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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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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1-29 14:16 조회 6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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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을 보면 다윗을 비롯한 믿음의 사람들이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의지함이,, 곤고할 때의 기도였고 형통할 때의 감사함과 찬양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어떨까요?

그에겐 곤고함 보다 형통함이 많았습니다.

그쯤 되면 기도는 종교적 형식이고 향락에 취했을 법한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위대한 이유입니다.

 

1) 솔로몬의 기도

솔로몬의 기도는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대상은 같은 하나님인데 그 모습과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솔로몬은 왕으로서 안정되자 하나님께 먼저 드렸습니다.

대하1:6)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일천 번의 제사가 아니라 일천희생물을 드렸다는 뜻입니다.

물론 부자 왕이었기에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편을 다 해서 먼저 드렸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밤에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대하1:7) 이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기도의 순서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신령한 일이 앞서야 하는데 예배요, 헌신이요, 예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하는 일은 나중입니다.

 

이 솔로몬은 잠시 후 아버지 다윗왕의 유지를 받들어 크고 화려한 성전을 7년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하나님께 드리는 낙성식을 하면서 기도하는데 오늘의 내용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또 찾아 주셨습니다.

대하7:1~2)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 하나님의 찾아주심으로 백성들과 함께 또 큰제사를 드립니다.

대하7:5) 솔로몬왕의 제물이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현대 값으로 제물 값만 따져봅시다.

소 값) 6,000,000만원 곱하기 22,000마리 도합 132,000,000,000원(1320억)

양 값) 400,000만원 곱하기120,000마리 도합 48,000,000,000원( 48억)

 

이쯤 되면 주변에서 말이 많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향유을 주님께 드렸더니 가롯 유다는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았을 것을 한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이 또 나타나셔 그 기도에 보증까지 해주셨습니다.

대하7:12)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가 제사

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

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우리의 기도는 고쳐져야 합니다.

간구보다는 드림이 먼저여야 합니다.

기도는 들으시는 대상과 하는 주체가 있는데 드림은 하나님을 먼저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응답하시오면 드리겠나이다” 하며 거꾸로 하는 이기적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주심의 신앙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우리의 드림은 소와 양이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인데 거룩함과 진실함의 나 자신이 산 제물 되어야 합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2) 이방인을 위한

솔로몬의 기도의 내용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왕으로서의 기도입니다.

*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우려 주옵시고 사하여 주옵소서 (역하6:20~21)

* 맹세하거든 맹세대로 갚아주옵소서(22~23)

* 국가의 안위를 지켜주옵소서(24~25)

* 백성의 안정을 주옵소서(26~31)

* 이방인을 위한 기도 (32~33)

* 용사들에게 용기를 주옵소서(34~39)

* 우리를 기억하옵소서 (41~42)

 

그러나 다시 본문을 살펴봅시다.

솔로몬은 기도하면서 자기나 자신들만이 아닌 이방인들을 위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장면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대하6:32)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 저희가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이스라엘의 순혈주의에 의해서 이방인들은 예수님시대까지 개 취급 받는 정도였습니다.

앞선 시대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면서 동원된 노동자들이 다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대하2:17~18) 전에 솔로몬의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거한 이방 사람들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십오만 삼천육백 인이라

그 중에 칠만 인은 담꾼이 되게 하였고 팔만 인은 산에서 벌목하였고 삼천육백 인은 감독을 삼아 백성들에게 일

을 시키게 하였더라

 

지금의 외국인노동자와는 다른 개념의 노예들인데, 가나안 정복 당시 멸족되지 않은 7족속의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대통령 취임으로 미국은 백인주의와 미국만 위하는 정책이 발효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나는 모습이기에 미래의 미국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있었으니 그의 신앙과 정치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누가 있나요? 편향되어 있지 않나요?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나의 아빠로만 여겨 크신 하나님을 제한적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것도 고쳐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이방인과 열방을 향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과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지만 인간 이해가 함께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사람이 보이고 긍휼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3) 눈을 드시고

솔로몬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입체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하6:40)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

 

흔히 소리와 말은 귀로 듣습니다.

하나님도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눈을 드시고” 하여 보시는 하나님도 고백하였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가운데 죄, 사하심, 이란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셔도 사람을 감찰하시고 죄악을 지나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서민갑부에 나온 한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젊은 날 건달사업을 하여 돈을 벌었지만 한순간에 망했습니다.

자살할때에 암으로 죽은 아내의 유언이 생각났답니다.

“당신,, 나 죽거든 아이들 보기에 떳떳한 아빠가 되어주세요.

정직한 돈을 벌어 아이들을 키워주세요“ 결국 재기에 성공했고 정직한 돈, 땀 흘린 돈을 벌고 있답니다.


성도들은 기도는 잘하는데 삶이 정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만 의식하고 보시는 하나님을 잊은 경우입니다.

우리는 들으시는 하나님 보다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더 크게 믿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과연 있나요?

 

기도는 청산유수가 아니기에 하나님을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는 연기가 아니기에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고자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진실함입니다.

믿음의 진실함, 인격의 진실함, 생활의 진실함, 하나님관계의 진실함,

무엇이든 진실함만큼 하나님께 드리고 나아가고 속삭이고 부르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최근 문득 기도가 많이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흥분했었습니다.

내 작은 기도가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들으셨던 것입니다.

이는 기도에 대한 믿음을 더 이루워 더 기도하게 했습니다.

기도의 기쁨이란 응답에 있음을 확증시켰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가 제일이지만 믿음의 선진들에게서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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