까지 이룹니다.

시작도 그 결국도 믿음입니다.

벧전 1:21~22)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

게 피차 사랑하라

 

믿음. 소망, 사랑 순서를 잊지 마십시오,

사랑이 제일이어도 기초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화목되지 못했기에, 위대한 사랑이라도 남은 구원할지언정 자신은 구

원받지 못합니다.

기초된 믿음,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다면 자기만의 구원이고, 사랑이 없다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처럼 예수가 그리스도라 믿는데서 다지며, 그 신앙의 거룩을 이룩하는데 소망의 인내,

그리고 천국을 이루기 위한 사랑의 수고가 날마다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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