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네 하나님 여호와께 > 설교말씀

네 하나님 여호와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11-13 15:22 조회 742회 댓글 0건

본문

좋은 것이 좋고, 큰 것이 좋고, 많은 것이 좋은 것만은 결코 아닙니다.

 

번영과 안정을 위했던 솔로몬은 외국신부들을 정략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종교 관용책이 결국 우상숭배가 되었습니다.

외국신부들로부터 그들의 신들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또 번영과 안정을 꾀했던 자구책들은 과도한 세금과 노역동원을 불러 백성들의 원망을 샀습니다.

이 징계로 번성했던 솔로몬왕국은 아들 때에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윗쪽 10지파를 솔로몬의 충성스런 신하였던 여로보암에게 맡기셨는데 그도 나중에는 잘하지 못했습니다.

 

1) 교훈

구약을 보면, 특별히 다윗과 솔로몬을 지나 열왕기에서 여러 왕들의 일대기를 보면 몇가지 큰 주제가 나옵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옵니다.

모든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이, 왕들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는 번성하고 안정되었지만,

하나님을 이탈하면 망했습니다.

이 일은 여전한 줄 믿습니다.

인생에게 순리가 있고 역리가 있는데, 하나님과 화목은 순리이고 불화목은 역리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달이나 기타행성이 태양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나요?

모든 순리를 거스려야 할 테니,

 

* 왕들의 특징을 보면 작을 때는 겸손했어도 커서는 대체로 방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은 언제나 주의 율례를 따르는 일로 평가됩니다.

열심도 좋고, 좋은 의미로써도 이탈도 좋지만 언제나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 분명한 왕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보시고, 솔로몬의 불신앙과 실정에도 솔로몬 때에는 그 왕국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훗날에 이 유다지파에서 주 오심이 있도록 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꼭 미리 선지자들을 보내어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들로부터 듣고 고치면 사는 것이요, 듣고도 귓등으로 흘리면 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은 실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고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본다면 예쁜 짓한 것이었습니다.

 

부하장수의 부인과 동침했었을 때, 나단선지자를 보내어 꾸짖었습니다.

그는 곧 회개했습니다.

그 때의 시가 시편 51편인데, 함께 낭독합시다.

 

2) 하나님사자의 등장

여로보암 왕이 북이스라엘을 잘 다스렸지만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왕상12:26)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정치에 자신이 없었는지, 혼자 생각에 백성들이 옛 나라로 돌아갈 것으로 착각하여 선심정책들을 내놨습니다.

* 예루살렘이 아닌 이곳에서 제사하라.

그런데 그게 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경배였기 때문입니다.(왕상12:28~30)

 

* 보통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31)

* 절기를 마음대로 바꾸었습니다.(32)

 

이것은 개혁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였습니다.

왕상12:33)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 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우리 신앙에 있어서 삼가 할 것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다수에 의해서, 혹은 기분에 따라서,, 트렌드에 맞추어서,,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곧 성경이고, 성령이고, 지금까지의 거룩한 전통입니다.

교회가 조심할 것은 낯선 선례입니다.

사람들의 관계 보다 하나님의 관계에서, 표지석을 함부로 옮기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환호할 줄 몰라도 하나님과는 무관할 수 있고 오히려 진노가 될 수 있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기독교를 빙자한 당이 나옵니다.

신학적으로 충분한 연구 후에 전체기독교의 합의를 따라야하는데,

몇몇 교회정치꾼들이 앞서서 전체교회를 들먹이며 들러리 시키는 일은 잘못입니다.

 

여로보함 왕이 백성들을 위한 분향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왔습니다.

왕이 망할 것을 경고하며 두 가지의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제단이 반으로 갈라지고, 왕의 손이 말랐다가 다시 회복된 일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모양을 보고 어찌 하겠나요?

여로보함 왕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왕상13: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여기에 문제된 단어가 있습니다.

찾아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왕의 신앙을 증명하는 말입니다.

간단해도 아주 의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또한 내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왕은 그 고백을 못했습니다.

우리도 아니고 나도 아닌 ‘너의 하나님’이랍니다.

 

중요한 고백입니다.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가요?

이 교회는 누구의 교회인가요?

그런데 2인칭을 썼지만 그는 3인칭 신앙인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하나님이 택하시지도 않고 나라를 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변화했는데, 이를 변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떠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후대한다면서 뇌물로 매수까지 하려했습니다.

왕상13: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3) 정치적인

사람을 의식하면 이렇게 됩니다.

왕이고 보니 너무 정치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말년에 백성을 계수하다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질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보다 군대를 의지한 불신앙이었습니다.

 

이 여로보암 왕도 마찬가지로, 주권을 주신 하나님 보다 백성을 더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단 백성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남의 관계였습니다.

이 관계는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요? 여러분은 이 관계가 되면 안 됩니다.

비록 3자적 관계였다가도 발전해서 우리하나님, 더 발전해서 나의 하나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진보입니다.

 

우리는 나 편리한대로 하나님을 끌어옵니다.

성도의 생업장에 가면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는 말씀을 걸어놓고 있는데,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잠14: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이런 말씀이어야 합니다.

 

나 필요하면 기도합니다.

그러나 필요치 않으면 기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새벽기도회에 갑자기 나오면 겁이 나곤했습니다.

사람에게 힘든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정치적이지 않는 일과 꾸준한 기개 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정치적인 것 보다 거룩한 것, 변화무쌍한 것 보다는 일정하신 것, 즉 충성 등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바란다면 성품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좋은 선물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 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

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결론) 신앙은 보이는 대로 혹은 당장의 유익을 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마치 농사 같습니다.

좋은 씨를 부리고 가꾸는 일과 흡사합니다.

주 안에서만이 온전하고 영원합니다.

주 안에서 나의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께 경배하고 발전적 관계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