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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8-29 21:43 조회 4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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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탔는데 앞좌석 뒤에 성경말씀이 크게 코팅되어 걸려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기사가 신천지였습니다.

얘기가 시작되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만 내렸습니다.

그들도 성경적으로 믿는다했습니다.

이단들이 잘못된 이유는 주로 예언서나 비유를 멋대로 해석하는데 있습니다.

 

1) 다른 복음

여러분은 로마서가 어려운가요? 요한 계시록이 어려운가요?

이 둘은 다 성도들을 위해 쓴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가 어렵습니다.

로마서는 논문인 반면 요한 계시록은 그림책이고 환타지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요한 계시록을 읽고 나서는 “아주 재밌다” 했습니다.

이해를 했나 싶어 물었더니 “ 예수님이 이기셨잖아요” 했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신앙이 있다는 성도들은 왜 어려웠을까요?

해석을 하려고 했고 자기주관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의 압축본입니다.

믿음과 복음을 다시 소개합니다.

당시 그들은 영지주의라는 이단과 맞섰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일이 많습니다.

예를 든다면 예수십자가 하면 그것도 나무 십자가 인데,

거기에 자꾸 무엇을 더하여 모양을 내는 이치입니다.

십자가 끝을 둥글게 하거나 연결부분을 멋들어지게 돌린다거나 아니면 십자가에다 비둘기

날개를 덧낸다거나 또 거기다 왕관을 얹는다거나. 그 십자가를 금 십자가로 한다거나,

결국 복잡한 십자가, 이상한 십자가가 된 모양입니다.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택시기사도 자신도 기존교회를 36년을 다녔는데 어쩌다 신천지성경공부를 통해서 새로운 말씀을 접했다는 것입니다.

예언이나 비유는 억지로 꿰맞추면 맞추어집니다.

전통적 성경적해석이 아니면 궤변이 되는 것인데 이단들은 자신들이 맞고 기독교전통은 잘못이라고 치부합니다.

이런 이들이 무엇인가요?

벧후3:16) ~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

니라

갈1:9)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이들의 특징은 정치적으로 종북좌파들과 비슷하여 선전선동에 능하고 전향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2) 내 안의 다른 복음

문제는 내 안의 다른 복음이 문제입니다.

예수십자가를 믿는다면서 다른 가치관, 다른 구원관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 다른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유식하면 유식한 대로, 경험치가 많으면 많은 대로 색이 되고 무늬가 되었습니다.

철학은 삶의 목적을 말합니다.

인문학은 의미를 말합니다.

그러나 철학의 사조도 바뀌고 인문학도 돌고 돕니다.

이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불변의 질문과 답을 줍니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요? 왜 사나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기위해서 삽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성령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 질문과 답이 복음안에 완전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으로 만족하고 복음으로 됐다가 아니라 그 외에 또 다른 무엇의 필요를 인지한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을 붙잡

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저주로 가는 것입니다.

 

칸트의 명언이라는 글을 보십시오.

평생을 독신으로 산 칸트에게 어느 날 제자가 물었답니다.

“ 선생님, 어떤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때 칸트는 대답하기를 “아름다운 여자보다 돈 있는 여지와 결혼하시오.

아름다움은 늙으면 사라지지만 돈은 세월이 가면 더 필요하지” 맞는 말이지만 복음은 아닙니다.

 

이런 영향을 대개는 다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하나요?

히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

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믿는 성도들이 돈을 사랑하는 것은,

돈에 매여 있는 것은 신앙용어로 우상 숭배하는 것입니다.

 

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떤가요?

죽음을 생명에 대한 신비의 일환으로 여기질 않습니다.

여전히 망하는 것, 차가운 것, 끝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의 소감을 들었습니다.

3000년쯤 된 미이라는 마치 북어 같았답니다.

그리고 그 옆의 글을 보니 그 손에 볍씨가 몇 알 있어 흙에 심겼더니 났답니다.

이 생명이 오묘해서 미아라 손에서는 죽은 듯했는데 흙에서는 발아했다며 감탄했습니다.

 

생명은 이렇듯 발아의 신비, 성장의 신비, 죽음의 신비, 부활의 신비, 회생의 신비가 있습니다.

가장 작은 씨앗이 성경은 겨자씨앗이라지만 실제는 편백나무씨앗입니다.

무슨 생명이든 씨앗이든 알이든 쪼개보면 없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되고 때가 되면 발아 하곤 합니다.

최근에는 가게의 계란 판에서도 병아리가 부화했었습니다.

이런 생명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회생합니다.

죽어야 사는 신비가 있어서 입니다.

주님은 이 생명을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믿느냐

 

참 복음에 붙잡히고 매이려면 이런 다른 복음에서부터 죽고 자유스러워야 합니다.

믿음은 이런 안목을 제공해 줍니다.

 

3) 참 복음

생각해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나요?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아무 의미가 없음도 믿나요?

지금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요? 그 해결의 답은 무엇인가요?

주님은 십자가위에서 외치셨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이 외침이 나와 여러분을 향한 답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친구목사님께 헌신예배를 부탁했기에 본문과 제목을 전화로 받았습니다.

마침 통화상태가 불량했나 봅니다. 청함을 받은 목사님은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했는데 초청목사님은 못 알

아듣고서는,

“뭐라고? 다시 불러봐” 했답니다.

불러주는 목사님은 다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했는데, 상대방은 “뭐라고?” 했습니다.

불러주는 목사님은 다시 알려주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그러면 됐지 뭐가 또 필요해?” 했습니다.

이런 헤프닝 후에 설교할 주일에 주보를 보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러면 됐지 뭐가 또 필요해?” 였답니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문자로 제목을 알려주고 그 옆에 고맙다는 인사말로 “쎄쎄” 했더니

쎄쎄 까지 제목으로 되었었습니다.

 

여호와가 목자시니 그러면 됐지 뭐가 또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신 후 다시 살아나셨으면 됐지 그 이상 또 뭐가 필

요한 걸까요? 다른 복음은 있을지라도 소용없습니다.

 

은사주의가 성행할 때 한국교회는 분열되었고 적극적 사고나 목적이 이끄는 삶이니 무슨무슨 운동이 유행을 한 적도 있었

습니다만 잠깐의 유행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은 이성주의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반복 될 것입니다.

 

결론) 속지 마십시오.

부뚜막에 소금은 넣어야 짜고 구슬은 꿰어야 보배가 됩니다.

주님만 믿고 붙드십시오.

그를 기쁘게 하며 동행하기를 힘쓰시오.

오늘 여러분을 시험해 보십시오.

내 안에 주님이 계시는가?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가? 무엇을 의지하는가? 두려워하는가?

날 대속하신 주님으로 만족한다면 좋은 신앙이고 안전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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