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페이지 정보
본문
가까운 곳의 모 교회는 아직도 “성령이 불타는 교회”라는 현수막을 붙여놓았습니다.
이왕이면 여름에는 청량감 있는 파랑 색으로 했더라면 좋았을 덴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뜨거움의 불을 강조하다 보니 붉은색 일색인 것이 지난여름 보기에도 더웠겠다 싶었습니다.
같은 성령으로서 뜨거운 불같은 임재가 있고 시원한 바람 같은 임재도 있습니다.
또 각가지의 표적과 기사의 권능의 은사가 있고 비둘기 같이 온유한 성품을 이루는 성향도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두 가지를 다 갖춘 반면 현대는 다 잃었습니다.
1) 현대의 양상
현대의 양상을 보십시오.
거짓영의 여러 가지 활동이 두드러졌습니다.
또 어린학생들조차 사나워졌습니다.
이런 시대의 표적은 무엇을 말하나요?
성령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성령은 생기인 반면 거짓 영은 이름이 무엇이든 사기를 줍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회개와 성결과 부흥과 사랑과 경건이 지배합니다.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총망라합니다.
그러나 사기가 오면 반대적 현상이 옵니다.
우리가 “봄이 오는 구나”하는데 따뜻한 기운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봄의 현상인 아지랑이나 파란 싹이 솟구칩니다.
겨울이 오는 것 역시 찬기로 느낍니다.
그리고 겨울의 현상인 서리가 내리고 눈도 오는 것입니다.
왜 말세에는 지진과 기근과 전쟁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올까요?
사기인 거짓영이 크게 활동한 탓입니다.
세상은 이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잠자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전 한 영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시대의 경고와 함께 “기도하자”는 김장환목사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표적
호랑이의 위엄이 다르고 개의 위엄이 다릅니다.
호랑이의 위엄이 개의 위엄을 이깁니다.
그런 것을 믿는 이들이 종이부적이라도 붙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직업 따라 지성 따라 신앙 따라 각 나름의 위엄이 있습니다.
성도의 위엄은 무엇입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의 표적입니다
외적 표적입니다.
그러나 내적 표적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믿음의 사람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비한 사람’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외적으론 능력으로, 내적으론 거룩한 성품으로 무장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신비한 경치를 영화에서 보곤 합니다.
중국 장가계에서 촬영한 경우가 많습니다.
산은 묘하고 아래는 운무가 가득하고,, 비경인데 성도가 그렇습니다.
철저한 자연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써 특별한 위엄이 따르고 있어서입니다.
목사후보들의 교육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아직은 새내기라서 그런지 몇몇을 제외하고는 신뢰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생긴 것이야 어떻게 하나요? 그러나 됨됨이를 가리키는 눈빛은 일반인과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태도나 행동은 더하지 않겠나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꾸밉니다.
자신을 나타내기위해서입니다.
우린 속도, 영혼도 단장해야 합니다.
속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보이기 위함이지만 세상을 이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을 따르던 초기에는 누가 보던 어부였고 세리였고 한량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후의 그들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일지라도 믿음이 없고 훈련 받지 않았으니 당연합니다.
그들은 두려워 도망하고 숨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은 후의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전혀 딴 사람 같은 표적과 위엄이 주인공들이
었습니다.
행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더니
또 사랑을 비롯한 내적 거룩함도 충만했습니다.
3) 예수의 사람들은
시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주의 일을 하는 데는 성령이 절대적입니다.
사람이 사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여도 성령의 권능과 성품을 이루는 데는 많이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성령 받는 원리가 주의 언약이 있습니다.
주의 성령을 사모하여 간절히 비는 일만 있을 뿐입니다.
이미 주가 보내신 성령은 오셨고 계시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불법의 영들의 활동이 가득하여 방해 받고 계십니다.
성도의 역할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지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일에 마음을 모으는 일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은 은혜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동의하십니다.
물론 때와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적이라 해도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동기가 됩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출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왜 하나님이 먼저 해를 멈추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먼저 전쟁에서 승리하게하시지 않았을까요?
우리의 팔과 입술은 먹는 용도만 아닙니다.
각처에서 손을 들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남자들이 기도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 기도회” 만 있고 교회당에는 여인들만 소수가 되었습니다.
이 탓에 복음을 받고 광명하고 희락이 넘쳤던 나라가 어느덧 흉하고 사납게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종양도 나쁜 것과 좋은 것이 다르답니다.
그 감별의 첫째는 사나운 모양인가를 본답니다.
그리고 자라는가를 보며 냄새도 맡는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남은 소수인 거룩한 무리를 통해서 새로움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찾으실만한 거룩한 자인가요?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가장 나약한 족속이고 사람 같아도 세상을 이길 능력자들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계신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이김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여 성령 충만했다면 유지하는 비결이 또 등장합니다.
갈5:25~26)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지
말지니라
축전지가 방전되면 최신가전품도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므로 축전지에 사활을 건 기업이 많습니다.
여행 중에 휴대전화의 데이터가 떨어지면 와이피아의 도시락으로 채용해 쓴답니다.
이런 류가 많습니다.
그러나 난감해도 괜찮습니다.
진짜는 성령의 침묵을 어떻게 할까요? 성령의 탄식을 어떻게 할까요?
성령의 충만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아카데미에 가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자의 문하생이 되어 전수받지 못합니다.
엘리사의 수종 게하시는 엘리사 문하에 있으면서 전수 받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보고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던 가요?
결론) 열매는 언제나 자연적이고 성숙함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무엇을 자신 있게 열매라며 보일 수 있나요?
내가 주안에 주가 내 안에 있다는 그 신비를 증명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증명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자의 표적, 분명히 있는데 가장 확실한 바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