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이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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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디서 사느냐는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누구와 사느냐 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떻게 사느냐 입니다.
잠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가득하여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홍길동은 좋은 집에서 살았어도 행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한 신분 탓인데 조선시대에는 신분계급이 있어 홍길동은 아버지가 양반이어도 어머니가 천민
인 이유로 서얼인 까닭입니다.
이처럼 신분의 상승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1) 임마누엘
그러나 가만히 있는데도 신분의 상승이 이미 일어 났다면 믿겠나요?
임마누엘이라 는 말씀이 그를 증명합니다.
예수라는 요셉의 아들이 우리의 신분상승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놀라운 충격이고 신비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땅에 사는 티끌과 같은 인생들과 함께 사신다?
하나님은 한없이 낮아지심이고 천해지심이고 시공의 제한을 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인생은 어떤가요? 이 덕에 한없이 높아졌고 귀해졌고 천사도 흠모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등극한 것입니다.
지난 정권에서 현 정권까지 큰일을 봤던 친구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현 대통령을 가까이 보니 사상적으로 우려할 만한 분이 아니랍니다.
무엇보다도 측근들과 허심탄회하게 눈을 맞추면서 얘기하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신뢰가 간다 했습니다.
그 전에는 대통령은 적어 온 글로만 말하고 참모들도 적어 온 글로만 보고했기에
“그게 아니고요” 할 수가 없는 격이 있었는데,
지금은 장관도 사석에서 “ 대통령이 친구야” 할 만큼의 격이 사라진,
역대정권에서는 없는 실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수가 혁신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우려도 했습니다.
하나님과 인생과의 격차가 어떨까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만큼 될 것입니다.
그동안 피 없이는, 중보자 없이는, 아무도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담을 허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어느 한때만 함께 계심이 아닙니다.
내가 잘할 때만이 아니고 못할 대만도 아닙니다.
“항상”입니다.
2) 임마누엘의 믿음
“하나님이 항상 감찰하신다” 가 아닌 “함께 계신다”를 믿을 때에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요?
아니 주변에 돈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저사람 로또 맞았나?” 할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렇게 해서 범죄가 발각되는 일이 많답니다.
누구에게나 돈은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면 어떤가요? 예뻐진다고 합니다.
홀몬의 변화도 있지만 상대방의 사랑을 의식해서 단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인식과 없다는 인식은 어떨까요?
있다는 인식이 민주주의 이고 없다는 인식은 공산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인권을 생각합니다만 공산주의는 유물론적인 사고이기에 학대와 학살이 있습니다.
21세기에 최대의 인권유린국가가 중국이고 최고는 북한이 아닌가요?
중국에 있는 동역자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선족입니다.
자신이 가장 덕 많이 본 것이 지금까지 중국공산당이라며 간증하곤 합니다.
목사가 되기 전까지 공부시켜주고 취직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중국민을 사랑하지 않고 맨 날 “뗏놈”이라고 하며,
그의 가슴에 품고 있는 이들은 동족인 북한민입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시나요?
미국은 혈맹이라는 대한민국을 잘살게 만들어 준 나라인데 비해 중국은 자기들의 혈맹인 북한을 죽지 않게만 만들어 놓았
답니다.
옳은 지적이라고 봅니다.
미국의 패권은 세계질서와 평화를 위하지만 중국은 자기네만 생각합니다.
현대에 들어 전쟁을 가장 많이 치른 국가가 미국이어도 미국은 영토 확장의 전쟁이 없는 반면 중국은 주변국들과 다 있었
고 그 꿈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인식의 국가 차이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장군장로님은 애당초 군선교의 소명을 갖고 군대를 갔기에 소대장때부터 섬김의 자세로 살았답니다.
그것이 그의 리더쉽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그를 주변 사람들은 칭찬하니 명예가 된 것입니다.
깊은 숲에서 일하는 심마니들은 길을 찾는 나름의 방식이 있습니다.
잎이 무성한 곳이, 껍질이 딱딱하고 마른 곳이 남쪽이라는 것입니다.
볕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양심에, 인격에, 하나님의 빛이 머무는데 사람에 대해서 무례할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하여 목마름이 없을 수 없습니
다.
영국에서 귀순한 북한 공사가 최근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북한은 가짜 교회당을 평양에 지었는데 점차로 진짜 교인들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배시간이면 그 교회당 주변 길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는 기도와 찬송소리라도 듣고 싶어 하는 신앙
인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고 북한당국은 종교정책을 더 심하게 탄압하게 되었답니다.
하나님을 알면 그 지식으로 주님이 말씀했던 팔복의 특성이 나오는데 곧 거룩성입니다.
함께 낭독해 봅시다.
마5:3~1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른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그리고 하나님의 영생을 소유했기에 고난은 물론 죽음의 저편을 바라봄으로 죽음도 은혜로 믿는 것이니 이런 사람은 당당
합니다.
3) 무너진 담장
전에는 사람사이에 많은 차별이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양반과 상놈, 남자와 여자,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어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해서, 임마누엘의 은혜
로 해서 이 은혜가 머무는 곳에는 서로가 가까워졌습니다.
엡2:13~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막힌 담을 허시고
그러므로 예수님은 보이시는 하나님이시고 함께 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오심으로 임마누엘이 사실화 되어, 하나님과 차별, 우리끼리의 차별을 무너트려졌기에 예수님은 화평이신 것
입니다.
또 구원자로서 우리 죄에서의 구원, 완전한 하나님율법에서의 구원, 마지막원수인 사망에서의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후15:55~57)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
님께 감사하노니
그러기에 임마누엘의 사람은 자유자가 되고 안식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유를 원하지만 왜 자유가 없었을까요? 죽음에 매이고 율법에 매이고 온갖 것에 매였으니
자유가 없고 안식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니 그 거룩함과 당당함이 이 모든 권세에서 이김을 줍니다.
하나님의 불신은 두려움이고 하나님과의 별거는 부자유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두려움과 부자유가 과거사여야 합니다.
현재의 여러분은 어떤가요?
결론) 임마누엘은 삶의 최고입니다.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는 고아원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연대의식이 강해 떼로 다니며 자신들을 보호했습니다.
나이 먹은 초등학생들도 있어 같은 동급생 보다 힘도 쎘습니다.
그때는 이들이 부러울 때가 이었습니다.
부자 아버지를 둔 친구가 부러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임마누엘이시기에 성도에게 아버지요 친구요 구원자이십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듯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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