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견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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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2차 대전을 치룬 후 세계는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유엔을 만들었습니다.
유엔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전쟁방지와 평화유지입니다.
각 국가들이 자신들의 소견 따라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입니다.
이 덕을 처음 본 국가가 우리입니다.
또한 도로에 차선과 신호등이 없다면 어떨까요? 혼란이 있고 사고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사회나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위한 법이 생기고 통치자가 생깁니다.
1) 신앙질서
신앙도 자기 소견 따라서는 위험합니다.
미가라는 사람과 그 어미는 하나님을 섬기며 복을 구하였지만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기껏 한 것이, 자신들의 소견대로 행하다 보니 오히려 화를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요약해 봅시다.
미가의 어미는 집에서 돈을 잃어버리자, 아들이 갖고 간 줄을 모르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 저주에 두려웠던 미가는 자수를 했습니다.
이제 그 어미가 놀랐습니다.
자신의 저주가 아들에게 미칠까봐, 그래서 아들에게 되받은 은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헌금명목으로 신상을 만들도록 했
고 아들은 그 만든 신상을 자신의 집 신당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한 소년을 월급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대단한 열성의 소유자입니다.
열성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목적부터 빗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구했으며 그 방법은 계시나 전통이 아닌 자기 식이었습니다.
당대는 신앙만이 아닌 모든 분야가 이랬습니다.
애굽에서 출애굽한 후 가나안에 갓 정착한 때였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됩니다만 이 신앙은 불량신앙입니다.
왜 위험한가요? 왜 불량인가요?
*자기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예물을 드림도 하나님기쁨이 되기보단 자신에게 화가 오질 않기 위한 액막이였습니다.
*편리중심이었습니다.
당시 성전은 실로라는 곳에 있었습니다만 이들은 집에 신당을 만들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닌 만든 우상을 섬겼습니다.
지식을 다른 것이 아니라 느낌을 따른 탓입니다.
* 마구잡이로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제사장은 레위지파 아론의 후손이어야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제사와 제사장만큼 앞서 계시해 주셨는데, 이들은 가장 귀중한 가치를 부러 외면했습니다.
열성신앙이 사이비로 전락한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요?
삿17:6) 그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똑똑한가요? 무식한 시대인가요? 똑똑해서 탈이 난 것이며, 가난해서가 아닌 부유해서
오히려 탈이 난 경우입니다.
2) 신앙자태
신앙을 점검해 봅시다.
*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영광인가요? 나의 기쁨추구인가요?
하나님의 영광추구라면 말씀순종이 대세여야 하고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설득하는 신앙이 대세라면, 나의 기쁨추구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의 고백이 결코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꼭 있어야 합니다.
요3:4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실 줄 믿습니다.
* 신앙자세를 보십시오.
바쁘고 분주하다하여 편리주의가 팽배합니다.
물론 신앙이 지역과 시대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변질이 아니라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질이 있기에 문제가 됩니다.
저마다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착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표준은 언제나 성경이어야지 시대가 아닙니다.
동성애는 언제나 죄악입니다.
그런데 시대적 마음으로 그 죄악을 감싸 안으면 성경은 틀린 것이 됩니다.
죄는 하나님 말씀에 부족하거나 넘친 것 아닌가요?
또 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는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잘못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마음만이 아닌 마음으로부터입니다.
혹 마음으로 식사하는 사람 있나요? 혹 마음으로 직장생활 하는 사람 있나요?
혹 마음으로 공부하나요?
그러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자세는 기도하지 않는 생활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시작일 뿐, 완성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완성은 인격이고 삶입니다.
또 우리의 마음을 진단해 봅시다.
우리의 마음에는 누가 들어있나요? 누가 큰 자인가요? 미가는 실로의 성전을 가지 않고 왜 집에다 신당을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자신을 너무 잘 믿는데, 성경으로 자신을 봐야합니다.
우리 속에 뭐가 있나요? 그 상태가 어떤가요?
롬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
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런데 자신의 마음을 믿어서야 되나요?
* 주의 종들을 보십시오.
어느 의사는 수술하여 환자를 거푸 죽게 했습니다.
의사면허증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의사의 면허증은 의사로써의 최소한의 자격이지 최대한이 아닙니다.
반면 명의도 많습니다.
변호사 검사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자격증이 있다지만 인품의 엉터리, 전문 실력의 엉터리가 많습니다.
운전사도 보십시오.
이제 갓 면허 딴 운전사가 있고, 무사고 운전사도 있잖습니까?.
주의 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인이라서 다 제사장이 될 수 없듯이, 은혜 좀 받았다고 해서, 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신앙의 연조가 있다고 해서, 다
장로 목사돼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과 검증이 아주 약해졌습니다.
아는 두 분의 권사님이 이쪽교회 저쪽교회에서 장로님이 되셨답니다.
이 두 분의 남편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장로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사별이 아닌 이혼한 사람은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다 자기가정을 돌보지 못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됩니다.
이런 일이 아주 많습니다.
여기서 안 되면 저쪽으로 가서 됩니다.
왕펄에서 왕골이 나는데, 이쯤되면 왕골이 날 수 없습니다.
또 주의 종은 복음의 확실성이 있어야 하고 인품이 좋아야 합니다.
학위가 우선이 아닙니다.
정치와 사업성은 있는데 신학과 복음이 결여 되었다면, 인품의 장애가 있다면,
주의 종의 무자격자는 이런 류가 아닐까요?
기둥이 부실하면 집이 무너지고 서가래가 부실하면 지붕이 주저 않습니다.
기독교의 윤리가 없어졌습니다.
말과 행동의 일치가 없답니다.
자칭 주의 종들이라는 이들의 각종범죄가 증가했습니다.
옛날에는 복음과 민족과 국가를 위한 투쟁으로 감옥에 갔다면 지금은 사리사욕으로 갑니다. 이 모양이 결국 교회가 비는
이유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3) 다시 시작
건강은 잃는 후에 찾기보단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의학도 그래서 예방의학이 절대적인 추세입니다.
우리 신앙, 너무 개인주의로, 편리주의로, 마음주의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 되게 하는 것, 거룩한 것, 주께로 부터 온 것,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 세상적인 것, 자기소견에 따른 자의적인 신앙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보십시오.
미가의 신당과 우상과 제사장은 훗날 단 지파에 의해서 버림을 당했습니다.
삿18:27)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
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그리고 그 신앙은 기념이 아니라 수치가 되었습니다.
삿18: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결론) 언제나 자기 소견을 따라서 하는 자의적 신앙은 위험합니다.
신앙만큼은 창조적 신앙이 돼서는 안 됩니다.
후회하고 댓가를 치룹니다.
신앙은 언제나 정도를 가야 합니다.
그래야 늦어도 지름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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