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로 드린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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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제사하는 여러 제사 중 요제가 있습니다.
그 해 첫 수확된 곡식 단을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흔들어 경배하는 제사인데,
첫 곡식 단인만큼 나중 수확되는 곡식의 대표성이 있습니다.
주님이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부활하심은 이렇듯 잠자는 모든 성도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좀 이상합니다.
제사장을 세우기 전에 “요제를 드려라”가 아닌 “요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요제물은 곡식인데 사람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요제는 영어로 (wave offering)이니 알만 합니다.
1) 흔듦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말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교수의 말입니다.
“애들은 아프면서 큰 다” 노인들의 말씀입니다.
위의 말에서 공통된 것은 통과과정에는 시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성인식을 TV에서 보았습니다.
아프리카답게 어느 부족의 남자들은 넝쿨을 발목에 감고 번지점프를 하고, 어느 부족은 맨손으로 맹수를 사냥하고,
어느 부족은 채찍으로 맞고, 어느 부족은 여성할레를 받았습니다.
용기와 인내를 시험받는 것입니다.
이때의 용기는 험한 세상에서 성인으로 살아가는데 절대적입니다.
고3년생이 금번 수능을 치렀습니다.
대학공부능력 평가입니다.
장교후보생들은 사병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받습니다.
모두가 다 달아 봄, 흔듦인데 고난의 과정입니다.
하나님도 이 일을 하십니다.
모든 이스라엘 지파가 아닌 레위지파에게만, 그 레위지파에서도 아론의 후손에게만,
그리고 그들에게서 제사장직을 수행할 아들들에게만, 제사장직을 임명하기 전에 “요제로 드리라”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영광된 직분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백성을 대신하고 대표하여 제사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피곤한 직분입니다.
끊임없는 죄인들로 인하여 쉴 수 없었기에 앉는 의자가 없습니다.
언젠가 목사 안수식에 갔더니, 집례하는 회장이 예비목사들을 다 일으켜 세워놓고 예배와 식을 마쳤습니다.
이유는 평생서서 예배해야할 목사들이기에,, 상징적이었습니다.
요제는 “정결케 하여”제사장을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성별방식입니다.
이 흔듦으로, 백성은 물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 흔듦은 가벼워서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값싼 것이라서 흔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귀해서 그 값과 용도에 쓰시고자, 구별하여 정결하고자 흔드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이 흔듦이 절대 있습니다.
성도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2) 흔들리는 상황
주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주님은 주무셨고 이때 풍랑이 왔습니다.
주님이 가자하셨고 주님도 함께 계셨습니다만
풍랑은 왔고 배가 깨어지게 되었고 주님은 주무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 어느 날 풍랑이 옵니다.
이상한 게 아니고 주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만도 아닙니다.
요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때 주님은 주무셨습니다.
이상하지 않던가요? 더욱이 배가 갈아 앉기 직전의 난리 통인데 주님은 주무셨다?
이런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주님은 모든 상황을 다 아셨겠지만 제자들이 깨우도록 외면하신 것은 아닐까요?
잠시 후 제자들이 깨우므로 일어나신 주님은 제자들을 책망합니다.
마8:26)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이는 제자들을 믿음을 위한 요제였던 것입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교사요나가 관광객이 되어 다시스로 도망갈 때 그에게 심한 흔들림이 왔습니다.
조용했던 바다는 흉용했고 배는 위태로워 짐을 다 버렸습니다.
이 폭풍우가 치는 바다,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흔드신 손길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삶의 흔듦에는 두부류가 나옵니다.
무너지는 자가 나오고 일어서는 자가 나옵니다.
주님을 인생의 멘토나 위로자 혹은 친구로 여기는 자들이 많습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의 좋은 친구요 멘토입니다.
주의 흔듦을 경험하지 못한 지식의 소유자들인 경우입니다.
주님에 대한 반쪽신앙인 셈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길이고 부활이고 영생입니다.
