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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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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7-24 02:08 조회 57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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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팝송 중, Boney M - Rivers of Babylon 있습니다.

본문을 갖고 노래했는데 슬픈 역사와 가사지만 비트가 좋아서 춤곡으로도 유명했습니다.

미국이 망해가는 듯해도 아직은 성경에서 가사를 따올 만큼 신앙이 있습니다.

 

1) 배경

시편 137편의 배경은 무엇인가요?

“왜 그들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했을까요?

 

바벨론이 유대족을 포로로 끌고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수금으로 자신들을 노래하라고 강압적이었습니다.

유대족,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듣고 하나님을 떠났었습니다.

이들의 죄를 하나님은 지적하셨고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회개를 촉구했어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가 마침내 화를 당한 것입

니다.

그리고 이제는 후회하며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성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하나님 품안에 있던 시절이 복이었던 것입니다.

좀 가난했어도 조국에서의 자유와 평안이 있었고, 하나님의 간섭이 귀찮았지만,

그 간섭이 은혜였고 사랑이었던 것을 비로써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움과 후회를 갖고 회복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137: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2) 후회와 그리움

사람만큼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동물이 있을까요?

늙어서는 젊어서 잘못산 것을 후회하고, 죽을 때는 평생을 후회하고, 심지어는 죽어서도 “믿을걸” 하고 후회한 답니다.

이런 일이 누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후회는 그리움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의 얘기를 들어 보셨나요?

“건강을 잘 지켜,, 건강 잃으면 다 소용 없어” 합니다.

“사람 잃은 사람의 얘기를 들어 보셨나요?

“잘 나갈 때 우쭐거렸더니,,지금은 찾아주는 사람이 없네”

 

친한 친구는 40대에 강남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양평에서 전원주택 부지 팔고 있습니다.

늙어가는 데 곁의 안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나? 젊어서 안 한 일을 지금 할려니 힘들어,,

누가 이런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해줬어,, 몰랐어“

그러나 안 해준 것이 아니라 안 들었던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귀를 막고, 죄, 회개에 대해서는 아주 싫어합니다.

그거 아시나요?

죄에 매여 있으면 하나님과 죄와 회개에 대하여 얘기조차 싫어합니다.

이것을 천박한 신앙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매이는데 태어나면서부터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이걸 말씀하고 있지요? 죄에 매여 있으면 사망이 왕 노릇하고,

하나님께 매여 있으면 은혜 안에서 그가 왕 노릇하게 됩니다.

주님이 율법아래서 나고 율법에 의한 죽음을 당한 것은 우리를 그 율법에서 자유케 하며 하나님께 속하도록 하신 것입니

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기를 힘씁니다.

빛이 비추면 어둠이 쫒기 듯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믿음이 그를 거룩함에 튼튼히 세웁니다.

사랑의 하나님만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진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먼저 경외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아주 예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삶 전체를 맞춥니다.

여기서 평화와 평안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족속은 아니 유대 성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감된 일이 발생했고, 원수의 나라에 끌려가서 원수를 위한 노래를 부르며, 원수가 망하고 원수에게서 해방되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역사를 교훈 삼는 것입니다.

 

3) 문제는 죄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죄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 그래서 윤리도덕이 믿는 대로 맺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지 않고 영화롭게 하지 않는 죄,

레위기 말씀대로라면 속건 죄, 속제 죄, 화목제가 필요한 거지요.

 

나의 범죄로 주님이 대속하셨다면 죄에 대해서는 철저해야 합니다.

주의 속량을 너무 쉽게 믿는 나머지 죄를 가볍게 여기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괴롭고 힘든 이유를 너무 시대나 정치 탓으로 여기고 운수 탓으로 여기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디 있나요?

유대가 바벨론에 포로된 된 것이 정치군사외교의 허약한 탓이 아닌가요?

그러나 실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였고 죄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매사를 죄의 문제로 확대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좀 과해도 괜찮은 시각 아닌가요?

내 죄, 부모의 죄, 시대의 죄, 죄가 많으면 악이 번성하고 고통이 따릅니다.

 

사무치게 적용할 구절이 있습니다.

함께 읽을까요?

시137: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자기 기쁨을 청

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에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입니다.

삼손이 머리털이 밀리우고 쇠줄에 매여 연자 맷돌을 돌리는 재주꾼이 된 모습입니다.

찬양대원이 술꾼들을 위해 노래하는 모습입니다.

성도가 세상에 매인 모습이기도 하녀 세상을 사랑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경우 어떻게 할까요?

이들은 탄식했고 곧 뉘우쳤습니다.

후회만이 아닌 간절함만이 아닌 돌이킴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4~5절입니다.

시137: 4~5)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가 오른 손

이 그 재주를 잊을지어다

 

우리에게 이런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 각성입니다.

마침내 이들은 본국으로 귀환된 후 회개와 개혁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스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

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진정한 영적 각성에는 조직이나 위원회보다 눈물과 애통이 있었습니다.

너부터가 아닌 나부터였습니다.

 

지금 우리 신앙에 뭐가 필요한가요? 은혜지요? 어떤 은총이 임해야 할까요?

눈물의 죄자백과 확실한 회개를 주의 보혈에 담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귀는 먹고사는 일에 매진하게 합니다.

보혈의 공로를 헛되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기 보단 받기를 청하는 신앙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무슨 노래가 나와야 할까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도다” 해야 겠나요?

 

결론) 역사는 반복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닦고 조이고 기름 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울리기 전에 먼저 그 앞에서 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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