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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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아다시피 “그는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물에서 건짐을 받은 그가 훗날 자기 민족을 애굽에서 건져 내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모세만 볼 것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또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동역자를 삼으
셨는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1) 사람들
모세의 부모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세를 낳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키는데도 최선을 다한 부부입니다.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그 상급이 무엇이었나요?
자기 아들을 왕궁에서 자유롭게 키울 수 있었고 삯도 받았습니다.
히브리산파는 어떤가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히브리 남자아기들을 살렸습니다.
그 상급이 무엇인가요?
출1:21)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세상에는 내가 만든 성공이 있고 하나님이 만들어주는 성공이 있습니다.
내가 만든 성공은 어느 한계치에 머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들어주는 성공은 그 한계를 능가합니다.
욥이 그것을 알았기에 늘 조심하며 자식들이 생일파티 후에 범죄 한 것이 있을까 하여 자식들의 숫자만큼 속죄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신앙신앙 하고 믿음믿음하는데 내면적인 것과 외면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두 색이어도 한 모양입니다.
행위로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부모나 산파의 신앙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경외였습니다.
그 경외가 자기자리에서 당장의 형편에서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우리는 늘 변화하는 상황에서 대처하며 삽니다.
같은 하늘이 아니듯이 같은 상황이 없습니다.
이 상황 따라 처신하는 것은 상황윤리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아닌 하나님만 믿고 움직이는 것이 믿음이고 참 신앙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자칫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산파는 자칫 왕에게 충성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 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또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여 스스로 합리화 시킵니다.
이쯤되면 주기철 목사님의 신앙정절은 어리석음이 되고,
일제와 타협하여 신사참배한 교회나 목회자들이 똑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2) 정절
믿음은 정절과도 같습니다.
형편이야 어떻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았기에 소망 중에 인내하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인가요? 자기자리와 지위에서 변질한 것입니다.
이런 곳에는 심판만 임합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언제나 주관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내게는 주관적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객관적으로 판단하실 뿐 결코 주관적일 수 없습니다.
착각 말아야 합니다.
군부대 교회를 출입하는 한 남성전도원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위암수술을 받았답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겪은 일을 “은혜의 충격”이라면서 잠시 간증했습니다.
수술 후 병실에서 있을 때 옆의 암수술 받은 여성이 다가와 자기를 전도하더랍니다.
약 5분정도에 복음을 전하고 영접기도까지 마쳤는데 자신이 성도였지만 그 일에 충격 받아 자신도 전도훈련을 받게 되었
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직위를 지키는 일입니다.
모세의 부모가 산파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직위가 높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형편이 좋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춘삼 씨는 거지 왕이었습니다.
그는 걸인이었으나 다른 걸인을 섬겼습니다.
그의 고백이 무엇이었나요? “빌어먹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거지로써 원망불평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은혜에 보답한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음성에 복지재단이 설립될 수 있었습니다.
룻은 어떤가요?
시어머니와 함께 고향에 왔습니다.
이삭줍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자신을 지키고, 어머니를 지키고, 하나님신앙을 지켜냈습니다.
훗날 나사렛 주님은 이 가문에서 오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이 주변 사람만 의식하곤 합니다.
아니 교양 없는 사람은 주변 사람도 없이 자신만 갑질을질 별짓을 다합니다.
수아가 이 꼴을 당했지요.
인턴사원이 거짓말에 능숙하다 발각되고, 손님들 포인트를 가로채고, 그러고는 점심시간에 나가서 카톡으로 퇴사를 통보
하고 등,
이런 사람은 어디가나 인정받지 못합니다.
3) 순종
우리 신앙은 예배라는 의전보다는 하나님말씀에 순종을 더 크게 여깁니다.
하나님이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 하셔서입니다.
경건의 모양이 발달한 일은 신앙이 사람들을 의식한 경우에서 옵니다.
예배당을 꾸미고, 설교단을 장식하고, 온갖 성의에 문양을 새기고, 다 사람의식입니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은 하나님께 맞춘 생활이고 인품입니다.
경외가 무엇인가요? 모양이 아니라 능력인 것입니다.
유감되게 말세에는 경건의 모양이 강조된다니 참 신앙은 실종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부모가 되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요? 산파가 되었다면?
지금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놓고 믿습니다.
그 섭리와 복 받음도 보았기에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으로 시금석을 삼아 봅시다.
내 사업장이 망해서 폐업을 해야 된다면 페업감사 예배와 예물을 드릴 수 있을까요?
정권에 의해 장관이 되면서 개인적으론 하나님얘기 하지 말고 기독교에 협조하지 말라면 어떨까요?
마귀는 박해만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따라 상황따라 만가지로 넘어지게 합니다.
박해 때는 오히려 쉽고 곤란할 때도 쉽습니다.
마귀의 때, 시험의 때라고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안하고 안전하다 할 때가, 형통하고 섰다고 생각할 때가 더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죄와 심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도록 믿음의 부모나 이웃을 통해서 섭리하셨습니다.
이젠 내가 그 섭리에 따라 다른 이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앞길의 장애를 두려워 마십시오.
장애는 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은 이런데서 시작됩니다.
결론) 현재에 믿음을 자기 자리에서 지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효과도 좋고 효율도 좋지만 거룩을 위해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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