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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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는 원앙새 못지않게 금실이 좋은 새입니다.
동물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숫 비둘기보다 암비둘기가 더 사랑한답니다.
누가 더 단명할까요? 주는 사랑일까요? 받는 사랑일까요?
암비둘기가 훨씬 단명한 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하는 것입니다.
1) 짝사랑
이처럼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사랑을 외사랑, 짝사랑이라고 합니다.
슬픈 사랑이지요.
사랑에는 꼭 희생이 동반되는데 짝사랑도 실상은 사랑을 받고 싶은 구애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니 사람은 애증의 관계가 되기도 하고, 혹은 복수극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암비둘기는 단명도 하는 것입
니다.
세상에는 짝 사랑이 많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이 짝사랑이고 자식에게 향한 부모의 사랑도 짝사랑입니다.
먼저 한 사랑이고 조건이 아닌 오직 사랑에 기반 한 사랑이기에 위대한 사랑입니다.
특별히 하나님 사랑은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 무한함을 측량할 수 있는 저울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말씀입니다.
여기에 비해 부모사랑은 외상사랑입니다.
자식이 어려서는 그 사랑을 받았지만 부모가 훗날 늙어지면 봉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일찍이 여의고 6남매를 키운 엄마가 계셨습니다.
여인의 몸으로 자식들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했답니다.
결국 그 자식들을 잘 키워냈고 그 자식들은 늙고 몸 망가진 엄마를 알아주었습니다.
그래서 뒤늦었지만 그 몸을 고쳐주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부모가 많습니까?
젊어서 자기 살겠다고 자식 버린 부모는 늙어서 자식에게 외면당하는 것입니다.
현대는 짝 사랑조차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불신하고, 누구에게 사랑 주고 누구에게 사랑 받는 일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홀로 사랑하고 홀로 사랑 받는 일이 많이 된 세상입니다.
이 탓에 취미가 늘고 덩크족처럼 자신을 위한 미래 보장에 투자하는 부류가 많습니다.
불행하게도 사람은 물론 사랑을 믿지 못하고 오직 돈과 자신만 믿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세상을 뭐라 하나요? 말세라고 합니다.
딤후3:1~4)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
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 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
하기를 하나님 사랑 하는 것 보다 더하며
사랑하고 살아 받아야 할 존재들이,
이를 외면하고 사랑 받겠다고만 기를 쓰다가 이런 탈이 나고 이런 시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옥은 여하한의 사랑이 없는 곳이요, 천국은 사랑이 충만한 곳이라면 틀릴까요? 맞습니다.
2)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성도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나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느냐? 나에게 순종하겠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희끼리도 사랑하여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받을 사랑을 계수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할 때 갑절로 빛납니다.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 가 괜한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베드로는 열정적인 사랑을 주문했습니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
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이 사랑의 위대함은 콩깍지를 씌워서 마침내 죄와 허물도 가리웁니다.
흔히 연애할 때는 잠잠했다가 결혼 후에는 “상대방이 변했다” 며 타박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는 자신이 변한 것입니다.
내 눈의 콩깍지가 벗겨진 탓에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내가 변한 것인 만큼 내 안의 사랑을 점검해야 합니다.
사랑을 하려면 판단하고 따지면 안 됩니다.
여기서는 갈등과 다툼이 나옵니다.
신뢰와 양보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사랑은 믿음과 희생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야 합니다.
친구부인은 교수인데 그녀의 말이었습니다.
공부한 며느리가 왔는데 처음에는 기 싸움을 했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마음을 고쳐먹기를 “무조건 사랑하겠다.” 하니 그 후 사랑이 되더랍니다.
그 후 며느리도 달라지기를 “내가 시어머니를 어떻게 이기나 무조건 져야지” 했답니다.
이 가정은 외동딸며느리를 들인 외아들며느리입니다.
여기에 두 손자가 있는데 그 집안이 천국입니다.
신혼 때부터 25평 빌라에서부터 함께 살더니 지금은 40평대 아파트에서 여전히 함께 삽니다.
이 사이가 좋으니 사돈사이도 좋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신앙으로 풀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풀어야 합니다.
아카페 사랑이 어떻고 에로스가 뭐고, 그러나 사랑하면 이미 신앙 중에 최고가 된 것입니다.
마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
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
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 사랑받는 존재
올해 99세이신 김형석 철학가는 “아직도 사랑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주착인가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기에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기만 하거나 받기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가장 사랑 받는 큰일은 무엇인가요? 내가 먼저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면 할수록 거기서 사랑 받는 사랑이 됩니다.
사랑의 아니러니 입니다.
그럼에도 피차사랑 없이 대다수 사랑의 굶주림 속에서 탈진하여 쥐약 같은 사랑을 찾아 성추행과 폭행을 하여 망신을 당하
고 상처를 주고, 마약과 쾌락을 찾아 폐인이 되는 것입니다.
확산되는 미투 운동을 보면서 복음화가 절실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아니 조선후기에는 더 했음을 역사에서 보았습니다.
지금 용기 있는 행동들이 진동 속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어 갈채를 보내지만,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저변의 사랑을 채우지 못하면 이런 상황은 계속 될 것이라는 우려도 갖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어떤가요? 건강한가요? 하나님 사랑으로 부요한 가요?
그 사랑만이 다른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아직 받을 사랑만 계수한다면,
조건부 사랑을 따진다면 갈보리언덕에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사랑은 시나 노래나 춤으로 표현되고 고백됩니다만 성도의 사랑은 행위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
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하나님 사랑에 부요하면 세상 사랑을 찾지 않고,
집에서 사랑이 온전하면 타인의 사랑을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이게 사랑의 속성이고 위력입니다.
성도는 이 사랑에 부요하고 나눌 수 있는 부자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받을 사랑을 계수하고 있나요? 하나님 사랑을 아시나요?
결론) 사도요한은 사랑의 사도였습니다.
말과 혀가 아닌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며,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종교가 아닌 하나님의 성품인 만큼 거듭난 성도의 새 성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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