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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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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7-17 13:32 조회 699회 댓글 0건

본문

라디오가 대세이던 1970년대에 한 명랑노래가 있었습니다.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 란 대중가요인데, 그 노랫말이 재미있었습니다.

“ 아무리 못생긴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이 현상을 생물학자들이 알아보았는데 뇌에서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이 나와 기분을 좋게 해서, 예뻐지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기분 좋음이 중독도 갖고 와 자칫 사랑이 집착을 만들게 된답니다.

참 사랑을 알려면 상대방에게서 찾으면 됩니다.

상대방이 감동하면 사랑이고 싫어하면 집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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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입니다.

 

1) 우주적 사랑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에 상대적이지 않는 사랑이며, 하나님이 크신 분이시기에 큰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수혜자들입니다.

이 사랑을 아는 자들은 감읍하면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찬송하고, 이 사랑에 변화된 사람들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성도들에게 사랑할 힘이 되어, 성숙할수록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지 여기에 맞서는 별난 사상과 이단도 생겼습니다.

네오맑시즘을 들어 보셨나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휩쓸고 있는 사상입니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공산국가들이 무너짐으로 맑시즘이 매력을 잃자, 유럽사회주의자들이 네오 맑시즘을 만들어 냈습니다.

네오맑시즘이란 공산주의와 휴머니즘이 교묘하게 혼합된 사상으로, 내용은 무신론이지만 겉으로는 평등, 인권, 나눔, 섬김, 정의, 소수자권익보호, 아름다운 공동체등을 추구합니다.

이 사상저변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차별법 반대법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교회에 들어와 신앙적으론 이단이 되지요.

사랑이 최고이다, 맞습니다.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자, 좋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믿으라고 까지 합니다.

이 사상과 이 신앙은 결코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애당초 무신론주의에 기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사랑은 언제나 하나님사랑에 기인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으니,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침내 할 수 없던 원수까지 사랑하는데 이르는 것입니다.

이때의 사랑은 믿음이고, 이때의 사랑은 소망이고, 이때의 사랑은 성령의 힘입니다.

그러나 네오맑시즘에 의한 사랑은 인간적이고, 철학적이고, 시대적이고, 도덕적이기에 한갓 풍류에 불과하게 됩니다.

 

2) 성경적 사랑

음식조리에는 소금이 절대적이듯이 인간사에는 사랑이 절대적입니다.

부부가 사랑이 없다면 무엇이 남나요? 의무만 남습니다.

이런 관계는 건조하다가, 다투다가, 결국 이별하게 됩니다.

노사 간의 갈등이 무엇인가요? 임금문제라지만 근본을 보면 신뢰의 문제이고, 사랑 없음이 나옵니다.

국가 간의 마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테러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이 정치, 외교, 치안의 부족이 아니라 사랑 없음입니다.

 

전쟁이 많고, 가난했던 시대에는, 국가들이 뭉치고, 국민들이 뭉치고, 가족들이 뭉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떡 따라서 자리이동을 하므로,,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앞으로 심화됩니다.

마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재벌형제들의 다툼이 그 증거입니다.

떡이라는 자본 때문에 형제라는 의리를 버렸습니다.

신 공항 때문에 밀양과 부산이 큰 파동을 겪었습니다.

신 공항이 자기지역에 떡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샤드를 배치한다니 지역마다 펄쩍 뛰었습니다.

국가안보에 충성하는 의리보다 지역 유익이라는 자기 떡이 사라질 듯해서입니다.

누구 사랑인가요? 자기 사랑이고요,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받겠다는 심사들의 발로입니다.

이런 곳에는 절대 발전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툼과 고통만 있을 것입니다.

 

뼈와 뼈 사이에는 관절이 있는데, 여기에는 연골이 있습니다.

완충작용을 하고 부드럽게 해줍니다.

이 연골이 닿거나 이탈되면 아픕니다.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시대나 관계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벧전4:8)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현대의 문제는, 사랑은 없어지는데 언론방송과 여론은 많다는데 있습니다.

지적과 책망과 거기에 따른 편 가르기가 심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민주주의와 상업주의도 한 몫 한 탓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랑이 나를 통해서 빛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에 가장 빛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성도의 사랑은 성도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받는 빛입니다.

이 빛은 한계가 없습니다.

 

3) 사랑 없으면

본문 11~ 13절에서 사도바울은, 이 사랑이 없으면 온 재산을 팔아 선교를 하고 구제를 해도꽹과리가 될 뿐이랍니다.

또 귀신을 떠나가게 하고 병을 낫게하는 능력자도 아무것도 아니고,

수십 년간 노숙자들에게 치료하고 밥 퍼주고, 언론의 조명과 칭찬을 받았던 선한 박애주의자라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인가요? 추상적인건가요? 아닙니다. 어려운건가요? 아닙니다.

 

* 새 성품입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새 인격입니다.

고전13: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 새 생활입니다.

고전13:7~8)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결국 사랑은 주님의 성품이고 인격이며 삶입니다.

무신론자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성경적 사랑은, 주 예수께 받은 사랑으로써 우리 신앙의 본질이고, 위대한 구원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거듭나면 당연해도, 신학자요 철학자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리 성자의 칭호를 들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사랑하라 주문하지 않고 사랑의 정체를 소개했습니다.

이 사랑은, 성품이 빚어졌다면 곧 인격이 되고, 생활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첫걸음을 떼었다면 열 걸음, 만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손을 오므렸다면 펼칠 수도 있다는 이치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다만 시간에 비해 좀 작을 뿐입니다.

이 사랑을 키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하나님께도 경외를 넘어, 사랑하는데 까지 가야 합니다.

이런 사랑이 감동을 주며 변화를 이루어 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적 사랑은 행동하는 믿음이고 소망의 삶입니다.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 언제나 우리 전인격적신앙의 결정입니다.

 

한 시인이 오래전 고인이 된 의사를 추모했습니다.

의사는 생전에 영등포 쪽방 촌에서 진료를 했었습니다.

오랫동안 감동을 준 신앙인이었기에 사랑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숨결 (김형영시집) -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을 생각하며 -

 

여기 막다른 골목에/ 사랑의 씨 뿌린 당신/햇볕도 반 뼘밖에 비추지 않는/ 비좁은 골목길.

너나없이 못 본 체 지나쳐버려/ 구겨진 그림자만이 길게 드러눕는 곳.

 

여기 메마른 땅에/ 뜨거운 눈물 뿌린 당신/ 아픈 것만 보면 견디지 못하는 가슴/ 그 가슴들.

하나 둘 그렇게 모여/ 이십년.

 

죄가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고/ 잘나고 못나고를 가리지 않고/ 행려병자든 이국인든/ 주정뱅이, 거지/ 병들어 쓰러진 모든 이의 모든 생명위에/ 희망의 싹을 틔운 당신.

 

꽃밭의 꽃들이 무엇 하나 바라지 않고/ 제 향기 퍼트리듯/ 지금 바로 여기에/ 당신이 퍼트린 사랑의 숨결/ 그 따뜻한 숨결로/ 이 세상은 아직 살만 합니다.

 

 

결론) 얕은 시내가 물소리가 나고, 별 볼일 없는 신앙들이 사랑을 논합니다.

사랑은 말이 아닙니다.

사랑은 학문도 아닙니다.

사랑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성도는 어때야 하는가요? 성지를 찾기보단 성자의 삶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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