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성령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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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이 지났습니다.
부활이 기념주일 만이 아닌 참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생명의 성령의 법
좀 단순하지 않는 구절이 있습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 무슨 뜻일까요?
생명의 법이라면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생명에 관한 일정한 규칙을 의미합니다.
그 규칙은 태어나고 죽고 나름의 형상을 만들고 성향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의 법이 생명의 법입니다.
고전15:38~39)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
의 육체니라
이 종자로 무도 알탈이, 왜무, 조선무가 있고, 마늘도 흰 마늘, 흑 마늘이 있고, 소도 흙소, 칡소, 흰소, 물소, 황소, 얼룩소
등이 있는 것이고,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데 콩 납니다.
속담이지만 사실이고 진실이기에 생명의 법입니다.
또 이런 생명은 하나님께 왔어도 종의 변이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에서 말하는 진화는 없습니다.
이 생명의 법에는 자연법칙도 있는데 이 법칙에 탈이 와서 지금은 미세먼지와 황사로 하늘은 뿌였고, 이상기온으로 이끼가
일찍 자라 억센 이끼를 먹어 순록이 소화불량이 걸리고,
덧신토끼가 털갈이하기 전에 눈이 녹아 멸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생명의 법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영생하지 않고 다 죽습니다.
간혹 사람의 경우 부활했다 하더라도 다시 죽었습니다.
나사로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의 풀러스 ‘성령의 법’이랍니다.
이런 생명 안에 성령의 법이 더 한 것이기에,
단순하지 않고 과학이 아니기에 믿음이 되고 신앙이 됩니다.
특별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했고,
또 ‘성령의 법’ 이라 했기에 성령의 충만이나 은사는 더욱 아닙니다.
성령이 누구신가요? 어떤 분이신가요?
예수님을 구주요,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고 아버지하나님을 뜻을 성취하시는 예수님의 신이시오, 아버지하나님의 신이십니
다.
이 성령이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예수님을 마리아 몸에서 참사람으로 잉태시키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성령의 능력에 덧입혀 아버지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자신도 성자이시지만 자신의 능력은 영광과 지혜와 위엄과 함께 비워두신 체 철저히 성령의 의존하여 종이요, 인자로 사셨
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생명은 일반인들과 비슷해도 다릅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는데 성령의 법 때문입니다.
요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
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살긴 살되 언제가 죽는 생명이 아니라,
죄 때문에 죽고 죄에 종노릇하는 생명이 아닌 애당초 부(復)활(活)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만이 여하한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도 다시 죽지 않는 영생이 되십니다.
그 결과 부활이며 승천이며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장차 영광의 왕으로 재림하십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무엇인지 들어납니다.
아담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나의 생명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부활이요 생명인 참 생명으로 거듭나도록 심기운 접붙임입니다.
이 현상을 우리는 중생,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이때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법으로는 없는 종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분도 바뀌어서 선천적 죄의 노예에서 후천적 의의 종으로,
또 마침내 우리의 형상도 물론 바뀌게 됩니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간에 홀연히 다 변
화하리니
그리고 성향도 달라집니다,
롬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심이니라
즉 죄에 대한 거부의 성향이 나타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룩한 요구가 계속 일어나는 성향인데 이 과정을 성화라고 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의 영향입니다.
2) 죄와 사망의 법
그러므로 예수 안의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과 정반대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주님의 특별한 생명으로 죄와 죽음에서 부활하는 생명이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영생을 이루는 능력이기에 추락이나 실패에서도 회복의 은총의 길로 나갑니다.
칼융의 말처럼 “ 걸려 넘어진 곳에서 순금을 발견한다” 가 되는 것은,
형편이 어떻든 믿음의 인내를 가지면 소망 중에 성령의 법이 회복시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마귀의 안에서,
그 지배 하에서 죽음이 두려워 죄 짓다가 결국은 그 죄 값으로 영벌에 처해지는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생각은 육신을 좇는 성향이 있습니다.
세상과 세상의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결국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사망이라는 둘째 죽음에 이르는 모양입니다.
이는 성도가 믿음으로 주 안에 머물기 전의 자화상이고 모든 세상 사람들의 실제적 상태인 것입니다.
성도의 찬양과 경배는 여기에서의 해방이기에 감격과 감사가 있습니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3) 성도의 딜레마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부활능력을 받은 성도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신분과 성향이 달라졌고 모습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감사 감격은 감정이기에 세월 따라 요원해지고,
마귀는 세상살이를 동원시켜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우리의 구원과 해방을 의심하게 하여 옛 본성과 옛 성향을 따라 살게 만듭니다.
여기에 우리는 노출되었고 약합니다.
이때부터 영적싸움이 시작됩니다.
롬7:25) ~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중요한 단어가 있는데 “내 자신이” 생명의 법이 아니고 성령의 법도 아닙니다.
자신의 판단이고 연약함이고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옛 본성 따라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믿음도 아니고 성령을 따라 사는 일은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성령이 보혜사로서 내주하고 계심을 느낌 보다 믿어야 하며,
그 믿음은 보혜사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의 검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승리가 많을까요? 실패가 많을까요?
그러나 이 여부를 떠나 생명의 성령법이 이미 작동한다면 이미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
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주 안의 생명의 성령의 법은 이처럼 확실하고 완전합니다.
세상의 법은 자주 바뀝니다만 생명의 성령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론) 우리는 대강 믿으며 대충 살수 없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법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산 자의 증거를 만드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아바아버지라는 고백만이 아닌 복음으로 말미암는 고난도 감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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