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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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을 건넌 탐험가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탐험가는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 신발 속에 들어온 모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작은 듯해도 이처럼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기초가 되고 영원에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시작 부분에서 사도신경을 매번 “ 뜻을 생각하면서 고백하자” 하는데,
이유는 휩쓸리는 고백이 아닌 분명한 나의 믿음의 고백으로 하고자 함입니다.
1) 베드로의 고백
주님은 자신을 향한 뭇사람들의 평가를 물으셨습니다.“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람들은 그저 훌륭한 선지자중의 한 분으로 여겼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인류의 선현 중 한분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늬 사람들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마16:16) ~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주님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었는데,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곧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이고,
선지자들이 예언하시고 조상들이 기다렸던 구원자이십니다. 라는 의미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역시,
태초에 기원이신 분이시고, 보이는 하나님이시고, 여전한 하나님 이십니다 는 고백이었습니다.
이 고백이 맞았기에 주님은 기뻐하셨고 베드로에게 반석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으며, 이 믿음을 기초로 교회를 세우시겠다
며 하늘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여기에 기원합니다.
다만 베드로에 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기에, 이 고백과 죄사함의 고백을 더 하고, 교회를 세우리라하셨던
말씀이 이룩되었기에 교회에 대한 고백과, 성령이 오셨기에 영생에 대한 고백을 더하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의 고백이 기본 신앙고백이라면 우리들의 신앙고백은 역사적으로나 사실적으로나 구원적으로나 더 진보된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중요합니다.
그를, 그의 신앙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올림픽에서 국기 따라 반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고 손기정선수는 월계수로써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고, 조선일보는 그 사진에서 일
장기를 지우고 인쇄했다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강점기였으나 대한국민이기에 일본과 일장기를 들어내기 싫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처럼 신앙고백을 잘해서 “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칭찬 들었습니다.
좋은 신앙고백은 복 있는 일입니다.
구원 받고 영생에 참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아버지의 선물
베드로가 믿음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음은 그의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베드로뿐만이 아닌 나에게도, 저에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보십시오.
베드로는 잠시 후 주의 십자가 죽음을 이해 못하고 만류했다가, 칭찬받았던 그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의 그에게서 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은 믿었는데 나중에는 믿어지질 않고, 어렸을 때는 잘 믿었다면서 커서는 사탄의 종자가 되어 부정하고 부인하는 경
우, 이 일이 무엇인가요?
마음으로 믿다가 머리로 믿고자 해서 그런 경우입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계시의 책입니다.
방대하고 복잡합니다.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경에서 한 구절이나 몇 구절이라도 바르게 믿으면 구원에 하자가 없습니다.
구원은 지식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기에, 그래서 3년을 따랐던 가롯인 유다는 불신했어도 십자가의 한 강도는 믿음을 고
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무턱대고 믿을 것이 아니라 성경적 지식을 통해서 점차로 깊은 지식으로 다가갈 수 있는데, 곧 믿음이 진보인 것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은 진보해야 합니다.
눈으로 하고 입으로 하였어도, 이제 진보했다면 눈물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만 하였어도 어느덧 실제 순간순간에서 고백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의 첫 구절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이 한 구절만 믿더라도 세상 온갖 두려움은
사라지고 믿음의 담대함이 오곤 합니다.
마지막 구절은 어떤가요? “죄를 사하여 주신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에서 승리의 환희를 만끽할 수 있습니
다.
자기 최면하곤 다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감사감격이 넘칠 뿐입니다.
3) 신앙고백의 검증
세계 여러 국가의 공안부처는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합니다.
심각한 사건의 경우 거짓말탐지기로 가해자피해자의 말의 진위를 가립니다.
과학 수사기법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을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식인가? 믿음인가? 사람의 생각인가? 하나님의 선물인가?
만약 지식이고 내게서 난 것이라면 아무리 장황하고 수려해도 “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는 책망을 받고, 믿음이고 하나
님의 선물이라면 “ 네가 복이 있도다”하여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이를 반석믿음이라 합니다.
이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주님은 이 믿음위에 언제나 교회를 짓습니다.
사람은 교회당을 짓지만 주님은 자신이 머리가 되시는, 만물가운데서 만물의 충만을 이루시는 자신의 몸인 교회를 짓습니다.
나를 향한 교회도 되고, 가정을 위한 교회도 되고, 공동체를 위한 교회도 되고, 지역과 세계와
다음 세대를 위한 교회도 짓습니다.
주의 다스림이 나타나도록,
천주교는 이 믿음을, 이 반석을,, 베드로로 해석해서 베드로를 제 1대 교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가
아닌 그 믿음입니다.
최근의 핫한 사회적 뉴스가 있습니다.
한강상류에서 자주 동물사체가 떠오른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했더니, 변질된 한 종교인이 자신의 종단이 잘되길 기원하며
천제께 바친 제물이랍니다.
돼지, 소 무려 98마리, 싯가 2억원치를,, 믿음이 지식을 따르지 못하면 이토록 방자하고 저속하게 됩니다.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가는 곡조가 있는 신앙고백입니다.
옛 사람인 경우 자신들의 군가나 민요에다 가사를 붙였습니다.
미국의 대부흥기에는 작사작곡이 다 되었습니다.
신앙고백이 살 때 시대도 살아났습니다.
이 신앙 고백은 믿음이 튼실할 때였습니다.
믿음은 자꾸 들어야 생기고 들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
디모데의 좋은 믿음은 어머니와 그 외조모로부터 왔습니다.
마가는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왔고 훗날 바나바와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체득했습니다.
현대는 검색은 잘해도 소통을 못하고 접속은 흔해도 결핍이 많습니다.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더 닮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런 일입니다.
어렸을 때 성경구절을 암송하던 시대와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 시대와는 다를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캄보디아 선교사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의 작은 책을 받아 보았는데, 어렸을 때 교회 밑에서 살았기에 주일학교를 다녔답니다.
그러나 이사하면서 다 잊어버렸답니다.
성장한 후 결혼하는데, 예수 믿는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급하게 학습 받고 또 세례 받았답니다.
그리고 직장 다니고 이민가고, 거기서 망한 탓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답니다.
그 감격과 확신으로 캄보디아선교사가 되고 나중에 그 어릴 적 그 교회를 찾아갔답니다.
40년 정도 만에, 고장도 교회도 많이 들었지만 옛 종치던 분을 수소문하여 만나 같이 얼싸안았답니다.
아주 오래되었기에, 그때의 믿음은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러나 결정적일 때 주가 붙드심으로 신부를 얻는 일과 삶의 재기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작용입니다.
결론) 열매든 알이든 죽은 것에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 있는 것은 모래 속에서도 부화되고, 500년이 지난 후에도 싹을 피웁니다.
여러분은 주에 대한 믿음이 어떤가요? 하나님이 주신 진짜이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보이는 것은 좀 부족해도 구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은 지식으로 된 청산유수의 달변 보다 비록 눌변일지라도 믿음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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