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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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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11-12 14:06 조회 59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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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루이 14세 왕은 절대 왕정의 정점에서 자신을 “짐이 곧 국가다” 라 선언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백성들은 그를 “태양 왕”이라 했을까요?

그러나 그는 몰락했습니다.

21세기인 지금, 이를 닮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1) 멸하시는 하나님

성도가 누구인가요?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놀라운 신비이고 대단히 중요한 정체입니다.

 

이 선언은 세상의 말도 아니고 성도들만의 말도 아닙니다.

성경의 선언입니다.

오히려 성도가 성전임을 모르기에 확실히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에는 햇빛과 같은 일정함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낮추십니다.

“짐이 국가다” 했던 루이 14세 뿐만이 아닙니다.

헤롯을, 바로를, 심지어 솔로몬조차도 낮추셨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진행 됩니다.

 

다른 하나는 ‘거룩하지 못함’은 멸하십니다.

국가도 그렇고 집단도, 사람도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은 솔로몬 때 지은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당시에는 강도의 굴혈이 되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했던 일컬음이 변질된 것입니다.

주님의 예언대로 그 성전과 예루살렘은 철저히 멸망했습니다.

 

인류역사와 교회 역사는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교회는, 성령이 충만했던 거룩한 교회였습니다.

세상이 두려워해서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과 싸웠습니다.

교회가 승리했고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거룩함, 경건한 능력으로 하나님께 붙잡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함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잊지 말아야 할 으뜸계명입니다.

 

역사와 전통과 싸이즈가 아무리 출중해도 하나님 계실만 곳이 못됩니다.

하나님 섬김에 많은 착각은,, 사람처럼, 타락한 나처럼 하나님을 생각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두려운 경고입니다.

빈부귀천을 떠나서,,“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사람만이 아닌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 함께 망하게 됩니다.

“멸하시리라” 자연적인 소멸도 있지만 섭리적 멸하심이 옵니다.

누가 이 일을 막나요? 누가 이때 변론하고 중재하나요? 아무도 못합니다.

 

2) 보호하시는 하나님

멸하심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보호하심을 받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나님의 능력이 다르게 작용하여 멸하는 능력이 이제 보호하는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합왕은 멸하셨지만 엘리야와 엘리사는 보호하셨습니다.

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선지자들을 굴속에 숨겨두어 오바댜로 하여금 돌보게 하셨습니다.

 

최근에 들은 얘기입니다.

이천에서 목회하시는 60대 중반의 목사님부부가 제주도 첫 여행을 하려고 경비를 마련했으나

제주극동방송건축 헌금 방송을 듣고 부부가“ 나중에 하나님이 미국여행을 시켜주실 것이다” 하며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김장환 목사님이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던 상황에서 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필요를 물었고 그들의 필요 따라 피아노를 증정했습니다.

그리고 전후 사정을 알고는 지난 제주도 사옥준공 때 부부를 초청했답니다.

 

성도의 몸은 성전입니다.

그 가정은 천국입니다.

생업장은 임하는 천국입니다.

그들이 모여 함께하는 교회는 주의 몸입니다.

신비한 하나님의 알고리즘입니다.

이를 성도가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고 증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몸만 깨끗하게 하는 데만 아니라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불의의 도구로서 죄짓는데 사용했다면 이제는 의의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가족이 모이니 천국입니다.

큰집이 아니어도 믿음, 소망, 사랑이 있어서입니다.

물론 이 천국을 해치는 마귀가 염려와 시험을 주고 갑니다.

 

또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정부가 종교조사를 했습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이때 70% 넘는 응답이 “작고 건강한 교회를 지향한다.”였습니다.

이런 통계나 조사를 믿어도 응답자를 믿지 마십시오.

의식과 행동은 달라 몸은 큰 곳을 찾기 때문입니다.

 

만물가운데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주의 섭리적인 이 교회들이 요즘은 내홍을 겪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천주교나 불교처럼 재산이 유지재단이나 종단에 들어있지 않고 개 교회에 있고, 성직자도 민주주의로 선임하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이 모든 내홍의 근원은, 재산은 늘고 교인들이 똑똑해진 까닭입니다.

그런데 이상스레 그러면 그럴수록 거룩은 잃고 있습니다.

말세는 이런 일이 경고되어 있습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 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게 대세입니다.

 

3) 돌이켜라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이 선택에서 주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거룩할 때 주의 은혜는 충만하고 신속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망하는 모양의 대세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서라”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믿는 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편이고 환난 날에 유일한, 살 보장입니다.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신앙은 흥하는 일이 목적이 아닙니다.

재미나는 일도 아닙니다.

절대적 거룩을,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서 거룩하게 하신 거룩을,

성령으로 보존하고 유지하는 일입니다.

 

이를 잃으면 세상은 핍박이 아니라 천시하고 주님은 우리를 버립니다.

그 비극이 맛 잃은 소금의 처지입니다.

거름으로, 땔감으로도, 사료로도, 아무 쓸데가 없어 밖에 버리워 밟힐 뿐입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반문화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학교마져 동성애지지가 확산되고 있어 “주님이 계시면 동성애자들에게 돌을 들겠느냐?

오히려 발을 씻겨주실 것이다” 합니다.

“어찌 하나님만 신이냐? 쇠똥구리도 신이다” 하며 각종차별 반대 법을 주장합니다.

쇠똥구리가 소똥을 동그랗게 뭉치고 물구나무서서 뒷걸음로 제 집을 찾아가니 신비로운 나머지 신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 하나님을 누구와 비교할 수 있나요? 쇠똥구리와 비교할 수 있나요?

그러나 장차 이런 일로 신앙차별을 위반했다 해서 고소고발 당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 거룩함이 충만하여 세상이 두려움을 갖고 핍박을 한다면 우리가 제대로 된 것이지만 두렵다고 타협하거나 숨으

면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천시 한다면 그때는 이미 교회도 소망이 없고 세상은 더 없게 됩니다.

아직은 교회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 교회를 염려하고 책망도 하니 다행입니다.

“돌이키라”는 기회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결론) 옛날에는 핍박으로 믿기 힘들었습니다.

한 때는 가난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헛똑똑 때문에 힘들었다면 다시 배우셨길 바랍니다.

거룩은 경건의 능력입니다.

흰옷입고 검은 옷 입고 성경찬송가 끼고 다니는 일이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 참빛 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의로움과 진실함과 거룩함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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