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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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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8-29 21:41 조회 64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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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압니다.

무분별한 난개발과 온갖 생활용품의 생산과 처리가 온난화를 부추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미래에 갈수록 더 심하게 발생할 것입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했는데 이런 현상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도 말없이 보복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떨까요?

 

1) 니느웨 성

하나님은 자연과 달리 먼저 말씀하시고 보복하십니다.

오늘의 첫 구절인 무엇인가요? “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니느웨성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 아닌가요?

 

니느웨성은 나훔 선지자가 지금처럼 경고하던 그 전에,

약 150년 전에 이미 요나 선지자로 부터 경고 받고 회개했던 전력의 성입니다.

그때는 어땠나요?

욘3:8~10)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하

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그런데 이때의 구원과 회개의 감격을 잃고 다시 범죄하니 나훔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가 주어졌고 회개하지 않아 결

국 지구상에서는 영영 사라진 성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 근대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하면 해가지지 않는 강대한 대영제국이었습니다.

이때는 존 웨슬레 같은 신앙지도자들이 영국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존 웨슬레가 누구인줄도 모릅니다.

지금의 영국은 어떤가요? 늙은 여왕처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개혁당시의 유럽과 지금의 유럽은 어떤가요?

 

현대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철학의 부재입니다.

생각이 없다는 의미이고 이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생각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바쁘기는 한데 방향을 잃었고 지식은 있어도 지혜가 없어졌습니다.

 

에서가 부여 받은 장자권은 대단한 복입니다.

하늘에서부터 내리운 제사장될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한 끼 팥죽으로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창25:34)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이처럼 미래보다는 당장에, 장자권 보다는 죽 한 그릇을 택한 이유는 생각이 없어서입니다.

이런 일이 현대인들에게 너무 많습니다.

아니 성도에게도 많습니다.

오직 당장을 위한 팥죽에만 몰두하고 나중을 외면합니다.

이상이 없어 사랑이나 희망이나 믿음을 업수히 여기고 있습니다.

에서는 배나 고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체 맛이란 재미를 찾아다니고 있고,

현실주의로 치닫고 있습니다.

히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럼에도 교육과 신앙이 이럼을 부추키고 있는데 교육은 실용주의로,

신앙은 기복주의로 흐름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에서는 곧 후회했고 이때 뒤바뀐의 운명이,

큰자가 작은 자를 섬겨하는 일은 지금껏 지속되고 있습니다.

니느웨 성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은 무엇인가요? 에서와 같은 관심, 같은 처신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2) 하나님의 경고

하나님의 경고는 매우 강력하고 애닳습니다.

사랑에 기인하기 때문이며 또 오랫동안 참으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한다면 우리의 관심을 당장 보다는 미래에,

팥죽 보다는 장자권과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신기하게 관심이 바뀌면 행동도 달라지고 삶도 달라집니다.

 

이삿짐 쎈터 하던 친구가 돈벌이가 좋던 때에 두가지 암이 왔습니다.

이 병으로 인해 멀어졌던 하나님께 되돌아갔고 지금은 이삿짐 쎈터를 처분허고 용달차를 사서 자족하며 삽니다.

최근 그의 아들이 잘되었기에 “감사헌금 드렸어?”하며 물었더니 “진작에 드렸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철난 소리를 했습니다.

“사는게 뭐야,, 이젠 편하게 살려고, 에어컨 쐬면서 수박 먹고 있어” 했습니다.

 

아주 친근한 사장님이 계십니다.

소심한 탓에 은퇴 후를 늘 걱정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은퇴 후의 걱정을 안 하고 하나님을 바라 봅니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큰 뜻은 안식하라 입니다.

하나님과 허니문을 즐겨라 입니다.

아담하와가 여섯째 날에 창조되고 곧 안식일 맞이해서 안식한 것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자들을 제자로 부르신 이유는,

첫째로 함께 있기를 원해서입니다.

그럼에도 이 관계와 이 목적을 외면하기에 행복하지 못하고 수고의 떡을 먹지 못하는 일이 태반입니다.

 

흔히 돈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습니다.

옛날에 비해서 행복이 있던가요? 더 불행한 것은 무엇인가요?

소유가 좋으면 자긍심이 든든하고 자존심이 좋아진답니다.

그래서 불타는 외제차라도 사고,

온갖 명품으로 치장하지만 공허함은 더 큰 병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자기식의, 세상의 방식을 추구한 탓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생사와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습니다.

하나님만이 주관자이기 때문입니다.

나1:2)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

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반대적인 모습을 또 보십시오.

나1:7~8)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를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하나님을 대적한 국가와 왕들과 민족들을 꼽아 보십시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앗수르부터, 바벨론, 애굽, 로마, 나찌당, 일본제국, 공산당 등,

반대로 하나님을 잘 섬겼던는국가와 민족을 꼽아 보십시오.

그리고 그 시대를 보십시오.

작게는 개인도 보십시오.

 

지난 8월 3일에 국민일보 전면광고에,

“자유통일과 미군철수 반대”, “8,15한국교회 미스바대각성 구국금식성회” 관련내용이 기재되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항목

이 있었습니다.

붉은 글씨로 “문재인 정부는 하나님께 싸움을 걸었는가! 하나님과 싸워 이긴 역사는 없다!”

그리고 그 밑에 붉은 활자로 역시 “우리는 여당과 야당을 넘어서서 오직 하나님편이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세력이다. 이러한 우리를 오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국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잊고 있습니다.

세월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교회부터 교육과 지도자들이 이 모든 은혜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이대로 나가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정권이나 정치보다 그 전면광고처럼 “본질적 문제는 한국교회이다.” 했던 것이 맞습니다.

 

3) 하나님과 나

니느웨를 고대의 성으로만 여기지 마십시오.

현재의 나로 여기십시오.

살기 어려운 것이 누구의 탓으로만 여기지 마십시오.

당시의 니느웨 성은 앗수르제국에게 붙잡힌 상태였지만 그래도 그 책임은 니느웨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꿀을 사모하는 입맛에서 떠나 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회복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나1: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트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개인적으론 한국교회의 원로들을 지근거리에서 듣고 봅니다.

비슷한 년 배들인 이 분들을, 개인의 건강, 자녀들의 모습, 현재의 활동 등으로 구분하여

한 줄로 세운다면 누가 앞설까요?

 

말이 많은 지도자, 말을 잘하는 지도자, 여전히 말하는 지도자가 있습니다만,

여전히 신앙고백과 일치된, 경건과 전도에 힘쓰는 지도자가 계십니다.

본인은 물론 자손들에게도, 교회에도, 스캔들이 없었고 동서양 모든 교회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매주 감옥을 다니고 군부대를 찾고 탈북민과 그들을 보듬는 어른입니다.

복음 전도에 열심이지만 복음에 합당한 삶과 정직과 의를 실제적으로 경영에서도 실천하곤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그를 만난 것이 은혜였다”며 고백하곤 합니다.

 

부흥의 시대에는 성령께서 빛으로 의와 죄와 심판을 조명하시기에 잘 돌아서곤 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쇠퇴의 시대에는 어두움이 짙어서 구별이 안 됩니다.

 

결론) 우리는 어디에 마음을 둡니까?

치유, 축복 보다는 애통, 회개에게 마음을 둬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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