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보라 > 설교말씀

보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4-23 14:19 조회 708회 댓글 0건

본문

어느 목사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면서 교인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가로챘답니다.

처음부터 투자 없이 사기를 목적으로 했다니 죄질이 나쁩니다.

애당초 이런 말은 목사가 할 말이 아니었습니다.

정상적인 목사라면 이런 경우 뻔뻔함에 얼굴이 화끈거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이쯤이고 보면 어쩌다 된 이탈이 아니라 처음부터 타락입니다.

이 목사만이 아닌 사욕과 탐욕에 의해 투자한 성도들도 맘몬주의에 빠진 타락인 것입니다.

 

1) 하나님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이 이사야선지를 통해 하신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우상에 대한 말씀도 있습니다.

 

우상의 정의가 무엇인가요? 사람이 나무와 철로 만든 허상입니다.

이목구비가 있어도 모양뿐이고,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라” 하신 것입니다.

사44:10~11)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뇨

보라 그 동류가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장색들은 사람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

할 것이라

 

우상을 만든 사람의 결국은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고 그 우상을 섬긴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상에 대해서 말씀하셨나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이런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왜 침묵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셨나요?

저들을 불의한 길에서 회개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며,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 스스로를 강권하신 것입니다.

 

우상을 만든 사람이 우상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겐 우상이 작품이고 상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숭배하는 사람은 우상에게 길흉과 미래사를 물을 수 있고 구원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같은 신적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이 하나님을 무시해서 생긴 일인 만큼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이런 하나님을 누구와 비교할 수 있겠나요?

그럼에도 비교했고 놀랍게도 우상을 더 우월하다 여겼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나셔서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하나님자신을 계시했다면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 창조하신 만물을 이해시켰다면 타당합니다.

아니 좋은 내용을 갖고 그 백성과 말씀했다면 하나님도 신나는 일이였을 것 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상에 대해서 그 백성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하나님의 심기는 어땠을까요?

그럼에도 무지한 백성들은 몰랐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방식이나 대상 보다 내용입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느냐?

 

욥기서를 보면 하나님이 사탄과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자랑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욥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해서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

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싶지 않은 사탄과도 말씀하셨지만 그 내용은 종의 자랑스러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말씀하고 싶은 백성이었지만,

그 내용은 우상이었기에 하나님의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괴감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겠나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해도 아픈 자식위해 병원에서 밤샘하는 일과,

공부시키기 위해 식모살이 하는 일과,

사고 친 자식위해 교도소면회 가는 일과는 다른 이치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부모의 자식 사랑이라지만 격이 다르고 기분이 다르지 않겠나요?

 

하나님이 그 백성을 사랑하셔서 말씀하셨지만, 그 백성에게 우상이 무엇인지 또한 그 숭배가 어떤 일인지 그 결과는 어떻

게 되는지 말씀하신 일은 백성에게는 다행일지라도 하나님께는 불쾌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겠나요? 그러나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음성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1:2~4)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

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

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자식의 불효를 공개적으로 외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그러나 또 오죽하면 이럴까요?

부모자신을 위한 효도가 아니라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심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만족하시고 영광을 얻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만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는 이유는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신들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고치시기위해 부르셨고 찾으셨고 우상의 정체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사44:21~22)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

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너

를 내가 구속하였느니라

 

본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상상해 보십시오.

잔잔하고 부드러울까요? 아님 컸을까요? 애처롭게 호소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던가요? 그러므로 이사야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간구이며 그 메시지는 하나님

께로 돌아 오라입니다.

여기에 “야곱아, 이스라엘아,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사46:12) 내 백성아” 하며 부

르셨고,

하나님 자신은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

른 신이 없느니라(사44:6)” 로 계시하셨습니다.

또 보아라 만이 아닌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상의하여 보라(사45:21)” 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해는 신지식입니다.

가장 큰 지식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 때 가치관이 다르고 아는 것만큼 경배합니다.

그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 하나님이 나를 구속하신 분이라면? 그래서 하나님은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사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우리는 이 음성을 들어야 하고 고쳐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지난날로 족합니다.

하나님이 지난날은 허물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는 수치를 받듯이 주의 십자가의 고난과 가시관은 여기서 온 것입니다.

반면 자식이 잘하면 부모는 그 목에 금줄을 드리우듯 우리의 삶의 의는 주께 영광이 됩니다.

주님은 이 영광을 빼앗기거나 잃지 않으십니다.

 

결론) 이사야서는 과거적 메시지입니다.

역사적으론 그렇습니다.

이미 구세주가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미 새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구원함을 받았고 그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서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그 죄가 나를 향한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맘몬주의에 빠져있고 거룩하지 않은 곳에 거룩하지 않게 투자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수치를 받을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