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과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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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래적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과거, 현재, 미래의 차원을 넘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기에 고차원적인 삶의 방식이고 존재의 원천이 됩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던지 만사형통하리라”
오늘 성경의 본문은 이 삶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 외국인과 나그네
땅에서 사는 삶은 대체로 현실적이지 이상적이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삶이란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이곳은 꿈을 이루는 땅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생스런 땅이기도 합니다.
“아빠 찾아 삼만리”라는 프로를 보면 고향땅에서 처자들이 근로자로 일하는 남편과 아빠를 찾아오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저들이 한 결 같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고생해도 몇 년 후에는 고향에서 모두모여 잘 살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것입니다.
또 수개월 동안 죽어라 알바를 해서 몇 주간의 해외여행을 만끽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 모양입니다.
히11:15~16)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현실적으로 살기에도 힘든 이 땅에서 왜 이상적으로 살아야 하나요?
하늘 삶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켰다면 고통이고 재앙이겠으나 자원하고 감사함으로 하기에 쓴 나물이 보약이 되는 이치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한때나 두 때가 아닌 평생이루는 과정이기에 자주 흔들립니다.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럼에도 또 고쳐먹고 마음을 진정하여 나가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모세는
모세를 봅시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고,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그 백성과 함께 능욕 받는 것을 더 즐거워했습니다.
이런 마음과 생각은 대체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단했고 그 결단의 책임을 지고 살았는데,
평생토록 광야의 나그네 길이었기에 사서한 고생이었습니다.
아니 목동으로 살던 40년은 삶은 어땠을까요? 수없이 좌절하고 일어서길 반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습니다.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모세가 누구인가요? 애굽의 모든 학문과 학술을 익힌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또 장성하여, 사리분별력이 있는 40세였습니다.
이런 그가 현실적인 것을 버리고 이상적이고 영적인 것을 붙잡은 비결은
어리석음이나 착각이 아닌 ‘믿음’이었습니다.
엘리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그 잘난 지식과 학문으로 사람들을 망치며
자신도 망가지는 것을 볼 때 이 믿음은 얼마나 탁월한 지혜인가요?
장성해도 먹고 노는 일과 자기만 아는 사람들에 비교하면 대단한 가치의 소유자입니다.
만약 그가 바로의 후계자가 되었다면 어떨까요?
몸은 편하고 잘 먹고 잘 살았어도 천국과 하나님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히11:16~)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26)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러므로 모세는 죽었으나 살았으며 인류의 가장 성공한 사람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이런 탁월한 지혜와 가치를 아는 영적 안목의 소유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3)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우리나라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는 어떤 지분이 없습니다.
우리도 외국 나가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고국과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히11:13) ~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약속은 있는데 증거는 희미한 것,
그래서 다수가 아닌 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는 삶이고 길인데 믿음으로 사는 이상의 삶입니다.
얼마 전 존경하는 총장님이 다녀가셨습니다.
이때 또 새로움을 알았는데 말에 대한 힘과 이상의 대한 작용이었습니다.
이분이 어릴 때 공부는 잘했는데 짓궂었답니다.
당신네도 사과 과수원을 하는데도 남의 과수원을 서리하고,
옹기장수의 지게를 자빠트리곤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아버님은 무릎을 꿇리고 책망하시기를
“너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될텐데 그러면 쓰냐?” 하셨답니다.
이때부터 훌륭한 사람이 막연하게 각인되었답니다.
또 교회목사님이 이사 오셨기에 놀러가서 두꺼운 책을 보게 되었답니다.
사람의 이름은 알겠는데 ‘박사“를 몰라 물었더니 그 목사님은
”미국 가서 공부해서 따온 거“ 라고 했기에 미국박사를 품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혼자 피난 와서 고생 속에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총장님은 훌륭함과 박사를 어려서부터 듣고 보고 환영했더니 마침내 그의 생애에 성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단도 잘해야 하고 이상이나 꿈도 아름답거나 신령해야 합니다.
요즘 오고가는 말들은 욕이 많아 독이 되고 이상이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우리의 이상이나 믿음은 찰나에 이루워지질 않습니다.
주님이 물로 만드신 포도주는 찰나에 이루어졌으나 사람이 만드는 포도주는 세월 속에 익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이상이나 믿음은 찰나적이지만,
내가 성취하는 천국, 성, 상급은 오랜 세월을 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돌아갈 유혹이나 체념의 기회가 오는 것이고,
고쳐먹으면 바라고 즐거워하여 마침내 성취되는 것입니다.
희미한 것이 이루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믿음으로
우선 나그네와 행인임을 거부하는 우리의 속성이 변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성을, 그 상급을 아는 안목 적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바라고 즐거워해야 하며
열심히 침노하는 것이 최고이며 최선책입니다.
“마11:12)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우리의 이상은 관념적이거나 몽환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상은 도전적이고 열심을 가져야 하며 땅의 일에 적극적인 것처럼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침노해야 합니다.
곧 거절할 것을 거절하고 즐거워할 것은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땅의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일은 더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막8:36~37)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리고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재림하심은
우리를 그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앞선 준비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여행자임을 아나요?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아나요?
그렇다면 나그네와 여행 끝내는 날도 정녕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흔히 집 떠나면 고생한다고 합니다.
성도에게 땅의 삶이 힘든 것은 못나서가 아니라 소속이 다르고 신분이 달라서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이상적인, 땅에서는 외국인이고 나그네인 것입니다.
결론) 설교주제를 택할 때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한강의 어부가 51세인데 30년 동안 물고기를 건져 두 아이들 결혼시키고 집도 지었답니다.
그는 “한강이 자기 힘” 이랍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흔들렸고 하나님께 서운함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 모세를 생각하며 다시 믿음의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으로 다시 설 수 있습니다,
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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