주님은 고난에서 움치러드는 신앙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담대 하는 신앙으로 키우시길 원하십니다.
핍박자 사울은 말 타고 가다 떨어진 후 주를 알게 되었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숱한 고생과 받은 핍박은 담대함을 발휘하게 했습니다.
죤 밀턴은 실명이 되어 캄캄한 처지가 되었지만 영혼의 눈이 밝아져 실낙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썼습니다.
진짜와 가짜는 흔듦을 통해서 판명됩니다.
키질을 아시나요? 흔들수록 알곡은 안으로 모이고 쭉정이는 밖으로 나갑니다.
알곡에게는 불행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철은 불속에서 판명 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떨까요?
흔들림이 환경과 사람 관계에서 오는 외부적인 것 같아도 실제는 위에서부터 온 것입니다.
요셉이 이를 믿었기에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 역시 그랬기에,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데, 어느 날 훅하니 문제들이 들어오고 불행이 왔다면 요제가 된 것입니다.
이 흔듦을 통해 죄는 벗겨지고 거룩함이 입혀지며 교만은 사라지고 온유와 겸손으로 새로워집니다.
흔듦이 있을 때는 미련한 제자들처럼 주님이 알아서 일어나시겠지 하거나, 이일 저일 한 후
주님을 나중에 깨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 있는 제자 되어 먼저 깨워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깨우는 믿음을 요구하시며 완전한 믿음의 순종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요제를 딛고 마침내 일어나야 합니다.
시작의 주님이 마침의 주님이 되고 흔듦의 주님은 풀림의 주님도 되셔서 수료증을 수여하십니다.
3) 흔들릴수록
성경을 보십시오.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건널 수 없던 강 앞에서 기죽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약봅강가에서 어땠나요? 모세가 홍해 앞에서 어땠나요? 여호수아가 요단강 앞에서 어땠나요?
그리고 주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죽음 앞에서 체념하시지 않고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흐르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앞에 있는 십자가의 멸시와 수치를 참으신 것입니다.
그 결과 지극히 높아지셔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사도신경의 고백 아닙니까? “~ 저리로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으십시오. 위기나 문제 속에서 주님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뵙습니다.
흔들림을 멈추게 하시고, 죽음에서 풀어 다니게 하시도록 흉악한 문제도 풀어내십니다.
“요제로 드리라” 하심은 괜한 하나님의 괴롭힘이 아닙니다.
감당할 능력을 키우시는 정결방식입니다.
주께로 인도해 내시는 주의 지팡이고 막대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이해해야 하며 신뢰해야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지고 세움을 받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고난은 저주나 재앙이 아닌 하나님이 받으시는 요제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을 보십시오.
시73:28)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피난처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일이 공간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관계적인 의미입니다.
1957년도에 노벨상을 받은 두 사람의 알베르트가 있었습니다.
평화상을 받은 알베르트 쉬바이쳐이고, 문학상을 받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트 까뮈 입니다.
상금 10만불로 쉬바이쳐는 아프리카에 ‘가봉 랑바레네 병원’을 세웠고, 까뮈는 파리근교에 별장과 신형자동차를 샀습니다.
어느 날 까뮈는 그 자동차를 타고 그 별장을 가다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별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지금은 모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선교사인 쉬바이쳐는 리빙스톤과 함께 아프리카의 별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각기 다르게 나타난 경우입니다.
이 차이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경험했느냐 못했느냐의 차이 아닌가요?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실제 삶속에 하나님의 경험은 이토록 삶의 자태가 다릅니다.
별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밤에는 보입니다.
그 찬란한 별빛은 도시의 밤하늘 보다 시골의 밤하늘에서 더욱 실감합니다.
결론) 이처럼 인생의 어둔 길을 걸을 때 두려워 마십시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하나님과 그 나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픕니까? 흔들립니까? 괴롭습니까? 자아는 부서지고 하나님의 신성으로 충만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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