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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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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9-11 13:59 조회 1,114회 댓글 0건

본문

이조 역사는 한 왕조로써 약500년을 이어왔습니다.

세조부터 철종까지의 25대 474년 동안, 1893권 888책 약5천만자의 방대한 기록을 이조실록이라 합니다.

사관에 의한 기록이지만 왕도 어쩌지 못하는 객관적, 공정성의 기록이기에 위대한 문화유산입니다.

결국 가치와 보존을 인정받아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기록이지만 그래서 보물이 되었지만 이조는 망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기록만 했지, 선대역사의 교훈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1) 두 기둥

역사를 교훈삼지 않아 비슷한 전철을 받는 곳이 옛 유대민족이었습니다.

미3: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아마 이런 역사를 답습하는 곳이 또 있다면 북한정권일 것입니다.

 

건축의 기본은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 건축물이 무엇이든 어떻든 터와 기둥을 옳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층빌딩일수록 기초를 깊게 파고 기둥은 인공위성에서 맞춥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고 망합니다.

 

국가와 사회를 이룩하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이념과 체제입니다.

조선이 망하고, 일본이 지배하고, 해방이 되고, 6,25전쟁이 일어나고 하는 난리 통에 하마터면 우리도 공산국가가 될 뻔했

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민주국가고 자본주의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결에 의해서 움직이고, 그 다수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혹은 국가지도자를 선출해 따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나쁘다고 하며 못한다고 흔듭니다.

개인민주주의 하자는 행동 같습니다.

잘못된 민주주의입니다.

어떤 정치인도 만백성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표로 나를 위임하고, 표로써 신탁하는데, 곧 정당정치입니다.

이때 당과 정치인을 잘 뽑아야 성숙한 정치와 국가 발전이 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에 의해서 움직이는 세상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긴장이 있지만, 자본주의는 자본으로 노동자를 부리는 구조입니다.

사회주의에서는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도둑놈, 노동자는 착취당하는 억울한 자라는 면을 부각시켜, 이 구조를 혁명

만이 전환시킬 수 있다하여 혁명적 파업으로 몰고 갑니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많이 천박해 졌습니다.

정의 없이, 인정 없이, 양심 없이, 자본이 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보다 돈느님이 절대적이라지요?

조물주보다 건물주가 위대하다지요?

오직 돈만 사모하고 돈을 위한 사회로 가고 있는 현상입니다.

 

최근 한 중년이 이혼한 후 두 아이는 엄마께 맡기고 혼자 살다가 로또 1등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 그 소식을 귀뜸하고 지방으로 내려가 소식이 없자, 엄마와 여동생이 찾으러 다녔고 마침내 찾아 당첨금을 나누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말을 듣지 않자 엄마는 1인 시위를 했고, 딸과 함께 아들네 집을 쳐들어갔습니다.

이 문제로 그들은 재판까지 받았습니다.

그 사이 망신을 당했습니다.

 

2) 양심의 문제

이러한 로또당첨금은 돈이라 하고, 자본이라고도 하고, 뇌물, 삯이라고도 합니다만 명칭이 무슨 문제인가요? 옛날 한량들

은 기생에게 줄때는 꽃값이라고 했답니다.

근본문제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급작스레 느는 사회적문제가 무엇인가요? 돈 때문에 생긴 문제들입니다.

미3:11) 그 두령은 뇌물을 인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

서 ~

 

두령, 제사장, 선지자, 요즘 같으면 출세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돈을 위했는데 부정이요, 부패요, 사치가 됩니다.

물은 아래로 흘러도 돈은 위로 흐르는 습성 때문입니다.

이 폐단을 방지한다고 김영란 법을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권력이 된 이상, 돈을 위하여 사는 우울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뇌물을 위하여,

삯을 위하여,

돈을 위하여,

명분과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은 돈 때문이고, 돈 줘야 하며, 돈 따라 가는 판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지향하고 사모하는 신앙까지 되었습니다.

미3:11)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 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신앙이 무엇인가요? 돈을 위하는 목적과 목표는 아닙니다.

