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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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방대하고 그 역사는 깊습니다.
그러나 주제는 딱 두 가지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고 믿는다면 사랑으로 증명하라
주님은 이 일을 몸소 증명하며 본을 보이셨고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대상은 다르고 배경도 다를 수 있습니다만 누구나 이 여부에 결국 울거나 웃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못한 백성에게 반복적으로 또 책망하면서 묻고 계십니다.
호6: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어떻게 하랴
여러분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길 바라시나요?
1) 믿음과 사랑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선순위가 계시되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라 는 주문이신데 곧 믿음입니다.
소극적으로 말고 적극적으로 “힘써”란 말씀으로 촉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만 한 지혜를 주셨고 알 수 있는 증거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요? 인류 역사가, 만물이, 성경이, 예수님이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부정하고 오히려 패역하곤 합니다.
역대사람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두기를 싫어하는데 죄 때문입니다.
이는 심각한 범죄가 되어 하나님의 진노가 쌓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성경 역사와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특별하고 대단한 것인 냥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빛이 없어 영성을 잃었고 무지와 무식으로 이성이 있어도 이성적지 못한 탓입니다.
미국의 메리트호텔은 모든 객실에 성경을 비치하기로 했는데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물론 호텔주가가 떨어진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때 촉구하십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
나 싸매어주실 것임이라
둘째는 하나님 섬김인데 곧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사보다 인애를 원하고, 우리는 예배예배 하지만 하나님은 인애였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대하며 긍휼, 자비, 친절로 대하는 일들입니다.
말로 “배고픈데 먹으라” “추운데 입으라” 가 아닌 실제적으로 내가 대접 받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웃을 내 몸 같이 대접
하는 일들입니다.
셋째는 제사보다 순종을 또 원하셨는데 이런 인애를 거룩으로 여겨 준행해야 합니다.
이런 작은 자들에게 행한 것이 곧 주님께 행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거룩이라면 어떤가요?
흰색이나 검은색으로 일관된 색이나 십자가 문양이나 엄숙한 분위기를 거룩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참 거룩은 죄와 분리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써비스는 많이 있어도 인애가 없습니다.
써비스는 내 중심적이고 인애는 상대 중심입니다.
하나님과 그 은혜를 모르고서는 긍휼을 베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긍휼과 그 은혜를 모르는데 어떻게 인애가 있겠나요?
있어도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을 뿐입니다.
호6:4) ~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큰 회사의 장학회는 대체로 회사의 이미지나 세금감세를 위한 창구가 된 것이 그 예입니다.
우리 신앙은 절름발이 되기 쉽습니다.
예배예배 기도기도에 중독이다시피 되면서도 이웃 사랑은 없었습니다.
이쯤이면 하나님사랑도 아닌 것입니다.
결국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한 예배요,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라면 미숙신앙이 됩니다.
주가 주시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구사하면서 인애, 순종, 의, 진실에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고 제물일 줄 믿습니다.
2) 회개
이스라엘은 태생적으로 하나님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숨 쉬고 사는 모든 일상이 하나님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심각한 잘못이 있었습니다.
회개가 없었습니다.
호6: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본능적으로, 습관적으로 신앙했고 하나님을 인간화 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것과 인간화된 것은 다릅니다.
말씀하고, 구원하시고, 진노하시고 등은 인격화가 맞습니다.
그러나 인간화시킨 것은 자신처럼 죄악에 관해 관대하고 편협적이고 변덕적일 것이라는 지식은 잘못입니다.
우상숭배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형상을 만든 일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을 때 아론과 그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구원의 하나님으로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또 아합왕은 노골적으로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백상들과 함께 섬겼습니다.
이것은 간음과 같습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무지든 노골적인 간음이든 공통된 점은 무엇인가요? 자기들 주관적으로 섬긴 일입니다.
인간화, 자신화 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럴 것이다 하나님을 저럴 것이다 하는 자의적 믿음은 자의적 성경해석 만큼 망할 일이 됩니다.
우리네 신앙을 보면서 더욱 실감합니다.
연못에 천사가 내려와 물이 동하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라 믿고 38년 된 앉은뱅이가 구원을 기다린 일과 같습니다.
신비한 연못, 신비한 천사, 물이 동하는 신비한 일만 찾고 기다리다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별난 곳과 별난
상황에서 경건을 찾고 있습니다.
경건은 모양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내 삶이어야 하고 삶의 현장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 아닌 것을 믿음으로, 복음 아닌 것을 복음인 냥 붙들고, 천국 아닌 것을 천국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나 점검해
야 합니다.
열심은 있으나 그 열심은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과 전통을 따르고 하나님의가 아닌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고
있지 않나,,
평안도 가짜 평안이 얼마나 많은지요?
기적도 마귀가 주는 가짜가 얼마나 많은지요?
교회도, 신앙도 많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막았고 사단의 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진짜가 된 비결은 회개입니다.
전인격적인 회개입니다.
그리고 새 성향이 나타났으면 거듭남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주님을 전심으로 따르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진노는 그치고 은혜가 임하는 터가 마련됩니다.
호6:11) 또 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
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이 포로가 아닌 이렇게 추수할 일을 정하여주시길 기대한다면 하나님을 설득할 것이 아니라 나를 고쳐야 합
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고난과 환난은 이 고침을 주시기 위한 방편이었고 회개촉구의 약이었습니다.
결론) 모르면 용감하다고 신앙에도 종교성만 발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종교성이 아니라 영성을 회복하고 영적으로 생활하는 영의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호6:8~10)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강도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우리가 이래서야 되겠나요?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확인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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