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에 매인 사신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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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복음을 위한 적극성으로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살지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교회에게 절대적인 교훈을 합니다.
이 교훈이이 성도에게는 보약인 줄 믿습니다.
1) 증언
성도는, 모든 일을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엡1:11)
성도가 모인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엡1:23)
성도는,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엡2:22)
성도는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다(엡3:12)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이며 지체의식을 갖고 연락하고 상합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 엡4:16)
사도바울의 교훈은 소위 교회론이지만 신령하고 신비한 비밀인 것이며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후대의 성도들은 믿어야 할 내용입니다.
2) 교회의 특성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행하지 말라(엡4:17)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엡4:23)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라 (엡5:1)
세월을 아껴라(엡5:16)
피차 복종하라 (엡5:21)
위는 교회의 합당한 교훈입니다.
순종할 때 거룩함이 유지됩니다.
3)마지막 교훈
그가 이제 마지막 교훈을 합니다.
“종말로” 마지막이란 의미도 있지만 또 강조한다면 뜻도 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10~11)
사도바울은 로마제국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군인하면 로마 군병이 연상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무장은 어땠을까요? 완전한 무장이었습니다.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창을 들고 칼을 차고,
공격과 보호를 확실히 했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이래야 합니다.
외교전쟁, 무역전쟁, 이념전쟁, 영토전쟁도 아닌 영적 전쟁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주적을 아시나요? 혈과 육이 아닙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이러한 전쟁과 주적의 특징은 전장이 없고 때가 없으며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주관자가 누구인가요? 정책과 입법을 만드는 이들입니다.
하늘의 주관자들? 마귀의 무리들입니다.
이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이들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는 지식으로 되지 않고 청결함에서 얻어집니다.
거룩한 성도가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기에 이런 적군은 자연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도가 누구인지, 교회가 어때야 하는지를 반복적으로 대언했던 것입니다.
이들과 싸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투표로 행사해서 선출되지 못하게 하는 길이 있고,
하나된 교회가 연합하여 정책이나 입법을 저지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교회는 분열되고 성도들은 청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든든히 서야할 교회와 하나님 나라가 무너지고 있는 판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강조 받는 것입니다.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거짓의 아비인 사탄은 변장의 능수이고 기술이 대단합니다.
아담에게는 뱀을 통해서 유혹했고,
주님께는 베드로를 통해서 죽지말기를 유혹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철학을 통해서, 전쟁을 통해서, 공산주의를 통해서 교회를 궤멸시키고자 했습니다.
현대는 번영을 통해서 눈감고 귀 감고 앉은뱅이 되게 만듭니다.
국민일보에서 본 내용입니다.
목사님이 시골교회로 부임하니 장로님이 오셔서 부탁하기를 “ 목사님, 너무 은혜스런 설교를 삼가 주십시오.”하기에 궁금
해서 “은혜스런 설교가 어떤 건가요?” 하며 되물으니 기복주의 설교를 말씀하더랍니다.
사탄은 시대와 성도의 신앙정도를 꿰고 있습니다.
이런 사탄에 대한 지나친 과대나 과소평가도 금물입니다.
주님께는 물러가도 우리에게는 큰 적수가 되기에 완전무장이 해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영적싸움을 위한 완전무장입
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나를 지키고 내게 이김을 주는 기술은 기도와 간구입니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김장환목사님이 그러셨답니다.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 성경읽기 보다는 기도에 더 힘쓰겠다.”
기도의 비밀과 능력과 신비를 안 목사님답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고 소통입니다.
이방인들의 기도는 막연한 대상께 부탁하는 일입니다.
무엇이 더 좋은 가요?
이런 기도를 등한시하는 일은 좋은 장비로 무장은 했지만 기술이 없는 군인과 같습니다.
마귀가 이를 알고 기도하지 못하게 공격하고 성도와 교회는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요셉은 순결한 삶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야곱은 기도하므로 하늘에서부터 사다리가 내려와 소통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간절한 기도로 하늘 문을 열고 닫았습니다.
사무엘은 어땠나요? 백성들 앞에서 자진하여 하나님청문회를 하고 자신을 물었습니다.
삼상12: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
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
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너희에게 갚으리라
그는 또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짓지 않겠다 했습니다.
주님이 누구신가요? 그럼에도 기도가 습관이었습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선교지에서도 기도처를 찾았다가 루디아 여인을 만나 빌립보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순결과 기도는 하나님경외라는 같은 밭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목사이고 보니 교회들의 환경과 성도들의 영적수준이 들어옵니다.
순결하지 못하니 기도하지 않게 되어 빛의 열매는 사르라지고 어둠의 열매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우선시 하는가요?
어떤 삶의 주인공으로 기도하시는 가요?
기도를 무엇으로 이해하고 믿고 있나요?
기쁘고 즐거우면 교제고 소통입니다.
부탁이라면 이방인의 기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누구보다 성도와 교회를 위했던 그래서 쇠사슬의 사신이 된 상황에서도 교훈하기를 쉬지 않았던 그의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결론) 무조건적인 은혜로 나를 구원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잘 먹고 잘살라는 목적인가요?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유익입니다.
실수와 실패는 괜찮습니다만 영적전쟁에서의 짐은 수치가 됩니다.
성도나 교회가 변명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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