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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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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4-30 13:37 조회 55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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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교회를 들어보셨나요?

처음에는 강아지카페처럼 개를 데리고 와서 예배하는 교회인줄 알았지만 감동의 실화랍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3년째 사람이 안 오더랍니다.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왔기에 “저놈도 생명이겠구나” 싶어 돌봐주었더니 그 강아지가 10마리를 데리고 오더랍니다.

그리고 얼마 후 윗 양복 하나를 물어왔더랍니다.

그 속에는 현금 2000만원과 무슨 계약서가 들어있었고,

목사님이 연락을 하니 건설사사장인데 고맙다며 2000만원을 드리더랍니다.

그러면서 무슨 도울 일이 있느냐고, 목사님은 됐다했지만 그 분이 도와줘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답니다.

 

강아지교회라지만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처럼 기상천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현상만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1) 기본신뢰

누구와의 관계이든 신뢰는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기본신뢰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아무리 훈련이 쎄도 군을 믿는 기본신뢰가 있으면 이 훈련은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리는 훈련이라며

기꺼이 임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별일을 다 겪어도 신뢰만 있으면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사업가가 신뢰를 받으면 돈 없어도 사업할 수 있습니다.

 

가수 이상민은 큰 빚을 지고 이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채권자들은 그를 기다려 주고 오히려 지금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가 파산할 수 있음에도 안하고 빚 갚는데 최선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런 노력과 인간성에 기본적인 신뢰를 보았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는 관계는 있으나 신뢰가 깨져 동물의 왕국이 되었고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또 성경과 하나님조차 신뢰하지 못해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이런 일에 하나님은 억울하시고 원통하실 것입니다.

지난주 이사야서의 우상숭배에 관한 지적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성도들이 잘 믿고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하나님이 판단 받았기 때문입니다.

 

국민된 개인이 잘해야 국가의 신뢰도가 올라가고, 자식이 잘해야 부모가, 상품이 좋아야 회사가 인정받는 이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에서 좀 동떨어져도 상황과 말씀에도 순종할 수 있고 이 순종에서 더 깊고 크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본신뢰,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물론,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사랑이시고 신실하시고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시고 등등의 하나님의

속성을 성경대로 믿는 믿음입니다.

 

2) 아브람에게

아브람이나 우리나 같은 사람입니다.

그때는 성경도, 교회도, 그리고 주변의 성도들도 없던 시절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75세의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여러분 같으면 이 말씀 앞에서 어떻게 할까요?

이처럼 고향을 떠난다는 일은 본성과 충돌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에 의한 새 도전이지만 알 수 없는 모험이기에 여간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런 명령을 이미 받았습니다.

골3:2~3)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육체적으로 살기 보다는 성령을 따라 살라는 의미요,

입과 배를 위하기보다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의미이고,

군림보다는 섬김으로 소유보다는 나눔으로 살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불순종하거나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순종했습니다.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지금껏 살아왔던 경험과 대세와 본성을 거슬렀던 것입니다.

어째서요? 하나님에 대한 기본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

하고 나갔으며

히11: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나중에 또 이삭을 바치라는 엉뚱한 명령 앞에서도 즉시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믿음이 있었기 때

문입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모르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입으론 믿는다 해도 행동으로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신뢰가 되고 불신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믿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 행동이 있습니다.

부부가 믿으면 사는 것이고 상품을 믿으면 구입하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순종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1차적이기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를 주의 몸으로 믿는다면 위하게 되고 복음의 능력을 믿는다면 자랑하고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이 성숙하면 할수록 신뢰도가 깊어져서 환난 주에도 소망의 인내를 갖는 것입니다.

 

3) 믿음의 때와 방식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현상,

즉 때와 방식에 대해서도 믿습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3친구가 그렇지 않던가요?

평소보다 더 사나운 풀무 불에 들어간다 해도 하나님의 구원을 믿었지만 설령 그러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모든 불변함

을 믿었던 것입니다.

 

요11장을 보면 주님이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부활한 사건이 나옵니다.

주님은 그가 병들었을 때에 기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지체했고 마침내 죽었으며 장례가 마친 후에 가셨습니다.

오죽하면 마르다가 “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며 불만을 터트렸을까요?

 

사람의 때와 주님의 때가 달랐던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가장 좋은 때에 가셨고 무덤에서 “나사로야 이리 나오너라” 는 방식으로 부활을 보이셨기에 모든 무리들

에게 하나님과 부활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언제나 “믿기만 하여라” 믿음을 요구하셨고,

큰 믿음인가 작은 믿음인가로 판단하셨습니다.

신뢰가 있는 믿음은 하나님이 일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방식입니다.

히11:7)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

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런데 우리는 믿지 않고 복만 바라고 기적만 바랍니다.

본토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지 않고 복의 근원이 되길 바라고

순종 없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거나 주의 손에 드리지 않고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고도 남기를 바랍니다.

왜 그럴까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꼭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도 충만히,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심 같이 성령도 역시 보내셨습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신뢰와 순종의 모습이라면 성령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임을 초월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미치지 않거나 바보가 아니어도 인간성을 초월한 지혜와 성품과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인데,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받은 사도들을 향해서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행2:13) ”

보십시오. 사도들은 온전했지만 달랐습니다.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찼듯이 주 믿고 따르는 신앙은 더합니다.

이런가 하면 저렇고,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해야 합니다.

신앙은 바로 이런 모양입니다.

그러나 훗날 거기에 위엄이 있고 신비가 있고 간증이 있습니다.

“우리 서로 받은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결론) 이스라엘 민족은 옛부터 아주 작고 약한 민족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셨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자립적이기 보단 의존적인 존재로 살게 하심입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제국을 세운 자강한 민족은 다 망했습니다만 이들은 지금껏 존재합니다.

누구의 힘인가요? 지혜인가요?

이들은 언제나 군사력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때 강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스라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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