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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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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12-10 13:32 조회 657회 댓글 0건

본문

동서고금을 통해서 신기하고 신비한 일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놀라운 신비의 사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 일입니다.

도(道)성(成)인(人)신(身),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의 몸을 갖고 오셔서 사신 일입니다.

 

“오셨다” 는 사회적인 표현이고, 생물적으론 “탄생하셨다” 이며,

우리 신앙으론 “강림하셨다”가 됩니다.

 

1) 구주탄생

이 신비한 구주의 탄생은 갑작스레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인류 창조와 함께 죄의 기원부터

계시되어 온 일입니다.

그러기를 구약의 모든 시대가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되었고, 세례요한은 마지막 선지자로써

성취된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의 증언입니다.

 

우리는 캄캄한 밤이라도 아침이 올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태양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명을 맞이한 적 있나요? 희끄무레하다가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면 아침이 오고, 중천에 있으면 한 낮이고, 다시 서편으로

지면서 마침내 완전히 넘어가면 달이 밤을 주관하곤 합니다.

날은 이런 일의 반복이지만, 구주의 탄생은 이런 일의 단회적으로 보면 됩니다.

 

창세기에는 여인후손으로써 여명처럼 구주를 계시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했으니 원시복음입니다.

그리고 시대가 흐르면서 구체적으로 계시되어 이사야서는 유다지파로, 또 시대가 흘러 다윗지파에서, 미가서에서는 베들

레헴에 탄생하고, 말라기서에는 떠오르는 태양으로 역할 할 것이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

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리라

우리에서 나온 송아지가 뛰는 모양을 보았나요?

아님 갇혔던 개를 풀어놓으면 “우다다” 하며 뛰는 모습을 보았나요?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자유를 누린다는 메시지입니다.

 

세례요한은 이 오신 예수를 소개하므로 아침을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면 중천의 모습은 어떨까요? 주님이 친히 중천의 해로 말씀하셨습니다.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주님의 많은 말씀과 표적이 자신을 믿도록 증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는 해가 됐을 경우 달의 역할인 성령님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현대는 오실 구주가 아닌 이미 오신 구주를 믿고, 다시 오실 구주를 기다리고 있기에 선지자가 아닌 이 모든 예언을 총망라

한 성경과 여전한 성령의 인도로 구주를 받고 있습니다.

 

2) 교회

이러한 구주가 빛이기에 교회는 등대가 되고, 구주가 생명의 떡이기에 교회는 떡집이 되고, 구주가 선한 목자이니 교회는

목장이 되어야 하고, 또 주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으니 증언자가 되어야 하고, 양의 문이 되신 주님이시니 교회

는 들어오며 나가며 꼴을 먹고 살쪄야 했으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하셨으니 교회는 이 자유와 권세를 갖고 마귀의 일

과 죄에 대해서 승리를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 되게 변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그 모양을 변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경배하고 기도해야 할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 된 것처럼,

주를 담고 증거해야 할 현대교회가 변질되었습니다.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였던 리처드 핼버슨 목사는 이런 교회를 향해서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서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고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기업이 되었다“ 했습니다.

 

그리고 대형교회세습을 비판한 영화 쿼바디스를 제작한 김재환 감독은 덧붙이기를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는 대기업이 되

었다” 했는데, 나는 자영업이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훌륭한 목사와 교회도 많습니다.

목사의 유익보다 교회의 유익을 구하여 몸된 교회로써 거룩함을 유지하는 목사와 교회가 더 많을 것이라 믿습니다.

인천의 목사는 제법 규모가 있는 교회를 사위목사가 아닌 밖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좋게 여깁니다.

 

교회는 주님이 머리입니다.

다스림이 있는 만큼 순종과 복종과 충성이 절대적입니다.

민주적인 듯해도 민주주의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청주의 목사님이 조기은퇴하면서 후임자를 찾았습니다.

좋은 분으로 결정됐는데 때가 되니 그 분은 어떤 하자도 없었는데 못오게 되었답니다.

다시 기도한 후 결정했더니 자기네 교회의 군목출신 부목사님이 결정되었답니다.

그래서 알았답니다.

교회는 민주주의만은 아닌 것을,

 

세상의 민주주의도 시끄럽습니다.

교회도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의 분열과 분쟁이 여기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수결의 원칙 보다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를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데 어떻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공항에 간다고 해서 다 출국하는 여행객일까요?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믿음의 성도는 아닌 것이 큰문제입니다.

국민일보를 보니 한국교회성도들이 무속주의가 60% 유교주의가 20%는 놀랄만한 통계를 소개했습니다.

참 복음의 구주를 믿는 성도는 20% 라니,

지금 사회현상을 보니 교회의 성숙이 그럴만해 보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을 향했던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마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회개하고” 가 먼저 등장합니다.

옷으로 말하면 새 옷 입기 전에 이미 입은 옷을 벗으라 함과 같습니다.

적당함이 아닌 전인격적인 돌이킴입니다.

왜 현대교인들이 무속적이고 유교적일 까요? 회개가 없어서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믿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믿어라” 복음은 단순하고 구체적입니다.

도성인신의 이 분, 말구유에 눕혀진 이분, 목수의 아들로 산동네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가 그리스도가 복음의 중심이고, 그

분을 영접하여 연합하는 일이 믿는 일입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구습을 벗어야 합니다.

새 성향으로 온 새 습관을 익혀야 합니다.

머리로 이해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슴으로 납득만 해도 안 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그 아기예수께 경배하러 왔었고 보배합을 열어 예물을 바쳤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요?

 

3) 믿음의 증명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남이 아닌 나의 구주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 좋을수록 시와 찬미가 많습니다.

얼마 전 작은 교회 목사들의 식사자리가 있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간증하기를 작은 교회목회를 하니 내일을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돌아보니 주께서 함께하신 일들은 많았다고 했습니다.

“믿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가 실감된다” 고 했습니다.

*경배가 있습니다.

공적인 경배 사적인 경배가 됩니다.

공적인 예배가 회중 예배라면 사적인 예배는 나를, 내게 있는 것을 주의 뜻에 사용하는 일입니다.

헌신, 헌물, 재능기부도 포함됩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던지 전도해야 합니다.

*따르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졸업도 수료도 없습니다.

죽어야 비로써 마침이 됩니다.

생각나는 찬송구절이 있습니다.

평양에서 피난 나온 노 권사님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찬송가입니다.

남편여의고 1녀2남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

“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겠네”

지금도 그 분의 마지막 모습이 연상됩니다.

참 고운 종말을 맞이했고 그분의 장례와 추도식을 집례하곤 했었는데, 자녀들도 후손들도 번창했습니다.

 

결론) 주를 믿는 신앙은 이런 모습이고 이런 약속과 보장이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끝난 듯 했어도 성령 안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예수를 구세주로 믿나요? 그렇다면 예수화를 이루워야 합니다.

인격에서, 삶에서 열매가 증명해야 합니다.

요3: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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