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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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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7-31 13:39 조회 81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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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간다면 챙길 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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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휴가지가 무인도라면 짐도 다릅니다.

만일 불난 집에서 나온다면 무엇을 갖고 나올까요?

 

오늘 세상을 떠난다면 무엇이 절실할까요?

 

1) 주님과 주님의 말씀

주님은 여기에 본을 보이셨고 무수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를 받아드리는 생활이 경건이며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관점은 온통 사는데 맞춰져 있습니다.

새가 날개 짓 하는 것, 살기 위함입니다.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는 일도 살기위한 몸짓입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노래방 가서 노래하는 것, 역시 살기위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중국에서 탈북자들의 소식이 들립니다.

북한의 수학 영재도, 군 장성도 있다는데, 고향과 가족을 떠난 일이 다 살기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누가 아닌 내가 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세상 이치와는 아주 다릅니다.

세상은 지금 살아야 미래도 산다고 주창하지만, 주님과 성경은 지금 죽어야 영원히 산다고 가리킵니다.

이를 이성적으로 받아드리기 어렵기에 “믿으라”합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근본 하나님이시지만 오히려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 결국의 무엇인가요?

빌 2:9)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2:10) 모든 이름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11) 모든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님이 죽었나요? 살았나요?

 

모든 독재자들은 생전에 자신을 높였습니다.

그 추종자들은 독재자를 신으로 추앙하도록 했습니다.

우상화이기에 죽어도 시체를 방부 처리하며 보존합니다.

북한의 김일성 동상이 몇 개 인줄 아시나요? 약 3만 5천개가 넘는답니다.

그러나 몰락하면 이 동상부터 자빠지고 우상화는 헌신짝 됩니다.

독재자들은 한 국가나 한 민족의 아버지였다지만 죽어서는 인류의 원수가 됩니다.

이들은 주님과 정반대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때야 되나요?

본문대로 “항상 복종”해야 하는데,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인데,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 시작은,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확증을 얻어야 합니다.

 

구원이 무엇인가요? 구원은 곧 부활이신 주의 생명을 얻는 일이요 영생입니다.

요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8:12)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주 따라 가면 쉽지만 그 가는 길이 어렵습니다.

마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맞습니다.

자기를 부정하며 날마다 죽고자하는 일인데 찾는 이가 많을 리 없습니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믿음으로 받을 뿐, 소유물로 살 수 없습니다.

눅12:15) ~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그래서 탐심도 물리쳐야 합니다.

 

2) 구원을 이루라

이 구원이 주님시각에서는 “구원을 받으라”입니다.

주님이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편에서는 “구원을 이루라”입니다.

빌2:12) ~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 구원의 얼굴이 있습니다.

*칭의의 얼굴이 있습니다.

주를 구세주로 믿는 그 순간 즉시로 이루워진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죄인이 아니 의인으로, 죄의 노예가 아닌 은혜의 왕노릇하는 아들로 인정하십니다.

이때 천국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칭의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단계입니다.

 

*성화의 얼굴이 있습니다.

이제 구원 받았으니 성령이 보혜사로 계십니다.

자연 성령을 따라 살려는 새로운 성품의 요구가 생깁니다.

반대로 살았던 대로 살고자하는 욕구도 있어 자기 안에서 긴장과 갈등과 전쟁을 하곤 합니다.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 때의 비결은 옛 성품은 죽었다고 인정하고 새사람의 성품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론은 가능한데 실제는 실패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또 반복 하고 도 반복하고 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화는 하나님과 사귐의 단계입니다.

 

*영화의 얼굴이 있습니다.

완전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단계입니다.

계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이러한 구원은 마치 남녀가 만나 함께 사는 결혼생활과 같습니다.

결혼은 이 구원의 신비한 비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선교하면서, 너희를 주님께 중매한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끗함과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볼 수 있다면 소경이 아니고 움직일 수 있다면 앉은뱅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소경되고 앉은뱅이 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의지를 작동시키십니다.

그 시작은 칭의요, 그 다음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성화요, 마침은 영화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부족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칭의에는 열심입니다만 성화를 이루는 데는 많이 부족합니다.

아니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몸이든 생각이든 세월 따라 자라지 않은 자녀가 있다면 어떨까요?

아닌 자녀 교육을 하는데 부모보다 자기주장만 앞세운다면 어떨까요?

 

3) 항상 복종

우리의 구원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내 구원이고 내 생명입니다.

세월 따라 자라야 하며 그 방식은 내가 아닌 구원을 주시는 주의 방식입니다.

“항상 복종” 무엇을 의미하나요?

순종이라는 말보다 강한 단어를 썼습니다.

그리고 ‘할 만하던지’ 나 ‘기회를 봐서’ 가 아닌 “언제나”입니다.

 

이해되어서 가 아닙니다.

지금은 사는 일이 분주하니 미뤘다가 나중에 가 아닙니다.

교회가 온전해서 가 아닙니다.

이 보다 시급하고 이보다 중요한 사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구주를 믿었던 때나 좀 믿는다며 주님과 함께한 비밀과 추억을 지녔을 때도,

어느 때나 복종해야 합니다.

믿음은 전인격적인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구원의 훼방꾼입니다.

못 믿게 하고, 더디 믿게 하고, 의심하게 하고 분주하게 하고, 시험 들게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래서 항상 복종은 중요합니다.

 

결론) 엄마 품에 안긴 아기를 보십시오.

언제나 평안합니다.

우리는 벌써 주의 품에 안긴 바 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아프고 늙어서만이 아닌 항상 믿고 따라야 합니다.

곧 항상 복종입니다.

 

이 삶이 있나요? 사귐의 단계에서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부정하고 주를 인정하는 삶, “나는 날마다 죽노라”했던 사도바울의 삶이고, 그 결국은 “나는 날마다 다시 사노라”는 삶으로서 영화로 까지 이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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