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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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요?
그 인생에 대해서 인문학은 명답을 제공하지만 성경은 정답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생은 나그네가 맞습니다.
시적 표현까지 붙인다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정처 없는 삶”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은 순례자입니다.
하나님을 뵌 자는 자신이 누구인 줄 알며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1) 요셉과 야곱
요셉과 야곱은 우리의, 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참 친근합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리고 또 감옥살이를 하고, 야곱은 속이고 속임을 당하고, 온갖 풍랑을 겪고, 둘 다 험악한 세월을 삽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요셉은 존귀한 총리,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이 됩니다.
비천하셨지만 지극히 높아지신 주님모습인데,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요셉이나 야곱의 생에서 공통된 것이 있습니다.
운명과 내 할 바입니다.
우리 모두는 운명적입니다.
내 주관과 소관이 아닌 바가 있어서입니다.
태어남, 죽음, 이 모든 시기와 때는 운명적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들어가고,
야곱이 쌍둥이로 태어나고 등 다 운명이고 섭리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처신하며 사느냐에 따라 내가 달라지고 주변의 반응이 다릅니다.
요셉은 성실하여 신임을 얻었고 야곱은 아버지와 형의 얼굴을 피해야 했습니다.
잠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그럼에도 또 하나님의 개입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달리기를 잘해도 시기와 우연으로 선착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인데,
그게 하나님의 개입이고 특별한 은혜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일정해서 항상 동일합니다.
세상 정의는 시대와 지역마다 다릅니다.
보수의 정의가 있고 진보의 정의가 있습니다.
아니 과거의 정의와 현대의 정의가 그리고 미래의 정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언제나 동일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아래서의 궁극은,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본문의 요셉과 야곱이 그 모습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는 성도를 향해서 선을 행하라 의를 행하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2) 세월의 의미
나무는 세월 따라 나이테가 다르고 뿌리가 다릅니다.
동물은 나이만큼 몸밖에 흔적이 있다면 사람은 가치관가 달라집니다.
10대는 어떤가요? 노는 일, 외모에 신경 씁니다.
20대는 공부와 취업,
30대부터는 사는 일,
그리고 늙으면 죽는 일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일은 이 세월의 두께만큼 자랍니다.
나그네든 순례자든 험악한 세월은 매한가지입니다.
죄된 세상에서의 죄인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있습니다.
렘애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본심이 무엇인가요?
렘애3:40~41)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세월은 하나님의 기다림의 시간이고 험악한 세월은 하나님의 “오라”는 강력한 부르심의 손짓입니다.
세월에 장사 없듯이 연륜만큼 하나님을 알아야 그가 지식은 없어도 지혜자고 무명해도 성공자입니다.
종종 철없는 사람들을 봅니다.
나잇값을 못한 경우인데 "제철 과일과 채소를 못 먹어서 그렇다" 고 합니다.
문제는 대체로 하나님에 대해서 철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일은 당연지사인데 죄가 가로막아 그만 특별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죄를 하나님어린양 예수그리스도로 제거하셨고 하나님께 나오는유일한 길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과학적 효과들이 있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들어 보셨나요?
한 반의 학생들에게 심리검사를 한 후 지도교사가 한 학생을 지목하여 좋은 인지능력이 있다고 칭찬하면 그 효과를 보는
경우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와 상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피그말리온 효과 보다 사람들에게 효과가 없고 칭찬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교만하고 강팍해서입니다.
곧은 목과 강팍한 마음을 깨는 효과가 무엇에 있을까요?
고난이 효과적인 것입니다.
육체가 흑암에 앉을 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벌을 받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의 특성입니다.
3) 치유의 하나님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는 스스로 고장을 진단해도 수리는 못합니다.
생명체는 동식물전체가 치료와 복원은 물론 생산도 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어떤가요?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전쟁은 마귀의 주된 큰 역사입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도 마귀에게 속한 일입니다.
요셉이 팔려가고 감옥에 들어 간 일, 야곱이 속이고,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고, 에서가 야곱을 죽이고자 한 일 모두는 마귀
의 활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그들은 믿음을 얻었습니다.
순간이 아닌 점진적으로 그들은 달라졌고 마침내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급진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점진적입니다.
사람들은 세월의 나그네라면 하나님은 세월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배우는 일은 세월에 대한 이해부터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속에 우리 시간 속에서 때론 기다리시며 때론 일하고 계십니다.
이 세월 속에서 미련한 사람은 애 크는 것과 자기 늙는 것만 보지만,
예수의 사람들은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의 형상에 감격감사 합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방법을 찾습니다.
지구가 멸망할 듯하다면서 우주에서 새 세상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새 세상을 만드십니다.
요셉을 통해서 흉년을 대비하고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 시키셨습니다.
야곱을 통해 민족과 국가를 세우셨고 목욕하던 공주를 통해 모세를 물에서 건지고 임금을 두려워하지 않는 산파를 통해 어
린 모세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통한 일은 무엇일까요? 나를 통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 소명 받았다 하는 일이고 그 일을 이루도록 보혜사가 돕습니다.
결론) 집마다 살림살이가 있습니다.
필요용도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말씀대로 거룩을 지켜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귀한도구가 됩니다.
착각 마십시오, 큰 그릇이 아닌 귀한 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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