주와 사람과 공의를 위하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목적과 목표를 잃었으니 우상숭배가 되고 기독교도 천박한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재앙은커녕 복이라고 반대로 가르킵니다.

심각한 문제 아닌가요?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어떤 지경에서든 살 수 있습니다.

성도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교회는 과부와 고아를 품어야 합니다.

부자 성도는 자신의 자본을 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변의 크리스챤기업을 봅니다.

뭐가 크리스챤 기업인가요? 이름이 성경적이라서요?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한 달이나 한 주간에 예배해서요? 그런데

예배한다고 일찍 나오라 하고선 예배시간 만큼 수당도 주질 않습니다. 노동착취입니다.

영화 ‘마트’가 어디를 모티브했나요? 회장이 장로인 모 그룹이었습니다.

 

크리스챤 기업주를 봅니다.

역시 장로라고 하지만 비자금, 세금포탈의 달인이라면,, 곤란합니다.

 

이런 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서민들은 분노하고 현재와 미래가 불안한 것입니다.

 

3) 돌아서라

잘못된 건축은 고쳐야 합니다.

돈이 성공이라는 가치,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성도들의 성공신화는 세상과는 사뭇 다른 잣대로 대야 합니다.

금번 서울대학교 후기졸업식에 연사로 등장한 인물은 소록도에서 한센인들과 평생을 함께한 의사인 김인권 명예원장이었

습니다.

그 주제가 시대에는 맞지 않지만 성도들에게는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좋은 직장만 찾지 마세요. 후회남지 않도록 마음이 이끄는 인생을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였습니다.

 

흔히 좋은 직장은 1류 로 여깁니다.

그 1류 라는 게 병원으로 하면 종합병원이고, 회사로 하면 재벌회사이고, 목회지로 하면 도시의 대형교회가 됩니다.

왜 좋은가요? 돈벌이가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돈의 노예로 전락하여 나는 잃어버리기에 딱 맞춤이기도 합니다.

 

청년들의 목적은 어디에 있나요? 생업의 목적은 어디에 있나요? 목회자인 나도 끊임없이 묻곤 합니다.

 

좋은 곳은, 높은 곳도 낮은 곳도 아닌, 주를 뵙고 나를 맞출 수 있는 곳입니다.

돈을 따라가면 망함으로 가기 쉽상이지만 진리 따라가면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먹는 것으로 유혹합니다.

들려오는 통계는 두렵습니다.

‘중산층 10만가구가 9년 새 실버파산’

‘베이비붐 세대 700만명 중 40%는 100만원 미만으로 연명예상’

‘60세 중산층 부부, 임종 때까지 집 빼고 4억 1593만원 필요’

그러면서 빈곤한 사람들을 취재하여 사진도 실었습니다.

그렇다면 집 없는 60세는 벌써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위기감을 받습니다.

 

이런 추측성 보도에 사람들은 “물들어 올 때 배 띄운다.” 면서 돈에 집착하고, 불의에도 용감해서 30살이 청년이 증권투자

가로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 하실까요?

돈을 위하여 잘못된 건축을 하는 시대와 인물을 흩으십니다.

미3:12)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

은 곳이 되리라

 

반면 인자와 진리를 따른 자들은 붙드십니다.

히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

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과연,, NEVER,,절대로,, 우리말에는 2개로 나왔지만 영어성경에는 5개가 나옵니다.

 

절대로 돈을 사랑하지 말고 절대로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절대로 너희를 버리지 아니

하고 절대로 너희를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리라

 

결론)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증거를 이루워 가는 삶입니다.

돈이든 자본이든 삯이든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세상의 윤활제입니다.

문제는 그 돈을 위하는 마음은 우상숭배이고 시대와 신앙을 천박하게 합니다.

성도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기독교적 민주주의는 물론 자본주의도 가져야 합니다.

주를 붙들고 돈을 지배하시길 바랍니다.

이조실록 보다 더 위대한 성경의 역사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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