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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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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7-09 23:03 조회 51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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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무개라는 요리사는 요식업계에서는 최고의 프로입니다.
그가 진행하는 방송에서 골목식당들을 살리는 역할도 있습니다.
어느 골목식당에서는 화를 냈습니다.
식당주인이 노력하지 않고 꼼수를 부려 음식을 조리했기 때문입니다.
“아마추어와 프로는 작은 차이밖에 안 납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가 노력입니다.“

1) 프로는 프로
프로는 어느 업종이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프로는 확연히 다릅니다.
정신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결과가 다릅니다.
여러 기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메이저급의 신문사일수록,, 대기자일수록,, 언제나 취재자세가 잡혀있고 철저히 팩트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대개가 앉아서 주는 기사를 받아먹었습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들은 확고하고 완전합니다.
그러나 어설픈 프로일수록 모양만 냅니다.

우리 신앙은 어떤가요?
프로가 있고 아마추어가 있다면 어떨까요? 내 신앙은 어떨까요?
세상 모든 업종은 사람을 상대해서 희비가 결정된다면 우리 신앙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흥망이 결정됩니다.
아마추어 신앙을 보실까요?
렘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이들의 특징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습니다.
렘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다른 업종의 아마추어 비해 아마추어신앙은 가짜가 됩니다.
렘7:5~6)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흐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이들의 특징은 언제나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안다지만 감사치 않고 영광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2) 프로 신앙
반면 프로신앙은 철저하고 거룩한 완전을 향합니다.
렘9: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첫째는 하나님만 경외합니다.
우상은 물론 그 그림자조차 얼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습니다.
경외는, 하나님 아는 지식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서 세계관과 인생관이 열립니다.
인생과 세상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무지와 떠남에서 온 결과입니다.
예레미야서는 그 역사를 눈물로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만 자랑합니다.
여러 힘과 온갖 지식과 시시각각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이론적이 아닌 실제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는고” 다윗의 고백이지만 다윗은 환난의 연속 속에서 살았던 장본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소망을 얻었고 마침내 신앙 성공과 인생 성공을 이룩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여호와는 손 방패시라” “요새라, 반석이라, 견고한 성이라” 고백했는데 수사학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처럼 여긴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기쁨의 일들을 이룹니다.
내 기쁨이나 내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찾고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내 것은 주거나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고백을 기억 하시나요? “그는 흥해야겠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
인애,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크다고 하면서,
그 사랑에 빚진 자라고 하면서 인애에 인색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자기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애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여러 구실을 붙여 합리화시킵니다.
실제는 이기심이며 탐심이고 나중 염려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인애는 사랑이 뿌리입니다.
여기서 긍휼, 배려, 온유, 겸손이 가지를 뻗습니다.
공평, 죄는 굽거나 이탈한 특성을 갖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상실합니다.
온갖 부조리의 원흉이기도 합니다.
내로남불의 시대가 된 탓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직, 하늘을 깨끗케 하고 마음을 치유하며 신뢰를 이루는 원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성도의 가정이나 업소를 가면 성구나 예수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욕심이나 흥하리라 는 꿈만 들어 있습니다.
옛 제사장들의 모자에는 “여호와께 성결” 이라는 글이 새겨졌습니다.
현대의 성도들의 마음에는 정직을 기록해야 합니다.
정직이 손해의 형용사가 아니라 남음의 대명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아시고 나중에는 주변이 알기 때문입니다.

최근 놀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론 미북의 정상회담이었습니다.
이 놀람은 사실 예측했었기에 감동은 컸어도 놀람은 적었습니다.
내게 놀란 일은 아일랜드가 카톨릭국가라서 보수성향인데도 동성애, 이혼, 낙태 등을 국민투표로 통과시킨 일이었습니다.
신앙도 떼법으로 바꾸고 국민양심 자유운운하면서 신앙교훈도 떠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제들이 신뢰를 잃어서입니다.
정직하지 못하니 외면당하고 결국은 자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반면 미얀마는 불교국가로서 승려들이 국민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장남이면, 출가시키는 일을 영광으로 여길 정도입니다.
오래전 한 승려가 존경을 받아 왕의 고문이 된 것이 불교의 융성을 이룩했고 그 신임을 승려들이 전통으로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갖가지 은사와 능력도 좋습니다만 성도는 정직을 생명으로 여겨야 됩니다.
은사와 능력은 아마추어도 가능하지만 정직은 프로의 참속성이기 때문입니다.

3) 프로와 아마추어
신앙 프로는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러나 신앙 아마추어는 마귀에게 속합니다.
마귀는 옛 뱀이요, 거짓의 아비인 탓입니다.
성도 노릇하는 신앙은 진짜가 아닙니다.
성도여야 합니다.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청년이 되고 청년은 어른이 됩니다.
아마추어가 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추어 세계와 프로의 세계는 다르기에 입문부터 다릅니다.
프로는 전문적이라면 아마추어는 취미가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신앙, 어때야할까요?

결론) 사도바울은 외쳤습니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세상은 프로들이 변화시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다 신앙 프로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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