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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성 여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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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10-01 12:56 조회 65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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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여러 오명도 있습니다.

그 중에 짝퉁공화국은 자살공화국부패공화국이라는 말처럼 부끄럽습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장단점이 있습니다만 단점은 빨리 버려야 발전이 됩니다.

특히 짝퉁은 심각합니다.

그만큼 진실에 무감각해졌기에 짝퉁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것입니다.

 

1) 수가성 여인

주님이 찾아 주신 본문의 수가성 여인은 삶이 아주 괴로운 여인으로 보입니다.

남편이 5명이 있었고 지금은 남편이 아닌 사람과 남편처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4:17~18) 여자가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그러니 얼마나 복잡했을까요? 살기위해 얼마나 몸부림쳤을까요?

주변에서는 손가락질했을 것이기에 오전이나 오후가 아닌 사람 없는 더운 한낮에 우물가에 왔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를 책망하시기 보다는 “네 말이 참 되도다”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정말 그녀는 참된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주님은 우물가에서 초면이었습니다.

삶이 피곤한 사람들은 매사에 긍정적일 수 없는 만큼 이 여인도 주님이 물 달라는 말씀에 심사가 꼬였습니다.

우물가에서 물 한바가지 주는 인심도 못됐던 것입니다.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 인이 사마리아 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그러나 주님의 계속된 대화 속에 그녀는 마음을 열고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하는

주님의 초대에 “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며 진실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없습니다.

지금 그녀와 함께 사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아닙니다.

누구의 남편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하며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이런 고백은 언제나 여성으로써는 부끄러운 고백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그 고백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 이 여인의 인성이 나옵니다.

삶은 어쩌다가 잘 못 풀려 여기까지 왔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인성은 진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본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평가 만큼 실수를 범하는 일이 없습니다.

친구목사님이 목사후보자들의 교육을 주도하는데 늘 여러 강사를 초대하곤 합니다.

이번에도 교육이 있었는데 어느 강사는 5시에 교육이 끝나는데 4시 50분에 도착했답니다.

길을 못 찾아서 그랬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그랬어요.

“목사님은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시나요? 나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이런 사람하고는 참되지 않기에 큰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며 내 경우를 말해주었습니다.

물론 사람이기에 “절대” 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전 준비가 필요하고 사후 조치가 따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하다 싶은데 다가가 보면 아니고 또 아닌 듯싶은데 진짜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겉은 아니었지만 속은 진짜였던 것입니다.

이 여인 역시 예수님을 겉으로 판단해서 단순한 유대인으로 보았지만 나중에는 범상치 않게 느꼈기에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하며 놀랐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은 옛부터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사람은 참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짝퉁 세상에 살면서 진짜를 찾는 이치와 같습니다.

친구목사님이 이곳에 오셨다가 돌아가면서 포장된 병을 건네주며 “무안에 사는 누나가 짜온 진짜 참기름입니다.”하며

“지꺼기가 없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야곱은 수단가입니다.

참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였던 것입니다.

그의 고생은 이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얻기 위한 신앙 여정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참되면 손해 본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당장은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만 결국은 자신을 잃고 훗날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참되면 오히려 덕을 봅니다.

잠깐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주변을 얻고 나중을 잃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아버지는 장사를 갔다 오던 중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있는 것 다 내놔” 하는 위협에 말과 갖고 있던 것을 다 털렸습니다.

구사일생을 집에 와서 보니 윗저고리에 꿰매 논 금화가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다시 강도를 찾아 가 “ 여러분, 있는 것을 다 내 논 줄 알았는데 집에 가서 보니 금화가 있었습니다.”

한 강도가 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왔느냐”

아버지는 대답했습니다. “아까는 경황 중에 참되지 못했습니다.”

숙연해졌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두목이 “저 어른 것은 다 돌려드려라”해서 되찾았답니다.

 

곽선희 목사님은 19세 때 수요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인민군에게 잡혔답니다.

광산으로 끌려가서 고생할 위기랍니다.

며칠을 경찰서 유치장에서부터 고생했기에 곧 밤이 되면 끌려갈 참인데 책임자에게 부탁을 했답니다.

“동무, 3시간을 주면 교회 가서 기도하고 다시 오겠습니다”신기하게 허락을 해주더랍니다.

이제 그냥 도망만 가면 사는데 그럴 수 없어 동네교회에서 작은 오르간을 치면서

“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이 찬송만 3시간 부르고 제 발로 들어갔답니다.

그랬더니 책임자가 “왜 왔어”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다른 이유가 없었답니다.

다시 오겠다고 했으니 간 것뿐인데 이 진실로 7개월 동안 죽을 고생을 했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 진실로 평생의 훈장을 얻은 것입니다.

 

3) 신령과 진정

예배가 무엇인줄 아시나요?

하나님을 향한 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예배하느냐를 크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인 경우입니다.

참 신자는 어떻게 예배할 것이냐 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시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게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입니다.

 

빛을 받으면 진실해 집니다.

수가성 여인이 진실해 진 것도 참 빛 되시는 예수님 앞에서 그 빛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고문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합니다만 그럴 수 없습니다.

고문은 받는 자와 하는 자 모두에게 파괴만 가져다줍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참되다고 인정하시나요?

여러분의 말을 인정받나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시고 받으십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신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우리는 예배를 했는데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아 주십니다.

웅장한 예배, 멋진 예배가 아닙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예배당에서의 예배가 아니라 다윗의 장막이라도 참신앙 속에서 드려진 예배이여야 합니다.

 

뽕나무 위에서 주님을 만났던 삭개오는 “내가 뉘게 토색한 것이 있거든 4배로 갚겠나이다” 했습니다.

그는 세금을 거두는 자였기에 남의 것을 탈취했었는데 주님을 만나고 빛을 얻는 후 빛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아래의 나다니엘도 찾으셨습니다.

그를 향한 칭찬을 아시나요?

요1:47)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런 열매와 칭찬이 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네 말이 참되도다 ” 오늘도 수가성 여인을 향한 칭찬입니다.

“네가 예쁘도다” “네가 좋은 것을 걸쳐구나” 보다 월등하지 않나요?

 

결론) 사람의 말은 인격이고 신앙입니다.

말부터 속을 반영시키기 때문입니다.

음담패설, 정치, 연예인, 낚시나 등산 골프 이야기 등은 그들의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진위여부는 참됨입니다.

예배의 시작은 참됨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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