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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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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11-19 13:38 조회 83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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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의 교회는 암흑시대였습니다.

라틴어를 아는 성직자만 성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신앙독재는 신의 이름을 빌어 횡포를 부리는데 입맛 따라 성경을 자의적 해석합니다.

베드로성당을 짓기 위한 건축비마련에서 면죄부가 판매되었습니다.

부모형제를 위한 면죄부를 사면 죄가 면죄되어 지옥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긴다는 큰 종교사기였습니다.

 

1) 세상

세상은 대체로 대물림합니다.

인도와 그 영향을 받은 주변 국가들은 여전히 신분이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대물림되어 금수저 흙수저론이 발생했습니다.

사회적 대물림입니다.

 

생물론적으론 어떤가요?

피부색, 대머리, 유전병이 대물림됩니다.

어릴 적 친구 중에 흑인혼혈이 있었습니다.

낳은 어머니한테 버림받아 양어머니한데 키움 받았는데 자랄 때 멸시천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흑인의 독특한 감성으로 어렵게 가수가 되어 성공했지만 그의 아들은 이런 감성은 없이 피부만 검습니다.

 

세상나라는 좋던 나쁘던 원하던 원하지 않던 유산이든 빚이든 대물림됩니다.

그래서 신분상승이나 계층상승이 기적처럼 되어 “개천에서 용 난다” 는 표현을 씁니다.

지금은 이 조차 어려운 사회구조가 되었기에 좌절과 분노가 큰 것입니다.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의 당선이 이러한 단면을 웅변합니다.

트럼프를 왜 백인들이 지지했을까요?

미국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공약했는데, 미국만을 위한 정책을 하겠다는 것이 먹힌 것입니다.

주류의 국민들조차 힘겨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미국이고 보니 어느덧 “아메리칸 드림” 사라졌습니다.

이민자들의 국가이지만 이민자들이 성공은커녕 살기가 힘들게 된 것입니다.

이 탓에 한국민들의 이민도 줄어 한인교회는 비상이랍니다.

 

이런 대물림,,일반적이고 또 마음속에 대체들 지니고 삽니다.

그러다 보니 “묘를 잘 써야 후손이 복을 받는다” 한 유교적 사상이 묫자리 운운하고, “조상신이 노하셨다” 하여 미신에서

는 푸닥거리를, 교회조차도 “조상의 저주가 흐른다” 하여 그 저주를 끊어야 된다며 예수이름을 남용하는 웃픈 일이 있곤

합니다.

 

물론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느냐가 후손들에게 명예나 불명예를 줄 수 있습니다.

나눔과 독립에 헌신했던 경주최씨 문중과 매국노 이완용의 문중은 다를 것입니다.

경주최씨네는 자랑스럽다면 이완용의 후손은 이민 가서도 부끄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후손 개개인을 판단하는 하나님의 심판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과 공의는 지극히 개인별입니다.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셨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속담으로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겔18: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

찜이뇨

 

이런 경우를 보셨나요?

하물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더욱 그럴 수 없습니다.

 

2) 공평과 정의

하나님 나라는 치우침이 없는 나라입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조상 탓, 누구누구의 덕이 없이 죽고 사는 일이 내 할 바입니다.

 

겔18: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난 내 모든 죄에서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겔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평합니다.

겔18:25)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길이 아니냐

 

하나님은 이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시고자 회개와 믿음을 예수 안에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어떠하든지, “예수께로 돌이켜라” “그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섬겨라”

베드로 사도는 이를 외쳤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3) 오직 한 길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입니다.

겔17:27~28)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은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두강도가 함께 못 박혔던 두 강도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 둘은 십자가처형을 받을 만큼의 악행자들이었지만 한 강도는 주를 부정하며,

“눅23:39)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며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이때 곁의 강도가 뭐라 했나요?

“눅23:40)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회개하며 믿으면서,

“눅23:42)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눅23: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둘의 운명은 지금껏 어떨까요?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죄인이 무슨 선한 일을 하던 하나님의 완전한 의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고 주님의 의를 믿음으로 소유하여 심판에서 면제되는 것입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

에 이르지 아니하노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제 하나님의 의를 받았으니 의인으로 살 수 있고 새 법을 준수하며 살 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공로가 있다면 오직 예수님 핏 공로뿐입니다.

이를 선물로 주신 이는 하나님아버지십니다.

 

죽기를 바란다면 그냥 그 죄악의 길에서 머물면 됩니다.

그러나 살기를 바란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겔18:31~32)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살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법은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요,

의를 행함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기를 원하십니다.

먹고사는 것 보다 죽고 사는 일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죽고 사는 일은 결국 내게 있습니다.

부모의 회개나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여 정욕으로 살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성도다움이며 교회가 교회다움입니다.

종은 울려야 하고 감사는 표현해야 하듯 기독신앙은 관념적이 않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증명돼야 합니다.

 

결론) 에스겔서는 하나님을 떠난 유대와 이스라엘의 죄가 지적되어 있습니다.

지도자들부터 우상 숭배했고 예루살렘은 여기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다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동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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