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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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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11-11 14:01 조회 47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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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들은 오랫동안 노예살이 했던 민족입니다.

이제 그 생활을 벗고 자유인으로서 첫발걸음을 떼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매우 색다른 일을 명령하셨습니다.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이외적이지 않나요?

“자유를 만끽하라” “실컷 먹어라” 분명 이스라엘민족에게는 이런 욕망이 있었을 텐데,

하나님은 권리 보다는 의무 준행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드릴만한 예물이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 애굽인들의 금품을 취하도록 하셨는데 그 걸 말씀하신 듯합니다.

사실 이 구절만 놓고 보면 하나님은 벼룩이 간을 빼먹는 듯한 하나님으로 오해 받기 쉽상입니다.

 

1) 순종과 예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출애굽목적을 예배로 하셨습니다.

그 목적의 최고는 “즐거운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바로와는 너무 다른 일입니다.

이 일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마귀와 세상은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열심히 일해라” “조금 더 일해라” 하면서 부추키기에 예배는 실종되고

행복은 파랑새가 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예배자로 살아라” “나와 동행 하자” “먹는 일은 내가 주관 한다” 하시지만 사람들은 믿질 못합니다.

그리고 믿는 성도들에게 “먼저 마음을 보여라” “그 마음을 행위로 증명하라”하시는데 성도들은 미온적입니다.

이런 경우를 보여주는 사건의 기록이 출애굽기입니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에서 내 소유가 되겠

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

라

 

왜 예물을 바치라 했는가요? 벼룩이 간을 빼먹기 위함이 아니라 예배자가 되라 하심입니다.

“예물을 가져오라” 하셨는데 그 예물은 이스라엘인들 것인가요? 그들의 적금이었나요?

애굽인들의 소유였는데 이스라엘인들이 받아서 나온 것입니다.

물론 실제적 주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인들이 실제 드릴 수 있던 것은 예물이 아닌 오직 “즐거운 마음” 뿐입니다.

감사하게도 이들은 여기에 순종해서 차고 넘치는 결과가 되어 성막을 지었던 것입니다.

 

세계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뭐가 없어서 바치라하심이 아닙니다.

성도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그 순종으로 믿음의 제사장되고 거룩한 백성답게 만들어 나가십니다.

 

2) 즐거운 마음으로

여기에 성도가 갖출 것은 즐거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은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장께 “어떤 직원이 마음에 드냐?”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말 잘 듣는 직원이랍니다.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걱정되는 자식은 아픈 자식이라면 기쁜 자식은 말 잘 듣는 자식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오죽 하면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하셨을까요?

여기에 하나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먹고 사는 일이나 잠시의 즐거움이나 사회적 성공이 아닙니다.

주의 소유된 백성이 되고 제사장이 되고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일입니다.

 

방송사사장님이 최근 말씀해 주신 분이 계셨는데 65세의 전북극동방송 운영위원장이었습니다.

농고를 나와 기업에 취직했으나 미래가 없어 약품을 팔러 다녔답니다.

열심히 일해서 안정이 되었지만 IMF 때 망했답니다.

이때 뭐가 문제인가? 하며 생각했는데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한 것이 떠올랐답니다.

어떻게 하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을까? 간구하여 교회가 25인승 버스를 구입한다는 얘기를 듣고 목사님께 허락을

받아 할부를 갚았답니다.

할부가 밀리면 교회가 곤란해지니 최선을 다했답니다.

그분의 고백으론 2500만원짜리 버스를 샀는데 그 후 하나님이 복을 쏟아부어주셔서 지금은 1000배가 되었답니다.

현재 닭2백만 마리를 키우고, 얼마 전 땅을 사달고 해서 산 것이 익산 터미널이 바로 옆에 들어서고, 이제 그곳에 건물을

지으면 400평을 방송사옥으로 무상 바칠 생각을 한답니다.

그 분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후에 복이 왔다”는 간증을 듣고, 사장님은 당신의 사업하는 동생이 온전한 십일조를 못하

기에 만나 전했는데 어떻게 받아드렸는지 모른다 했습니다.

 

공중을 나는 새들도 새 따라서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

벌레도 마찬가지인데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나옵니다만 제물도 수소 숫양이지 암소 암양은 없었는데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요?

역시 다릅니다.

성도에게는 성도의 윤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 윤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일이 되고 결국 생명이 되고 복이 됩니다.

그런 윤리를 배우고 훈련하는 일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광야에서 시험하셨습니다.

출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전지하신 하나님이 몰라서 시험하실까요? 아닙니다.

시험을 하시므로 인생들에게 객관적인 증거가 되고 그 결과에 불만이 없도록 하실 뿐입니다.

 

3) 말씀하시는 하나님

성경을 보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심심하신 하나님이 아닌 소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들이 알아서 대강 하라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친절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25:3~4)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출애굽기 25장부터 읽어 보십시오.

얼마나 세세히 말씀하시는지요? 하나님입이 마를 정도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찾는 이들을 위한 네비입니다.

주님을 하나님께 오는 길로, 성령님을 보혜사로, 일상에서는 성경을 주셨습니다.

또 대한민국에게는 숱한 설교와 경건 서적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수한 증거인들을 보내 간증하도록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똑똑한 나머지 믿지 않거나 어리석은 나머지 행동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다 믿음을 오해해서인데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거나 더 두려워하는 경향 때문입니다.

성도의 절대적인 믿음이 무엇인가요? 전적인 하나님 신뢰이고 의존적인 존재가 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광야 생활이 늘어난 이유가 무엇인가요?

3일 길을 40년 동안 돌고 돈 이유는 무엇인가요?

불신으로 지난 애굽 생활에서 얻은 노예근성 아닌가요? 내게는 없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출23:24~25)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소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주

신을 타파하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

을 제하리니

 

아주 친절하신 약속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7족속 처리에 대한 약속인데.

출23:~29~30)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

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 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

라

 

반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인들은 어땠나요? 원망과 불평뿐인 것을 우리가 압니다.

이들은 실제 누구의 모습인가요?

 

삶에는 언제나 두 모습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거나 내가 변화되는,

일반적으로 내가 변화하면 손해 본다는 경향이 짙어 기를 쓰고 이기려 합니다.

그러나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손해 본다고 해서 얻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결론) 하나님은 세계의 주인이시고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 분 앞에서는 이기고 지는 승산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 분을 변화 시키겠다? 부질없고 내가 순종하면 됩니다.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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