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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감사, 감사(추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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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10-23 15:52 조회 80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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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기르는 개 쥴리는 올해가 15년째입니다.

자기 좋으면 꼬리치고 아주 좋으면 뱅글뱅글 돌고, 누가 울면 곁에서 끙끙거리고, 누가 누구를 때린다 치면 때리는 사람을

 향해서 짖기는 해도, 한 번도 감사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짐승과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또 뭇사람들과 성도들의 차이는 있을까요?

 

1) 감사

감사는 사람의 기본 품성입니다.

이 좋은 품성을 지녔으면 주변에 늘 감사를 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도, 군주가 백성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현대는 이 감사가 실

종되었기에 원망과 불평이 늘었습니다.

그러니 따뜻함이 없어지고 갈수록 사나운 세상이 됩니다.

감사의 교육과 훈련이 되지 않은 탓입니다.

마귀는 떡의 문제를 앞세워 심성과 세상을 사막화 시켰습니다.

노사 간의 갈등은 이 증세입니다.

 

금번 구미에서 폭발한 화학공장의 주인은 제 절친입니다.

그 공장을 인수했지만 손해보고 나왔습니다.

이유는 노조와 타협할 수 없었답니다.

이런 곳에는 감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백인여성이 병상에서 치료하는데 흑인 노예여성은 환한 얼굴빛으로 청소하곤 했습니다.

그녀가 이상했기에 물었습니다.

흑인여성은 “ 주님이 날 구원하셨으니 감사하다” 했습니다.

이 백인여성은 크게 깨달아 부끄러움을 갖고 지은 곡이 “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입니다.

 

감사는 조건에서 찾으면 언제나 실패해도 주와의 관계에서 찾으면 꼭 성공한다는 교훈이 됩니다. 특별히 성도는 언제 어디

서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2) 감사의 대상

밥상에 앉아서 식사 감사하는데 그 대상이 다릅니다.

군대에서는 국가에 감사하고 혹은 누구는 농부에게 감사하고, 더러는 막연히 감사하곤 합니다. 그러나 감사의 최고는 하나

님이심을 의심하면 안 됩니다.

본문이 그 대상을 확실히 말씀합니다.

시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36:2)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시136:3)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시136:4)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옛적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은 백성만이 아닙니다.

모든 신에 뛰어 나신 하나님이시고, 모든 주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시며,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모든 육체

에게 식물을 주신 하나님이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성도는 물론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함이란 멋진 일입니다.

종종 축하순서를 맡으면 살펴보는 일이 있습니다.

과연 내가 축하할 일인가? 과연 축하 받을 대상인가? 어떤 말로 축하할까?

 

감사도 그렇습니다.

누가 감사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믿는 성도, 주안의 백성된 우리들입니다.

누구에게 감사하나요? 왜 감사하나요?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다스려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어떻게 감사하나요? 극진히 예물을 드리고 극진히 찬양을 합니다. 이 모습이 예배입니다.

시96:4)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하나님께 감사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며 내게도 영광스럽고 거룩한 일입니다.

 

3) 추수감사

우리는 농부가 아닌데 추수감사를 해야 합니다.

씨 뿌리고 거둔 감격과 감사가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처한 상황을 보십시오.

남북은 위중한 관계이고 정치는 혼란하고 경제는 흔들거리고 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주는 신실하셔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이 나라를 지금껏 은혜주시고 계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악한 중에도 존재했던 이유는 정치사회국방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그곳에 의인이 있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명하기로 작정하셨을 때 천사들이 와 의인들을 먼저 건져냈습니다.

이런 상황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의인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산 것입니다.

그러나 산 세상 사람들은 물론 놀랍게도 이 의인들도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감사에 무지했거나 당연시했던 것입니다.

 

감사는 느낌이 아닙니다. “감사하라” 명령이고 행동입니다.

엡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추수감사절을 교회력으로 정한 이유가 이런데 있습니다.

 

신기하게 인류역사를 보면 배급받아 먹던 시절과 민족에게는 감사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땀 흘려 먹을 때는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다.

은혜 안에서의 수고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온몸으로 선교했습니다.

그 고생스런 생활을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오히려 감사가 넘쳤습니다.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하며

 

그러면서 우리에게 신앙 팁을 주었습니다.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해하지 마십시오. 기도하고 간구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시지만 기적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이시지만 항상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환경이 바뀌고 문이 열리길 바란다면 나를 먼저 바꾸는 게 빠릅니다.

성도의 고난은 이런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월 속에, 이 환경 속에서 “감사”를 놓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평강이 옵니다.

그러므로 인내할 수 있고 소망가질 수 있습니다.

 

현대의 추수감사절은 이 감사를 마음에 생각에 되새기는 주일이어야 합니다.

즉 감사를 훈련하고 점검하는 주일입니다.

당연한 감사에도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노예입니다.

감사할 수 있기에 감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상식과 교양을 갖춘 이들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또한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가 있습니다.

누구인가요? 성숙한 성도입니다.

 

어느 부인이 가정의 행복을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행복하길 원한다면 감사하는 법을 먼저 배우라 는 응답이 왔답니다.

 

결론)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아시지요?

1620년 102명의 영국성도들이 카톨릭의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신앙이주를 했습니다.

그들은 60여일의 항해 끝에 왔지만 집이나 학교가 아닌 교회당을 먼저 세웠고, 혹독한 추위로 겨우 51명이 인디안의 도움

으로 살아남은 후, 그 다음해 농사지은 첫수확으로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 중심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있었고 예배였고 감

사였습니다.

 

감사가 없다면 헛된 경배이고 그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기독신앙이 아닙니다.

본문의 첫 구절과 끝 구절을 묵상합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1)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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