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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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람의 성격 형성은 성장과정에서 받는 경험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그 중 말이 으뜸이랍니다.
좋은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은 좋은 성격의 인격자가 되지만,
언어 폭력을 당하면서 자란 사람은 정신적 장애가 된답니다.
이런 정신적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약보다 역시 말이 좋다고 합니다.
이를 정신분석적 상담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말은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칼이 되기도 하고 내면을 치료하는 약이기도 합니다.
잠12: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1) 지혜자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을 가야했습니다.
아주 비참할 때지요.
이때 사울왕의 친족인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다윗의 호위무사들이 시므이를 죽이고자 했으나 다윗은 만류하였습니다.
삼하16:11~12)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갚아주시리라 하고
맞습니다.
훗날 다윗은 다시 성으로 들어왔고 국가를 번성시켰으며 저주했던 시므이는 솔로몬에 의해 죽었습니다.
지혜는 쇠나 돌을 다듬어 도구도 만들지만 저주를 무시하고 축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자의 혀는 양약과 같습니다.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위에서 죽으시면서 까지 자신을 못 밖은 이들을 위해 축복하셨습니다.
눅23:34)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옛날 욕 잘하는 사람이 한 선비에게 욕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선비는 웃고만 있었습니다.
욕한 사람이 더 흥분하다가 마침내 욕을 그치고 상대방에게 물었습니다.
~ 왜 웃느냐?
선비는 “난 그 욕을 안 받으니 웃을 수 밖에”
선비가 욕을 안 받으니 그 욕이 누구에게 가겠나요? 욕한 사람이 안게 된 것입니다.
2) 타인에게
성도는 욕을 안 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괴롭고 원통한 일을 많이 당하셨는데 욕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개그우먼 이성미씨의 간증입니다.
그녀는 개그우먼 초기부터 부러 욕을 배웠답니다.
그래서 맛깔스럽게 욕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주로 욕을, 밖에서보다 집에서 아들에게 했다고 합니다.
항상 아들과 갈등이 컸는데 그럴 때마다 욕으로 해결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욕먹은 아들이 “교회 집사라면서... 맨날 욕이나 하고.. 교인들이 알까?‘하고 묻더랍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새벽 기도회를 다녔는데 어느 날 기도 중에 감동이 오더랍니다.
“니 아들을 니 욕대로 해주랴?” 이후로 욕을 끊었다고 합니다.
욕먹던 아들도 한동안 욕을 안 먹어 금단증세가 있더니, 자신의 있었던 일을 알고난 후, 관계도 좋아졌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그에게 양약이 되고,
비타민이 되게 하려면 자격 요건을 따지지 말고 평안을 빌면 됩니다.
마10:12~13)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식당에서나 버스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도 “안녕하세요”, “수고하시네요” 하면서 인사 먼저 하면 됩니다.
또 마주치는 사람에게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하면 됩니다.
그러나 항상 하기까지는 훈련되어야 합니다.
일반 업소들이 이런 훈련 안 된 종업원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이 안 된 종업원 때문에 손님 떨어지는 일이 됩니다.
몇몇 식당에서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말이란 묘합니다.
기분이 있고, 인격이 있고, 나이가 있고,, 신앙이 있고, 고향이 있고, 때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축복도 명령하셨습니다.
눅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러므로 성도는 말도 잘해야 합니다.
이는 논리나 논술을 의미하기 보다, 지혜롭게 소금을 고루치 듯 적재적소에 써야합니다.
3) 최고의 말
특별히 감사의 말은 전인격으로 영향을 줍니다.
일본해군 장교출신인 카와가마 기이치 씨는 2차 대전 후,
고향에 돌아왔지만 사는게 지겹고 짜증나 원망과 불평에 빠졌습니다.
결국 전신이 굳어져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정신치료의사는 “매일 밤 감사를 만 번 하세요”의 처방을 내렸습니다.
기이치 씨는 살고싶은 마음에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지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감 두 개를 사와 “아버지 감 드세요” 할 때 “감사합니다”하며 손을 내밀었고,
손이 펴짐과 동시에 몸도 펴졌습니다.
말로만 하던 감사가 실제 감사가 되고 불치병도 치료되었던 것입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지만 감사의 말에는 효능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그냥 교훈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말을 시험대에 올려보십시오.
어떤 말이 주종을 이루고 있나요?
가까운 관계도 말 때문에 불화를 겪고 있지 않나요?
세상은 말이 기술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어느 왕은 말더듬이었지만 훈련으로 개선되어 연설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이 신앙이랍니다.
약3:9~11)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을 사람을 저주하나
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어찌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거나 말끝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해서 지혜자의 혀가 아닙니다.
살리는 말과 혀가 되어야 합니다.
거짓, 비방, 희롱 등은 버려야 되고 복을 빌어야 합니다.
벧전 3:9~10)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우리나라 영화에 욕이 많이 나옵니다.
흥행과 상관없이 불량영화입니다.
욕과 막말이 난무하는 시대는 발전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개인이 복이 없는데 시대가 복이 오겠나요?
나비효과를 아시지요? 이곳의 나비 한 마리가 날개 짓 한 것이 아주작은 미동이라도,
효과는 효과를 만들어 저 쪽에서는 바람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결론) 말이 무섭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도 간답니다.
종의 말보다 권세자의 말은 더 무섭습니다.
그렇다면 미련한 자의 말보다 지혜로운 자의 말은 어떨까요?
성도는 누구인가요? 여러분의 혀와 말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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