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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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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7-29 23:07 조회 541회 댓글 0건

본문

훌륭한 자녀를 뒀다는 일은 좋은 집이나 차를 가진 일보다는 더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웃게 하셨다”는 이름대로 아브라함에게 기쁜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이삭의 훌륭함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는 부모를 통해서 유전되고 학습된 결과들입니다.

 

1) 이삭

이삭의 생애를 보십시오.

아버지의 판박이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얻고자 오랫동안 기도했던 것처럼 이삭도 자식을 얻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께 독자이삭을 드리는데 순종했듯이,

소년이삭도 100세의 늙은 아버지께 순종했습니다.

아버지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왕이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던 것처럼

이삭도 그랬습니다.

좋은 것만 학습되고 유전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나쁜 것도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래서 앞선 자가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바로 이렇습니다.

내 부모를 닮았고, 따라하며,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수시킵니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갑니다.

이상과 현실이 동행하기에 뭐든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누군가의 글처럼 “꿈도 없는 놈”, “꿈만 꾸는 놈”, “꿈을 이루는 놈” 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은 어떤가요?

“기도하지 않는 신앙”, “기도만 하는 신앙”, “기도 응답되는 신앙” 이 있습니다.

이삭은 어떤 신앙인가요?

이삭이 농사지어 100배를 얻었다는 것은 신앙과 수고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하고 더하여 하나님의 복을 극대화시켰습니다.

“마침내 거부가 되어”

 

이러한 이삭의 말년은 어떤가요? 믿음의 완성이 되었습니다.

히11:21)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여러분은 어떤가요?

 

2) 이삭의 믿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교는 운명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운명에 붙잡힌 운명주의는 아닙니다.

작은 생명인 송사리조차도 강물을 거슬려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러한 이삭의 최상의 내면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창25:21)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

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는 일을 운명으로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기를 무려 20년 동안이나 했고,

마침내 40세에 결혼한 이삭이 60세에 두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생물적으로 40대 보다는 50대에 그리고 60대가 임신이 희박합니다.

그럼에도 그가 믿음이 연약해지지 않았던 것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난 아들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 기도할까요? 그리고 20년 넘는 기도는 무슨 내용일까요? 많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응답되지 않았어도 지금은 응답중이라는 사실로 믿고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이삭의 간구도 일찍이 하나님이 들으셨지만 그 응답은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진 것을 볼 때 우리도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

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여쭙는 모습입니다.

창25:22) 아이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 지라 그가 가로되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서 묻자온대

 

이런 상황을 짐작할 수 있나요?

아내 리브가가 배가 아팠을 것입니다.

처음 겪는 아주 이상하고 난처하고 난감한 상황 아닌가요?

리브가와 태중의 아기들이 위태하고, 자신과 집안의 위기도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침착했고, 신중했으며, 사람이나 방법을 찾기 보다는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게 신앙이고 이게 구별이고 거룩입니다.

이런 모습은 훈련되고 습관 되어야 됩니다.

다윗도 자주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공격을 당했으면 당연히 공격해야 할 텐데 먼저 하나님께 물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또 다른 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간구는 잘하는데 여쭙는 일이 많이 부족합니다.

 

흔히 “저 사람은 교양이 있다 없다”

또는 “저 직원은 정리를 한다 못 한다“를 평가하거나 받습니다.

성향이지만 훈련이고 습관이기도 합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여쭙는 이 모습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므로 마침내 거부가 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주시지 감당치 못 할 사람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행여 우리에게 감당치 못 할 환경이 왔다면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그 환경을 통해 감당할 사람을 만드시며 주실 복이 있기 때문으로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쭙는 신앙과 훈련이 이루어야 합니다.

 

3) 하나님 지식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잠잠하지 않으셨습니다.

간구와 여쭙는 일에 행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보편적 하나님이시지만 개인적인 하나님도 되십니다.

유대인의 하나님이시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십니다.

이들 각자에게 동일하지만 또 다르게 역사하셨고 응답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시지만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너무 크고 깊어 다 이해할 수 없기에,

누구의 말만 듣고 하나님을 섣부르게 이해하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국을 다녀온 사람마다 중국의 얘기가 다릅니다.

지역이 워낙 광대하여 문화와 음식이 다양해서 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더 하지 않겠나요? 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힘써 알아가야 하는데,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경외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은, 이처럼 들었던 하나님을 경험해 가는 과정입니다.

여러분은 간구하므로 응답 받은 일이 있나요? 그 응답의 힘으로 간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여쭌 적이 있나요? 그 관계와 친밀함이 비밀이 됩니다.

 

자녀를 양육하다 보니 부모는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하곤 합니다.

부모자식 간에 친밀함이, 내밀함은 사랑과 용기를 줍니다.

 

신앙도 내밀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깔아 논 내 삶의 멍석에서 하나님과 내밀함과 친밀함을 이루는 일입니다.

사랑받는 사람은 자존감이 튼튼해서 자존심이 약하지 않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에 임신이 안 되는 일 같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 가요?

애쓰고 수고했는데 결과가 없다면 간구는 물론 하나님관계부터 검증해야 합니다.

처한 상황이 이상하다면 “어찌할꼬” 근심만 할 것이 아니라 역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믿음의 반대는 염려와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합니다.

주의 속량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계는 소원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지 못한 탓입니다.

 

결론) 마귀는 관계 이상을 신분이상으로 극대화 시킵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 있어서 이삭입니다.

주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귀한 자녀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지 못하니 점점 땅만 생각하는 동물만 되어가는 것입니다.

닭장속의 독수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날개를 접고 닭소리를 내면 안 됩니다.

닭장 밖의 하늘을 보고 날개를 펄럭이어야 합니다.

간구며 여쭙는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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