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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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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7-29 23:07 조회 48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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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시대에 희망을 주는 표적일수도 있고 안정을 주는 지혜의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과학과 사회운동이 세상을 바꾸었어도 사람은 바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구원

여러분은 구원을 받으셨나요?

거주지가 주님 품안임을 믿으시나요?

그 구원이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도임을 믿으시나요?

내 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고 의는 부활하여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나요?

이런 사람의 특징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 됨을 고백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직 전도나 선교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 그리고 여기에 기회를 만듭니다.

 

사도바울이 훌륭한 사도요, 선교사인 것은 바로 이런 면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롬1:13~14)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

에서도 다른 이방인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누구나 관심사가 있습니다.

골프에 꽂혀 골프얘기를 하며 골프방송을 즐거이 보는 사람을 압니다.

건강이나 정치나 경제나 건강에 무한 관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관심은 무엇인가요?

골로새서 3장에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하심이 무엇인가요?

사도 바울의 관심은 사람이었고 저들의 구원이었기에 여기저기에 편지를 썼고 그곳을 찾았고 전도의 문이 열려지기를 기

도부탁 했었습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개 눈에는 개가 보인다면 성도의 눈에는 사람과 구원이 보여야 하는 이치입니다.

 

종종 기도부탁을 받습니다만 일반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좀 더 눈이 밝아 죽은 영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틴루터가 어느 날 농가에 들렸더니 이런 글이 쓰여 있더랍니다.

“ 나는 어디서 온 것을 알지 못하며, 나는 무엇 하러 온 것을 알지 못하며, 나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이때 루터는 고쳐서 “나는 어디서 온 것을 알며, 나는 무엇 하러 온 것을 알며, 나는 어디로 가는지를 안다.”라고 읽었답니

다.

단순한 차이가 같지만 성도임을 아는 고백입니다.

장로교 신조가 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첫 문답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냐?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

과 그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 목적의 최고는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전도하며 구원에 매진하는 일입니다.

 

2)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람마다 부끄러운 것이 있고 자랑스런 것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비밀히 하고 자랑스런 것은 드러내고자 합니다.

 

성도는 복음이 자랑스러워야 합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

이라 먼저는 유대인이게요 그리고 헬라인이게라

일반적인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를 멸시하며 무식한 것으로 여겨도,

구원 얻은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표적을 말하고 논리로 설명하는 일이 많습니다.

구원 받으면 부자가 되고 치료가 되고 하여 축복성회나 은사성회를 하곤 합니다만

분명한 자랑은 아니고 복음은 더더욱 아닙니다.

표적이 없고 논리가 부족하여도 구원 받은 내가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제가 아는 권사님이 계십니다.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분입니다.

구원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이후 그녀의 성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만

삶이 달라져서 혼자 노방전도를 시작했습니다.

학원선교도 했고 마침내 생소한 군부대를 찾아 전도하기 시작 했습니다.

부도가 나서 경매가 들어 온 날도 전도했습니다.

차비가 없어도 걸어 나가서 전도했습니다.

주님을 자랑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능력의 산체험자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할 때 지혜의 영으로 입을 지켜주시고 담대함도 주시는 것입니다.

 

흔히 먹고 사는 일에는 부끄러움을 초월합니다.

그러면서 예수구원 불신지옥을 전하는 데는 비굴하고 비겁하리만큼 부끄러워합니다.

여기에는 평소의 성도답지 못함도 한 몫 했습니다.

그러나 전도나 선교는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마귀는 항상 부추킵니다. “너 혼자나 잘 믿어라”

사도바울은 핍박자에서 선교자로 한순간에 돌아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 역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는 과정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

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의 삶은 단회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매장의 상인을 보면 소극적인 상인과 적극적인 상인이 있습니다.

어떤 상인은 친절하지도 않고 가격도 모르고 상품은 더 모릅니다.

반면 어떤 상인은 확신과 긍지를 갖고 손님을 대합니다.

누구에게 신뢰를 하겠나요? 누가 상품을 더 팔겠나요?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는 적극성만이 아닙니다.

확신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주신 예수그리스도는 내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도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기에 복음입니다.

파는 것이 아니라 거저 받았기에 거저 줄 수 있는 기쁨도 됩니다.

그런데 왜 부끄러워하시나요? 이것은 잘 못입니다.

자랑해야 합니다.

 

신앙을 논하는데 사람들의 반응들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신앙에 대한 것을 듣고는 거의가 믿기가 어려워들 합니다.

그래서 믿기 위해서는 표적이나 혹은 설득력 있는 이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내가 하나님의 능력인데 뭐가 더 필요한가요?

표적은 없고 이론적으론 설명하지 못해도 부끄러워말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세상의 일은 결국 힘입니다.

그 힘이란 폭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참다운 힘, 실력을 가진 사람, 진리를 얻은 사람은 마침내 이깁니다.

증거를 들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멸시 천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능력입니다.

뒤나미스,, 강력입니다.

신앙은 이런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받아 드리고 믿음으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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