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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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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7-09 23:07 조회 589회 댓글 0건

본문

창세기는 모든 기원이 들어있습니다.

믿음도 들어있습니다.

아브람이 믿음과 열국의 아비가 되는 그 기원의 말씀입니다.

 

1) 시작

세상에는 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 영웅들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삶이 남달랐기에 영웅이 된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된 아브라함, 믿음의 아비가 된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가 된 아브라함의

그 위대한 시작은 무엇가요?

첫 절에 있습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

로 가라

 

보여준 땅이 아니라 “보여줄 땅으로 가라” 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그는 이 말씀에 즉각 순종했고 혼자가 아닌 가족전체를 담보로 하여 떠났습니다.

창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한마디로 올인한 것입니다.

 

야곱이 얍봅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후 두려웠던 형을 만나는데,

그는 재산을 여러 떼로 분배했습니다.

여차하면 뒤에 남겨진 것을 갖고 도망가서 살참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이런 행동은 이성적이고 똑똑한 행동이라 하겠지만 믿음의 행동은 아닙니다.

그때 천사는 왜 나타났으며 왜 천사가 그와 씨름해서 졌으며 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을까요?

믿음의 은혜를 주신 것인데 그럼에도 야곱은 올인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아브람이라면 어떨까요? 역시 그냥 형을 만났을 것입니다.

우리라면 어떨까요? 대다수 야곱처럼 준비하고 행동했을 것입니다.

이럼이 아브람과 야곱의 차이이고 우리가 야곱을 친근하게 느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도” 아닌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는 일입니다.

쉬운 듯해도 어려운 것입니다.

아브람이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2) 떠나라

낯선 곳에 대해서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겹칩니다.

여자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 남자는 군 입대에 대해서, 혹은 이민이나 개업은 더합니다.

75세를 살았던 본토친척 아비의 집은 익숙했고, 정들었고, 무엇보다도 신뢰할 것이 많은 곳

아닌가요?

그런데 그곳을 단숨에 정리하고 떠난다는 것은 모험과 도전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명령일지라도 고개를 가로 지을 일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우리에게 새로움을 명령하십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

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의 가치나 방법이 아닌 체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면 가능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셔야 할 것은 배는 어떤 배이든 철선이든 목선이든 플라스틱선이든 물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물에 잠기면 곤란하듯이 성도의 삶도 그렇습니다.

시간마다 물을 퍼내고 정기적으로 이상을 확인해야 합니다.

 

아브람이 본토친척 아비 집을 믿음으로 떠났다고 해서 단번에 형통한 자가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도 실수했고 자기의 생각으로 가뭄 시에 애굽으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데서 도전도 받고 위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수나 위로도 떠난 자에게 있는 것이지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신뢰할 것이 많은 고향에만 머문자에게는

실수가 없는 만큼 도전도 위로도 성취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갈 바를 알지 못하게 하시고 “떠나라” 하심은,

발길 닿는 곳을 “주시겠다.” 하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목사님이 장마만 되면 힘들어합니다.

중국 연길 가서 말씀을 증거 하기로 했는데 공안의 단속이 그전하고 다르니 “오시라” 하면서도 미온적일 수밖에 없었습니

다.

내게 와서 의논하기에 먼저는 “떠나라” 했습니다.

그리고 여정을 블로디보스톡까지 연장시켜 그 곳의 탈북자들이나 고려인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찾도록 권했습니다.

 

3)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전적으로 순종할 수도 없고 미지에 첫발을 내딛지도 못합니다.

이런 광대하신 하나님을 단시간에 알 수도 있을까요?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신비로우신 분이시지만 기꺼이 우리에게 나타나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고 믿으라고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시작은 하나님이 찾아와 주심이고, 그 응답이 최초의 믿음이고,

믿음의 행동은 본토친척아비의 집을 “떠남”입니다.

이런 후에 아브람은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삶에서 하나님을 품는 일입니다.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

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은 일꾼보다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일꾼은 부르실 뿐입니다.

모든 일꾼의 존재목적이 무엇인가요? 예배자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비례합니다.

 

전군의 구국성회가 오산리금식기도원에서 있었습니다.

한 군종병이 첫날 개회예배에 상처받았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데 온갖 순서자들이 축하와 격려사를 하더랍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만 주목하고 집중합니다.

 

성도는 운명의 하나님을 믿고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운명주의하고는 다릅니다.

아브람이 75세에 그냥 다른 영감들처럼 고향에서 머물었다면 어떨까요?

 

금번 월드컵에서 축구신동이 나왔지요?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

운명적으론 운동선수의 부모밑에 태어났지만 19세 청년이 남들처럼 맥주잔이나 기울렸다면 동물적 스피드와 순발력으로

프랑스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승리하게 했을까요?

그는 움직였습니다.

어찌 축구만이, 음바페만이, 해당된 말인가요?

이 음바페는 선행으로도 유명합니다.

월드컵출전 수당전액을 장애아동 스포츠활동 자선단체에 기부도 했습니다.

 

결론)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 투자하십시오,

아는 것만큼 믿어 행동할 수 있습니다.ㅣ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여정에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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