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들과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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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번째 표적의 가나 혼인집은, 신랑신부는 물론 주님께도 여러 의미가 있는 현장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로 계시하신 계시의 현장이고, 제자들을 믿게 하신 믿음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요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 의도치 않음
실제 이 첫 표적은 주님이 의도치 않으셨습니다.
오직 모친의 주도와 권고로 갑작스레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2:3~5)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시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
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그러기에 기적은 확실한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 표적은 어머니의 믿음과 주님과 하인들의 순종이 컸습니다.
곧 마시는 포도주와 인파가 많은 혼인집에서의 공개적인 기적이었기에, 주를 받아들이는 믿음도 확실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기적은 항시 이렇습니다.
준비됨이 없기에 사전 예고라는 것이 없습니다.
티베랴바닷가에서의 오병이어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굶주린 군중을 보시고 현장에서 즉시 이루신 것입니다.
언제나 공개적이었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고침을 받을 때도, 소경된 자가 고침을 받을 때도 제한된 회당이 아니라 명절거리였습니다.
이러한 기적의 목적은, 돈벌이나 기쁨추구나 자신의 과시가 아닌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렇듯 자신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또 하나님을 믿는 일로 교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기적은 표적입니다.
그런데 이를 보는 현장의 사람들은 제각기 다릅니다.
산봉우리에서 들녘을 내려다보면서 동네를 보는 사람이 있고 자동차를 보는 사람이 있듯이,
이러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책잡으려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하인들처럼 어중간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혼인 잔치집의 하인들은 어떤가요? 무엇을 보았을까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내막을 가장 소상히 아는 사람들입니다.
요2:7~8)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하인들은 알더
라
그럼에도 제일 먼저 믿을 수 있던 하인들이 믿지 못했습니다.
기적의 내막을 알면서도 주님을 믿지 못했다면,
누구 탓일까요? 주님일까요? 제자들일까요? 신랑신부일까요? 하인들 자신 아닐까요?
제자들은 구경꾼이었음에도 믿을 수 있었는데, 하인들은 어찌 그랬을까요?
사람들의 시각에서 먼저 보겠습니다.
2) 하인들의 문제
“하인들에게는 영웅은 없다.” 헤겔이 한 말입니다.
하인의 눈에는 영웅보다 일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바보의 눈에는 바보만 보인다는 속담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자들과 같은 두 눈의 사람들이었지만 제자들이 주님을 보았던 반면, 하인들은 항아리와 물과 포도주만 보았을 뿐 주님은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적은 가까이에서 보았어도 표적은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걸을 때 차타고 갈 때 보다 많은 것을 봅니다.
이때 생각도 갖고 주변에서 소소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너무 빠르면 피곤해서 많은 것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고속열차와 완행열차와의 여행 차이일 것입니다.
현대인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인의 눈, 시각, 마음, 분주함은 구도자적인 안목과 심성이 아니라, 주관자적인 안목과 심성을 가져 믿음도 잃어버리고 있
습니다.
대단하지 않는 삶에도 아이들부터 마음과 정신이 홀리거나 흩어져 있습니다.
예배에서조차 주님께 집중하기 보단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니 다른 일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항시 무언가해야 하고, 들어야 하고, 말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초조불안증세가 나타나 안절부절합니다.
건강한 믿음에는 기도와 함께 침묵, 묵상,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믿음은 주와 가까이 하면 할수록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는 정기예배가 없고, 출석교인이 없고, 담임목사가 없는, 3무(無) 교회가 있습니다.
아주 작고 예쁜, 2.4평짜리 교회당인데 어느 올레 길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름하여 순례자교회입니다.
하루에 약 50명의 구경꾼이 있다지만, 그중 이곳을 지나다가 들려서 기도하고 혹은 묵상하다 주님을 만나 자살준비자가
살아나고 변질했던 신앙이 회개하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올레 길,, 이 비움의 여행에서 다시 회복하고 채워지던 중, 교회당에서 영혼의 치유 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 믿는 믿음에는 종이라는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종된 마음이 문제가 되기에 마음을 잡아야 합니다.
특히 명상은 영어로 메디테이션(meditaion)인데, 약인 메디슨(medicine)이라는 영어 단어와 어근이 같습니다.
명상이란 영혼 안에 좋은 약을 넣는 일인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겠습니다.
3) 그를 믿으니라
같은 현장인데 하인들은 믿질 못한 반면 제자들은 “그를 믿으니라.” 했습니다.
신기하게 하인들은 모두 믿지 못했고, 제자들은 모두 믿음이 생겼습니다.
언제나 이런 일은 주 계신 곳에서 발생합니다.
주님은 물론 제자들과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 두 패로 나뉘었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누가 선동한 일이 아님에도 이렇듯 구별되곤 합니다.
양과 염소와의 구별입니다.
성도는 “그를 믿으니라.”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덕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닌 저들은 “믿지 아니하니라.”입니다.
저들의 아비가 마귀인 까닭입니다.
요7: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이 차이가 결국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세상은 다른 여러 가지로 구별합니다.
중국은 옛부터 만리장성으로 구별했습니다.
성안사람이냐? 밖이냐?
북한은 평양이냐? 지방이냐? 자본주의는 자본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주를 믿느냐 아니 믿느냐?
주를 믿는 자는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고,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이며 사랑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써 우리 신앙의 시작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
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하려 함이라
이처럼 믿는 제자가 되었으면, 따르는 제자가 되고, 전하는 제자가 되고, 마침내 고난도 감내하는 제자가 됩니다.
믿음은 신령적요소이지만, 주님이 택하신 위대한 증표이고 능력이고 생명 됩니다.
그럼에도 탈선하고 변질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롯유다는, 처음에는 “그를 믿으니라." 였지만 훗날에는 배반자가 되었습니다.
“그” 가 바뀐 것입니다.
“그” 가 무엇인지? 왜 바뀐 것인지? 그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롯유다는 처음부터 마귀에게 속하였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주를 끝까지 따르지 못하였고 그 결과는 후회와 망함이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놀라게 한 큰 사건의 주인공들을 봅시다.
명문대출신인 그들은, 한명은 이과에서 수재였고 게임 산업으로 재벌이 됐습니다.
다른 한명은 문과에서 수재였고 검사가 되어 승승장구했습니다.
이 둘은 서로 필요에 의한 서로 봐주는 식의 결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다 감옥에 있습니다.
친구관계도 이제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름답거나 부러운 성공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허무하고 허탄한 것을 믿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흔히 성공을 믿고 성공을 추종합니다.
여기에는 주도 없고 나도 이웃도 없습니다.
이제는 개인이 아닌 팀의 경우입니다.
2009년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시에서는 기독교계인 카버넌트스쿨과 댈러스아카데미 간의 농구시합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100대 0, 기독교 학교가 대승을 이루웠습니다.
그런데 교장은 농구감독을 해임하고 달라스아카데미학교에 용서를 구하였고 지역신문에는 그 기록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
했습니다.
이유인즉 상대했던 달라스학교는 집중력이부족한 학생들의 학교였는데, 이들을 배려하지 못한 체 오직 승리에만 집착한,
명예롭기는커녕 오히려 반기독교적인 욕심의 결과로 보았던 것입니다.
결론) 하인들과 제자들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 성공에만 충성하면 하인들처럼 주를 놓쳐도,
제자들처럼 주를 가까이할 때는 주 안에서 성공도 이룹니다.
이 성공은 사회적 성공보다는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초석에서 사업, 관계, 가정, 미래가 세워질 때 안정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래위에 짓는 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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