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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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종점에서 기사들이 상말로 대화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들의 말만 듣고는 50~60대의 기사들로 보이지 않을 만큼 욕투성이었습니다.
저들은 욕이 습관된 것입니다.
사람이 잘 변화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습관과 환경을 바꾸면 가능합니다.
주님의 습관에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 덕에 제자들도 기도가 습관화된 듯합니다.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이런 좋은 습관은 일찍 익히는 게 상책입니다.
1) 기도
성도에게 기도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습관이 되지 않는 일은 신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몸에 좋은 약일수록 입에서 거부하듯이, 기도는 세상과 본인이 우선 거부합니다.
기도가 얼마나 힘든지, 주님이 기도하실 때에 돕는 자가 있었습니다.
눅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물론 지금의 주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둔 절대절명의 때였습니다만, 여하한 주님도 도움을 받아야하는 일이 기도였습니
다.
이 덕에 주님의 기도는 간절함이 최고에 이르렀습니다.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반면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슬픔을 핑계삼아 잤습니다.
마음은 원이었으나 육신이 연약했던 것입니다.
무려 이런 일이 서너 번 반복되었으니 알만하잖습니까?
흔히 쉬운 일은 “누워 떡먹기” 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떡먹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한다면 “기도”입니다.
어디처럼 절을 많이 해서도 아니고, 어디처럼 꼭 어디를 가서도 아닙니다.
불교에는 3천배가 있습니다.
하고나면 앓아눕는답니다.
어느 무당은 경기도 청주시에서 대구 팔공산까지 새벽 기도하러 갔습니다.
이 무당은 굿을 하는데 돼지잡고 떡 해서 상을 차린 후 하루내내 정성을 드렸습니다.
이 무당에게 재수 굿을 부탁한 이는 굿 값으로 고액을 냈습니다.
일종의 기도 값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기도는 이렇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려워 제자들의 기도모양을 이루곤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째는, 습관되지 않은 탓이고,
둘째는, 기도에 대한 믿음 부족입니다.
기도는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하는 신비적 힘을 동반합니다.
여기서 내가 기도했는데 저쪽에서 역사가 나타나는 일입니다.
태양을 멈추게도 하고, 비가 내리기도 하고, 적군이 헛것이 보이기도 하고, 신기한 일을 이루는 하나님의 힘의 작용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애굽에서 노예 살이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건져내셨습니다.
그 시작이 무엇인가요?
출2: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하갈은 광야에서 아들 이스마엘이 목말라죽는 것을 보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보니 물주머니가 곁에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도운 것입니다.
물론 이 기도에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또 감사함도 있어야 하며, 이기심은 없어야 하며, 타인을 위해서는 긍휼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뜻에 맞는 기도입니다.
옛 미국 남부에는 목화농장이 있었고 흑인노예들이 있었습니다.
농장주들은 백인이었습니다.
이 두 둘의 기도는, 처지가 달랐던 만큼 달랐을 것입니다.
백인농장주들은 목화가 풍년 되고, 노예들이 도망치지 않기를 바랐을 반면,
흑인노예들은 죽기를 구했고, 도망치기를 구했고, 후손들이 자유롭길 바랐을 것입니다.
누구네 기도가 하나님 뜻에 맞을까요? 역사는 어떻게 증명하고 있나요?
이 노예들의 문제들을 놓고 남과 북이 전쟁을 했습니다.
남과 북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남군은 “하나님은 우리 편이라” 했습니다.
북군은 “ 우리는 하나님 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남군으로 하여금 북군이 몰렸을 때 링컨대통령은 교회에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승리는 역전하여 북군에게 돌아갔습니다.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적군과 싸울 때는 우리 편이십니다.
우리끼리 싸울 때는 진리에 속하여야 하며, 내 문제로 기도할 때는 아버지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2) 미스바기도
사무엘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들은 옷이 아닌 마음을 찢으며 기도했고 하나님의 뜻이 돌이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일정하시기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도 그 백성들에게 기도를,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호6:1~2)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
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 살리라
지금 우리는 미스바기도가 필요합니다.
남북관계는 위중하고, 경제는 휘청거리고, 청년들은 백수이고, 온갖 퇴페는 난리이고, 교회교육은 못하도록 되어가고,
이 모든 위기가 어디서 왔나요? 정치를 잘못하고, 교육이 잘못되고, 교회가 잠자서일 수 있겠지만 내가 영적으로 쿨쿨 자
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회개하고 고치면 나라가 살 줄 믿습니다.
선지자요나가 관광객요나가 되어 다시스로 갈 때 폭풍우가 왔습니다.
요나는 배 밑창에 잠잤는데 문제는 모두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장이 그에게 뭐라 했나요?
욘1:6) ~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요나에게 아주 창피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대도 우리에게 이런 요청을 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지난 조간칼럼에는 “신앙인답게 사는 게 어려운가” 의 글이 실렸습니다.
그 시작은 “선데이 크리스챤이 먼데이 크리스챤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는 요지였습니다.
물론 기독교만이 아닌 전체 신앙인을 두고 한 말이지만, 내용은 크리스챤이었습니다.
난 창피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시작은 기도부터입니다.
착각마십시오. 기도하는 마음이나 자세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사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방송사의 기도 성회에 참석했습니다.
평일 오전인데 공개홀이 가득 찼습니다.
안수 기도하는데 성도들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기도제목표를 받아보니 아픈 자를 위해서, 결혼 못한 자녀와 취직, 그리고 입시, 가족구원, 집문제였습니다.
너무 공감되어 울면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미스바기도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을 모은 기도요, 옷이 아닌 마음을 찢는 기도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설득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설득 당하는 기도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이런 미스바로 초대합니다.
아니 주님이 습관적으로 가신 기도의 동산으로 초대합니다.
3) 거룩한 행동과 행위
기도는 느낌이나 상상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 분께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세이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시간들이어야 합니다.
“고난을 그치게 하옵소서” 의 간구만이 아닌, 고난 속에 있는 주의 뜻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이럴 때 “그럼에
도 불구하고” 의 성숙한 기도가 나옵니다.
여하한의 기도, 연약하고 죄 많은 내가, 가장 주 닮은 거룩한 행동이고 행위입니다.
결론) 기도는 어른만이 아닌 청년들과 아이들도 훈련되고 습관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일이기에 언제나 우선이 되어야 됩니다.
마귀는 언제나 기도 못하게 합니다.
이를 이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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