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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11-20 13:48 조회 75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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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니 불신이 큽니다.

이런 말에도 격조가 있어 높으신 분의 말은 말씀입니다.

말씀일지라도 죽은 말씀이 있고 산 말씀이 있습니다.

공자의 말씀은 좋아도 지금은 죽은 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언제나 그 말씀이 살아 있습니다.

 

1) 산 말씀

뭐든 살았다는 것은 운동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을 감찰하시느니라

 

1+1= 얼마인가요?

사물의 경우 2 이지만 생물인 경우 2가 더됩니다.

여자+남자 해보십시오.

1+1=2 라는, 이런 작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는 산 말씀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운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훗날에 그 말씀으로 세상과 인생을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자이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신비스러운 분이기기에 예수님도 기묘자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산 말씀에는 말씀자체가 능력이 있어 말씀을 이루어 갑니다.

어려운 듯해도 쉽습니다.

내가 이루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말씀은 산 사람이 그 말씀을 붙들고 이루어야하기에 어렵습니다.

 

성룡의 영화 ‘턱시도’가 생각납니다.

이 옷이 산 옷입니다.

옷이 사람에게 입혀지면 능한 사람이 되어 악당을 쳐부술 수 있는데 홍콩판 아이언 맨이 됩니다.

 

사도들이 그랬습니다.

우리들과 똑같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니, 그 말씀이 그들 속에 이루어져 그들은 말씀을 경험했고

마침내 증인된 것입니다.

 

변호사와 증인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변호사는 경험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오직 증인들로 하여금 들은 바를 논리와 법리로 사건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증인들은 다릅니다.

논리는 없어도 확실함이 있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증인들이었습니다.

그 사실적 믿음들과 그 경험들이 믿음의 요소가 되어 주님은 승천하셨어도 그 말씀이 성취되기를 확증했던 것입니다.

그 기록이 사도행전입니다.

더 나아가 편지로 증거한 것이 서신서인데 ‘주 안에서’ 라는 표현으로 저들의 믿음의 경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 같이 되었더라

성경을 보면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데 “같이 되었더라”입니다.

주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것도, 물위로 걸으심도, 죽은 자를 살리심도, 그냥된 것이 아니라

앞선 하나님말씀의 성취였고, 십자가위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것도, 그냥된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되신 것이라는 진술입니다.

성경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마침내 모든 말씀이 완성될 때도 올 것입니다.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수아는 모세후임으로서 민족의 구원자였습니다.

그 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 성읍을 접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포했습니다.

수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그 후 세월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그동안 이들은 국가를 세웠고 번성했습니다.

그리고 사는 게 분주하고 피곤해서,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은 낡고 쇠해졌다는 부정적 믿음으로 그 때에 무너진 성을 재건

하다가 말씀처럼 사고가 난 것입니다.

“왕상16:34)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그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아주 정확합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잘못인가요? 말씀을 전한 여호수아의 잘못인가요? 업신여긴 이들의 잘못인가요? 이런 일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체의 체질에 대한 기록을 제일 먼저 남긴 사람입니다.

이때의 의사들은 질병에 유일한 원인 따위는 없다고 가르쳤을 때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요? 질병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이 하나로부터 시작해서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해 병이 된 것입니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질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우리사회가 진통하고 있는 질병입니다.

신앙적 질병은 어떤가요? 경건의 능력보다 모양을 따르는 증세를 보이고 있는데

말씀의 불신을 방증합니다.

 

3) 신앙적 질병

현대는 지식의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은 없습니다.

논리로만 믿기 때문인데 논리는 설명이고 변호사적 믿음, 즉 머리로서 이해만 할뿐입니다.

논리가 믿음으로 작용한다지만 가슴까지 다다르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슴은 식고 머리는 똑똑해져 이 지식으로 남을 판단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자꾸 깨달음을 바라는데 이 깨달음은 행동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기도도 없고 말만 많아지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은 순종입니다.

뜨거운 신앙, 뜨거운 예배, 뜨거운 교회는 난방이 잘된 시설이 아니라, 가슴 뜨거운 순종의 신앙인 것입니다.

순종 속에서 “주의 말씀 같이 되었더라” 는 증인들이 많은 것입니다.

여기에 설교자의 잘못도 큽니다.

경험을 통한 가슴적 설교보다 머릿적 설교를 한 탓입니다.

 

본문 나중에 나오는 엘리야를 보시시오.

가뭄 때에 냇가로 나가 피신했습니다.

왜요? 어떻게 되는데요? 하며 궁금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했을 뿐입니다.,

상황 따라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따라 간 것입니다.

상황 따라 갔다면 가뭄 때였기에 그릿시냇가가 아닌 요단강가로 가야했습니다.

말씀 따라 그곳에서 숨었을 때 하나님이 까마귀로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경험, 말씀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또 이런 일이 반복되어 그는 담대한 신앙인으로 최고봉으로 올랐습니다.

그의 제자 엘리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을 경험하셨나요? 언제 말씀을 경험하셨나요? 언제 기도를 경험하셨나요?

우리는 신비주의는 아니지만 거룩한 신비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의 특징은 폐병환자출신들이 많았습니다.

폐병이 교회를 힘 있게 키운 것은 아니지만 페병으로 하나님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믿음으로 작용되어 그를 용사로 세우게 된 것입니다.

 

국민일보에 한 수능여학생의 성경이 소개되었습니다.

1년짜리 신앙인인데, 그녀의 성경은 교과서 같이 책칠과 밑줄로 빼곡한 메모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큐티 때문입니다.

 

성경보십니까? 기도합니까? 누구나 시간은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우선순위이냐가 관건입니다.

그녀도 처음에는 성경이 재미없었을 것입니다.

죽은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경험되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확증되니 그 말씀은 꿀송이가 되고 수능 준비 때에도 비타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과 성경의 증인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결론) 모든 소리와 말에는 파장이 있습니다.

좋은 말은 좋은 파장이 나오고 나쁜 말에는 나쁜 파장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말씀은 좋은 파장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이고 능력 자체입니다.

시119:104~105)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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