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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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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7-09 23:05 조회 50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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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 경주는 이솝우화지만 성실함이 성공비결이라고 웅변해줍니다.

그러나 토끼가 이겼으면 어떨까요? 아니 비겼으면 어떨까요? 메시지는 달라집니다.

전도서는 누가 이겼든, 비겼든 간에 결국은 허무함을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1) 허무함

최근 우리는 70년 정적들의 악수를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했나요?

한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명분은 온데 간 데 없이 평화와 번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는 밤을 막을 수 없고 오는 시대를 인생들이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시대나 시절 따라 울고 웃고 철따라 옷 갈아입을 뿐입니다.

역사의 진정한 연출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렘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

하니이다.

 

그래서 지혜자는 세상사 만사를

전1:13)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전1:14) 내가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하나님이 주관자이심과 인생 허무를 말합니다.

지혜자는 이를 교과서가 아닌 삶에서 터득했습니다.

이를 “철났다”하는데 비용과 시간과 경험을 통해 비로써 얻는 산지식인 것입니다.

 

신기하게 이 철은 잘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사는 모습을 보고 아들이 좋은 것은 따라 하고 나쁜 것은 거부하면 될 텐데 그렇지 못해 아버지의 패턴을 따라합

니다.

그래서 개인이든 국가든 역사는 반복되고 언제 어디서나 혁신을 외쳐도 공허할 뿐입니다.

 

여기에 공통된 것이 무엇인가요?

전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그럼에도 은 사랑과 은 만족에 환장들을 합니다.

전6:7)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계속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성향,

 

이는 죄의 성향입니다.

 

2) 동일한 모습

이런 인생들에게 동일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이들에게 미치는 죽음인데 이 죽음을 대체로 준비하지 않고 살고들 있습니다.

전9:12)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

도 재앙의 날에 홀연히 거기 걸리느니라

 

사람들은 뭐든 믿는 만큼 삽니다.

죽어 가는데도 죽을 것을 모릅니다.

살 일만 생각하고 곁의 사람이 죽은데도 죽지 않을 듯 삽니다.

또 죽다 살아났음에도 죽음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닭장의 닭이 그렇고 돼지가 그렇습니다.

 

여기서 죽음을 안, 다른 모습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째는, 행복한 생활을 합니다.

하루하루가 감사한 날들이고 최선을 다합니다.

전9:9~10)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

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낭만 정치인 김종필씨가 별세했지요.

그는 92세로 생애를 마쳤는데 자신의 삶을 가리켜 허(虛)업(業)이라 했고 국립현충원보다 아내곁에 묻히기를 소망했답니

다.

 

둘째는, 나중의 삶을 생각합니다.

전11: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현재를 생각해서 도박이 아닌 나중을 위한 투자가 있습니다.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이상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전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실제적으로 믿음 생활인 것입니다.

이런 인생은 운명을 바라지도 대충 살지도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많은 모순이 뒤엉켜 있습니다.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고(전3:16)

백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여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인이 있고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전8:14)

우매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고 부자가 낮은 지위에 앉고(전10:6)

 

이래서 요동치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시위와 회담이 연속으로 있습니다.

전3: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이런 상황, 그럼에도 이런 고통과 고난의 답은 없고 안다한들 또 어쩌지 못합니다.

고작생각하기를 태어나지 않음이 제일 좋거나 아님 낙태된 자가 부러운 것입니다.

 

요즘, 장수하는 부모들을 보고 중년의 자식들은 생각이 많습니다.

장수가 복이 아니기에 장수를 바라지 않고 짧고 굵은 삶을 원합니다.

또 그 자식세대들은 ‘워라발’ 즉 “적당히 일하고 아주 잘살자” 를 추구하여

열심히 하는 것은 일, 신나고 재미있게 하는 것은 놈, 편하게 하는 것은 쉼, 이를 구현합니다.

 

모으는 것도, 집 사는 것도, 애들 키우는 것도 가치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잉글랜드는 전통적 카톨릭국가입니다.

이곳에 새로운 변화가 왔는데 카톨릭 전통가치관과 전혀 다른 낙태, 동성애, 이혼 등이 국민투표로 생활화 된 것입니다.

신앙조차도 국민투표로 결정짓고, 신앙교훈을 자신들의 양심의 자유로 귀결 짓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어느 덧 사람이 최고이고 자신의 삶이 귀중하다는 가치관이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 현상일 뿐 역시 돌고 도는 가치관일 것입니다.

 

3) 그러나

이런 일들이 다시 원상 복구되고 또 생사빈부가 내 주관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이 들어서도 하나님의 처방은 달라질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 바람을 잡으려는 듯한 허무한 인생이며, 결국은 죽는 인생이라면 참 인생 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의 화목이

고, 하나님의 의를 입는 일이고, 천국으로 인도되어 입성하는 일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전12:13)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여기에 더 좋은 최고는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입니다.

이는 후회가 비교적 작은 삶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기도라도 아침에 하면 집중되고 그 기도했던 힘이 하루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밤 기도는 어떤가요? 기도하기도 힘들지만 곧 잠들기에 힘이 발휘되지 못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헌심, 헌신, 헌물이 필요적입니다.

곧 일찍이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과 그만큼 동행하는 경건이 커지는 것입니다.

후회가 적고 빛나는 삶이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결국이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고 인류의 빛을 발견하고 문명을 혁신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는 소멸되는 한 점 빛이고 하나님께 미치지

않는 영향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허무주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입산수도하여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태초에 상고이고 하나님의 본체이기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연합하는 일이 곧 만물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고운 것도 헛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됩니다.

내가 재물을 모으나 훗날 누가 취할련지 모를 일입니다.

내 날이 긴듯해도 짧습니다.

그러나 토끼든 거북이든 이겼든 졌든 간에,

코에 호흡 있을 그때에 내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이 영원하고 영생입니다.

우리는 괜한 일에 소모하고 진짜의 관심에는 무심합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하는 진심된 고백이 있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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