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선한 것을 본 받으십시오 > 설교말씀

선한 것을 본 받으십시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10-28 14:46 조회 500회 댓글 0건

본문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여성과 남성이듯이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마귀에게 속한 사람,

영의 사람과 육신의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썩어질 것을 구하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땅에 것을 찾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 했는데 곧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행하라 하심입니다.

 

1) 알멩이

모든 상품은 포장과 내용물로 구성됩니다.

사람들은 포장이 좋으면 내용물도 좋을 거라 믿는 경향이 있는데 겉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겉이 아니 중심을 보시기에 스펙이나 옷맵시 보다는 믿음을 좋게 해야 합니다.

사람의 알멩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엄귀현 이란 마부가 있었습니다.

요즘 말하면 운전기사인데 이 사람이 왕손 이재형에게 예수님을 전도했습니다.

이재형씨가 왕손의 지위를 떠나 산천을 유람할 때 그의 마부였는데 종종

“ 나리, 황송하오나 오늘부터 예수를 믿으소서. 그 래야 나리도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사옵니다.”

그때마다 왕손인 이재형씨는 버럭 화를 냈으나 내심 마부가 양반더러 예수 믿으라는 믿음의 모습에 놀라곤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이재형씨는 먼저 믿는 부인을 따라 승동교회 부흥회에 나갔다가 영수인 마부를 만나 인사를 했습니

다.

“형님, 이렇게 만나니 반갑구려 내게 전도하던 엄씨가 아니시오?”

마부는 황송한 나머지 “나를, 저를 형님이라 부르시다니요? 황송하옵니다.

그런데 나리께서도 예수를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이 마부는 영수로써 평생 교회 일에 전념했고 이재형씨는 훗날 남대문교회 초대목사와 승동교회목사를 지냈습니다.

 

껍데기가 마부인 엄귀현은 알멩이가 살았기에 껍데기는 왕손이었지만 알멩이가 죽은 이재형씨를 전도로 살린 것입니다.

 

사람은 관심과 언어와 생각과 행동이 그를 증명합니다.

그게 곧 믿음이고 인성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모 목사님을 만났는데 온통 보이 차와 골프와 커피얘기 뿐이었기에 들었던 존경이 사라진 적이 있었습니다.

반면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은 몸이 약해 누워있다가도 예수님을 말하면 일어나곤 했습니다.

얼마나 비교되는지요?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들 몇이 있는데 그 변호사중 목사도 있고 장로도 있습니다.

이들은 변호사로는 유능한 듯해도 믿음의 사람으로는 존경이 가질 않아서 최근 변호사 소개를받았을 때는 다른 집사변호

사를 소개했습니다.

목사장로 변호사들은 수임료와 성공보수비를 많이 요구했는데 비해 집사변호사는 교회일이라면서 되레 적은 수임료로 요

구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생각이나 느낌만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2) 하나님을 알자

성도가 선한 것을 본받는데 있어서 그 선함의 최고는 하나님이고,

본받는 일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일입니다.

그 반대는 무엇일까요? 악한일, 마귀에게 잡히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주문했습니다.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힘써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

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벅차오르는 감동을 실감했습니다.

김집사님 문병차 병원에 갔더니 개인정보법으로 집사님이 몇 층에 있는지 알려주질 않았고 병실의 이름표도 다 제거되었

습니다.

개인에 대해서 겹겹이 방어막을 친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공개하셨고 힘써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성호를 알고 존재의 형태를 압니다.

기쁨과 진노를 알며 성품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구원의 뜻과 방편도 알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뜻은 부르짖으면 알려주시곤 하십니다.

그런데 더 알라 하십니다.

 

위대하시고 찬란하시고 참 빛 되시는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자신을 보이신 것은 무엇일까요?

아니 더 알라 하심은 왜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믿음이고 힘이고 영생이고 세상을 이기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요1서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아는 만큼 행동하게 됩니다.

생활이나 박해에서 옛 성도들이 담대했던 힘이 무엇인가요? 우황청심환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왜 염려하고 왜 기도하지 않나요? 왜 경배를 소홀히 하나요? 왜 어둠의 일을 행하고 빛의 일을 즐거워하지 않나요?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식해서입니다.

바로가 강팍했고 헤롯이 교만한 것이 여기에 있고 초대교회성도들이 죽을지언정 신앙을 지킨것도 여기에 있던 것입니다.

 

나이가 소용없습니다.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의미 없습니다.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 앞에서 떨게 되고 빛의 자녀로 의와 선을 이루게 됩니다.

이 떪이 없으니 방자하고 바탕하며 불의를 행하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순간을 위하지 영원을 사모하지 않게 됩니다.

 

3) 자기 안의 증거

의사는 청진 문진 타진 또는 검사결과로 병을 보며 치료합니다.

그래서 의술은 과학이고 의사는 과학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떤가요? 과학은 아니지만 과학적입니다.

증거가 일정하고 열매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요1서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

라

영생은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며 악한 것을 본 받지 않고 선한 것을 본받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여러 형체가 있습니다.

동물의 형체가 있고, 새의 형체가 있고, 물고기도 있고, 마귀도 있고, 하나님께 속한 존재도 있습니다.

생명은 성질을 나타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성도는 거듭남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에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으나 이제는 즐거워하여 하나님의 계명이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요? 여전히 옛것에 습관 되고 중독되었다면 변화가 없습니다.

종교적으로만 열심을 낸다면 의미 없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신앙이 됩니다.

옛것에서 죽었고 새사람에 대하여 산자로 여기고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아 익혀야 합니다.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 충만 하라” 했습니다.

악한 것의 원리는 술을 먹던지 안 먹던지 술의 원리인 방탕입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반면 경건과 거룩과 단정은 성령충만입니다.

세상을 이길 힘입니다.

 

많은 기독인들의 모임에 청함을 받았으나 안 갔습니다.

이런 모임일수록 정치성도 있어 실제는 더 부자 되고 살려는 몸부림일 뿐 주 안에서 비우고 죽으려고 하는 모임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밤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설교자라면 어떤 설교를 할 것인가?

살기 보단 죽자, 땅에 보화를 쌓기 보다는 하늘에 쌓자, 흩어 구제 하자 한다면 저들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저들의 반응이 사뭇 궁금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아버지로 믿는다면 어떤 실업인이 될까요?

부자청년이 주님을 따르고자 했을 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결론) 우리는 두 세상에서 다 누릴 수 없습니다.

약5:3) 너희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

에 재물을 쌓았도다

악한 것을 본 받지 말고 선을 것을 본 받아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나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