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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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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10-30 13:33 조회 8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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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는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자연재해나 전쟁도 아닌 경제위기나 사회폭동 아닌 대통령통치에 이상이 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뇌수술을 해야 할 중대사입니다.

 

비정상화에서의 정상을 주창했던 원칙이미지의 대통령이, 국민의 행복만을 생각한다는 대통령이 그만 실정으로, 알다시피

비선의 국정농단으로, 비정상화로 비원칙의 대통령이 되었고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습니다.

레임덕은 당연하고 남은 임기동안 과연 국정운영을 할까 불안합니다.

 

1) 첫째로 권합니다.

이런 일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사도바울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로마의 네로황제가 폭정을 일삼던 때입니다.

그 폭정이 갓 태어난 기독교에게 위기를 주었습니다.

 

영적 눈으로 분별하며 교회들에게 교훈했던 사도바울은 그래서, 첫째로 권하기를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와 기도와 도고

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우리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두통을 겪어보셨나요? 온몸이 아픕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뇌가 문제가 있다면 몸이 되는 국민이 고통을 겪기 마련입니다.

 

필리핀의 경우, 엉뚱한 대통령이 취임한 후 마약과의 전쟁을 한다며 인권이 말살되고, 세계가 불안 불안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 백성은 고통 받고 세계로부터 제재와 단절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들의 행복감도 나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세계질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금번 대통령선거에도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대통령이냐 따라 남북관계 좌우와 흥망이 결정되곤 합니다.

 

오래전 중국의 목사님께 주문한 것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 훈련하는 교회가 되고, 기도하는 모본을 보이라 했습니다.

또 그들의 공안, 소방서, 등을 찾아 위문하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국가의 지도자이고 봉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똑같습니다.

국가와 민족은 달라도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아냐 모르냐는 상관없습니다.

백성으로써의 세금 내는 의무처럼, 성도들은 그 나라의 그 시대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함이 첫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입니다.

딤전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

그러므로 사도바울 시대의 성도들도 네로황제는 물론 집정관들과 원로원의 원로들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2) 국민의 혁명

국가의 정치는 각기 다릅니다.

군주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 정치유형도 여럿입니다.

그러나 국민이 주인인 국가는 국민이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4.19와 5.18광주민주화 항쟁이 대표적입니다.

 

국민이 변화를 이끄는 데는 민원, 선거 등의 소극적인 방법이 있고, 시위나 투쟁 같은 적극적 방법도 있습니다.

 

요 앞 삼거리가 아침 출근시간이면 차량이 막힙니다.

밤샘 주차 때문에 우측 차선이 막히기 때문인데, 전화 민원으로 즉각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정책이나 예산은 투표로 지도자를 바꾸어야 합니다.

혹은 시위나 투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실제 민주국가이기에 가능하지 전체주의인 중국 같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피곤하고 책임이 동반된 성숙한 국민주위입니다.

 

우리의 국민성은 지혜롭고 근면하고 고상합니다.

또한 저항성이 강합니다.

이는 외국사람들이 150년 전쯤, 동방의 나라, 운둔의 나라, 고요의 나라, 우리나라에 와서 보고 느낀 소감입니다.

 

녹두장군 전봉준 같은 동학농민운동은 대단한 저항운동입니다.

부패한 정권에 농민들이 호미, 낫 들고 대항했습니다.

행주산성의 전투도 마찬가지인데, 임진왜란에 아낙네들까지 앞장섰습니다.

대종교는 단군을 숭상해도 단군교와는 좀 다릅니다.

단군교는 우리네 토착신앙인 반면 대종교는 민족심을 고취하기 위한 구실로서 단군의 기치 아래로 모였기 때문입니다.

그 민족심으로 그들은 백두산 아래인 만주지역에서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이런 심사가 있어서, 우리보다 못한 국가와 민족을 깔보기도 하지만 크고 잘난 국가나 민족에게는

오히려 굽실대기 보다는 대드는 성향이 있습니다.

미국사람을 뭐라 하나요? 미국 놈, 혹은 양코배기 합니다.

중국을 뭐라 하나요? 중국 놈, 혹은 짱쾌 합니다.

일본을 뭐라 하나요? 일본 놈, 혹은 쪽바리 라고 비하합니다.

세계 1,2,3위의 국가를 향한 우리의 뱃심이고 심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심사로 배고픈 것은 참아도, 남 잘되는 것은 배 아파하는 어리석음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성향으로 자본주의하면서 부자를 싫어하고, 민주주의하면서 선거에 굴복하지 않는 폐단도 유감되게 작용하고 있습니

다.

 

지금 대통령이 실정을 사과한 후, 하야 탄핵이란 말이 대학생으로부터 돌고 있습니다.

뇌 수술하여 뇌를 바꾸자는 말입니다.

정치권에서는 특검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아셔야 할 것은 이 문제가 국가적 수치입니다.

노무현대통령 탄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치는 본인이 가려야 하고 국가의 수치는 국민이 가려야 합니다.

 

더욱이 남과 북이 위중한 관계이기에,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처럼, 감정보다 이성으로 이 국면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3) 진정한 통치자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진정한 통치자이심을 믿습니다.

산만 세우신 것이 아니라, 교회만 세우신 것이 아니라, 국가도 세우시고, 주권자도도 세우셨음을 믿습니다.

목동인 다윗을 택정하셔서 기필코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그를 통해서 왕성한 나라를 세우게 하심을 압니다.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시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이 믿음에는, 기도가 나중이 아닙니다.

범사에 첫째이고, 또한 기도내용도 지도자를 위한 기도가 첫째여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셨는데, 바로 이 모양입니다.

때론 선거하고 때론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고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보다 기도가 첫째여야 합니다.

 

개인적으론 우리 대통령이 기도하는 대통령이길 바랐습니다.

백악관집무실에서 기도했던 링컨이 부러웠습 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교회를 향해 “기도해 주세요.”했던 그 믿음이 우리 지도자들에게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불레셋에서 비굴하게 망명하던 시절, 불레셋과 연합으로 조국 이스라엘을 침공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

습니다.

조국을 적국과 침공하는 일, 조국을 배반하는 일이고 그렇다고 불레셋과 침공을 안 하자니 자신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출정 길에 되돌아 사는 고장으로 왔으나, 그사이 남방 사람들이 와서 집들은 불태우고 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다윗과 함께 있던 남자들은 이 모양을 보고 흥분하여 다윗을 돌로 치려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어땠을까요? 모두가 본받아야할 믿음의 모습이 나옵니다.

“삼상30:6) ~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은 하나님을 평소대로 찾았고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평소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다윗을 종전처럼 신임하였고, 그의 결정을 따라 적들을 추격하여 처자들을 되찾아온 것입니다.

위기가 변화된 것입니다.

 

결론) 국가가 위기를 맞이하고 대통령이 실정을 했다는 것은 모두의 불행입니다.

그러나 성도된 내가 첫째로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 국민들은 국가의 주인이기에 돌을 던질 수 있고 선거를 할 수도 있고, 국민과 정의의 이름으로 정치판을 갈아엎을 수

도 있습니다만, 성도들은 그 전에 다시 한 번 “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우리가 모든 경

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을 새겨야 하고 이런 때일수록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첫째로 권하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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