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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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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8-29 21:44 조회 60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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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이 천국은 주를 믿을 때 내 마음에서부터 임하고 마침내 장소적 천국으로 입성합니다.

그러나 천국을 말하고 믿음을 말해도 주를 믿지 않으면 그는 마음에서부터 지옥이고 마침내 죽어서도 지옥행입니다.

 

1) 사람의 마음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이가 누구실까요?

그의 선언은 어떤 것일까요?

렘17:9)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막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

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

니라

최근 우리의 마음을 슬프고 아프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실상은 늘 반복되는 일이지만 미성년자인 중학생동급생들이 같은 친구들을 몰빵하고 성폭행한 사건입니다.

그동안 이런 경우 미성년자이기에 몰랐을 거라며 면죄부를 주었지만 여론은 그렇지 않아 미성년자 특례는 사라질 듯합니

다.

그렇다면 만사를 안다는 노인들은 어떨까요?

영월에서는 70대를 넘긴 노인들 7~8명이 지적장애여성을 성폭행했고 동네는  거반 알면서도 침묵했답니다.

거기에는 그녀의 보호자인 큰아버지도 있었기에 충격파는 큽니다.

그러나 이는 한 예일 뿐 더 추악한 사건은 셀 수 없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십시오,

고대사회인데도 현대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나요? 악은 신구식이 없고 인종도 지식의 유무를 초월합니다.

 

악은 아이답게, 어른답게, 신사답게, 교수답게, 성직자답게, 를 주문하지 않습니다.

이를 이기는 방법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뿐입니다.

물은 주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회개하는 일이고,

성령은 악에서 지켜 거룩을 보존해주시는 역할을 이루십니다.

여기에 내가 할 바는 없을까요? 은혜의 거듭남이라도 의지적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그럼에도 평생에 이런 악과의 씨름은 절대적이고 그럼에도 유감되게 승리보다는 실패가

더 많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 공로가 아닌 주의 은혜로 천국을 입성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지켜라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건강을 지켜라” 하고 “재산을 지켜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을 지켜라” 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이란 쉽지 않습니다.

성을 빼앗는 일만큼 어렵답니다.

남의 마음을 얻는 일도 어렵지만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이 그처럼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남다름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죄악에 대한 사고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 가치관이고 하나님 있는 세계관입니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은 이를 양성하는데 우리의 경우 무신론적 사고와 비성경적 가치관을

교육 받습니다.

이제는 이런 기독교적 가치교육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볼 "견"과 와 볼 "관" 의 차이를 아시나요? 같은 “본다”는 뜻이지만 차이는 큽니다.

눈으로 봄은 견입니다만 생각으로 봄은 관입니다.

이 관으로 볼 수 있음을 지도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악이 무엇이고 그 결국은 어떻게 되는지를,,

그것의 거울은 인류역사이며 교과서는 성경이 됩니다.

 

둘째는 좋은 습관을 익혀야 합니다.

오를 본문의 의인과 악인은 본능적으로 선악을 이루었습니다.

마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의인들은 주님인 줄 몰랐습니다.

늘 하던 대로 선행과 의로움으로 살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악인은 어떤가요? 마찬가지입니다.

마25: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

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좋은 언어습관, 예배습관, 감사습관, 섬김과 나눔의 습관, 격려의 습관 등을 익히면 좋은 습관은 좋은 미래로 인도합니다.

 

성도는 구습에서 죽고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새 성향이 드러나고 그 새 습관을 이루며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보면 믿음의 정도와 진위까지 알 수 있습니다.

 

3) 작은 자

주님은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의 작은 자는 소외되고 무시되는 세상모든 을의 대표자입니다.

사장보다는 알바생이고, 의사나 간호사 보다는 간호조무원이고, 정규직 보다는 비정규직이고,

내국인 보다는 외국인 노동자이고, 어른보다는 아이이고 부자 보다는 가난자이고 식자보다는 무식자이고 정상인 보다는

장애우가 됩니다.

 

그들을 향한 마음의 시선이 있었나요? 그들을 위한 배려가 있었나요?

대체로 우리는 내가 어디든 중심입니다.

위험한 처신입니다.

저들이 없으면 나도 없게 됩니다.

하늘이 슬프면 내가 슬프고, 땅이 고통 받으면 내가 고통 받고, 강과 바다가 품격을 잃으면 나의 품격도 없어집니다.

벌써 반격이 시작되지 않았나요?

 

천국은 생명수가 흐르고, 정금길이 있고, 천군천사들이 날고, 찬양하는 곳이라지만

구체적으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큰 자가 작은 자를,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먼저, 자원함으로 배려하는 세상입니다.

사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

럼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상적인 사회상 같지만 현실적인 사회가 됩니다.

내가 그렇게 하면 되며 꼭 미래적이질 않습니다.

“그 때에 ” 꼭 재림 후만 의미하나요? 아닙니다.

내가 사는 이 현장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케냐 라이로비에 ‘존 다우라’라는 소년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의 학대로 집을 나와 거지가 되었습니다.

 

이 거지소년은 정차된 운전수에게 손을 내미는 구걸로 연명했습니다.

이런 거지 소년이 얼마나 많던지 사람들은 귀찮아하고 사회적 문제까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소년은 정차된 차에 손을 넣고 구걸을 했는데 그 차에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여성이 힘겹게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흠칫 놀라 “왜 이런 걸 끼고 있어요?”

여인은 답했습니다. “나는 이게 없으면 살 수 없단다. 수술 받아야 하지만 사실 돈이 없단다.”

이 여인은 ‘글래디스 카만떼’ 라는 여성인데 그 여성역시 남편의 구타로 폐 손상이 온 것입니다

 

소년은 구걸하는 자신 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음을 깨닫고 “ 제가 잠깐 기도할까요?” 며 제의했고 마침내 눈물로 기도하

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분의 병을 제발 낫게 해주세요.”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인 구걸한 돈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옆의 사람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고 이 소식으로 거지소년은 ‘니시’라는 부인에게 양자로 갈 수 있었습니

다.


결론) 천국이 무엇인가요? 아니 어디 인가요? 천국의 문은 어떨까요?

그 입성 비결은 무엇인가요?

너무 거창하게 믿지 마세요.나를 보면 주님도 보이지 않지만 작은 자를 보면 주님도 보이고 천국도 소유하게 됩니다.

천국은 성경을 많이 읽고 알아서가 아닙니다.

주의 공로에 빚 진자로서 그 빚 갚는 자세로 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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